▲ 지난해 일본의 납북자 가족 단체 회원 등이 메구미 요코타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이 같은 사실이 발표되자 일본 전국이 들끓었다. 납치자들끼리의 결혼이라는 기막힌 사연이 일본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DNA 발표가 나온 지 닷새 뒤인 16일 일본 <지지(時事)통신> 발행의 주간지 <세카이슈호>(世界週報)는 평양 외교가에서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메구미와 닮은 여성을 봤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의 리포트가 실렸던 것이다. 작성자는 러시아 <타스통신> 평양특파원을 지낸 스타니스라프 와리보다 기자. 그는 이 리포트에서 확실한 정보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평양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메구미가 살아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파다하다면 실제로 한 외교관은 리셉션에서 메구미와 흡사한 여성을 봤다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사망 통보에도 불구하고 메구미의 생존을 믿고 있는 요코다 부부에게 희망이 다시 피어오른 순간이었다.
일본에 있어서 납북자 문제는 국가적 우선순위 1순위다. 일본정부는 납북 사실이 확인된 이후 이 문제를 한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국가의 주권을 침해당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인권적 측면에서도 국민감정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일문제가 정상 궤도를 달릴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메구미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일본 경찰조사에 따르면 메구미는 중학 1년생(13세)이던 1977년 11월 15일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다 니카타 해안에서 수백m 떨어진 지점에서 친구와 헤어진 뒤 소식이 두절돼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경찰은 이후 자체 조사와 한국에 망명한 북한 공작원들로부터의 정보를 토대로 북한에 의한 납치로 규정했다. 메구미 부부는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 가족들과 단체를 결성해 납치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다녔지만 북한이 납치 사실을 전면 부인해 진전은 없었다.
찻잔 속에 머물러있던 일본의 피랍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북·일 수교를 위해 납치문제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다. 북한은 동시에 납치 보고서를 통해 메구미를 포함한 피랍자 10명에 대한 정보를 일본에 제공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일본의 여론은 순식간에 대북 혐오감으로 뒤덮였다. 납치 국가와 국교 수립이 말이 되느냐는 의견이 터져 나왔다.
당시 북한은 메구미에 대해 ‘86년 북한 남성과 결혼해 딸(김혜경)을 낳았으며 93년 3월 병원 입원 중 자살했다’고 밝혔다. 당장 자살 원인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북한 측은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2004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실무접촉에서는 메구미의 남편을 자칭하는 김철준을 일본 측 관계자들과 면담까지 시켰으나 의구심은 더욱 증폭됐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사망일시를 94년 4월로 정정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메구미의 유골이라고 전달한 뼈들이 일본측 DNA검사 결과 가짜로 판명나면서 진위논란으로 이어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일본 피랍자 관련 단체의 활동은 메구미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가족회와 가족회를 지원하는 ‘구하는 모임’을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단체는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일본 정치권, 정부와 연계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북·일 협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제적 포위망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 16일에는 토머스 쉬퍼 주일미대사를 메구미 납치현장으로 초청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쉬퍼 대사는 당시 “메구미 스토리는 내 일생에서 가장 슬픈 얘기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납치는 문명사회에 반하는 행위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메구미의 어머니인 사키에는 오는 27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증언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다. 유럽과 동남아 각국에서도 북한의 납치행위가 있었다며 해당 국가에 관련정보를 제공하는 등 문제 해결에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오는 5월 9~11일 노르웨이에서 북한인권회의를 열어 국제적 압박을 가할 방침이다. 회의에는 미국의 대북인권대사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홍보활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영어판 납치 책자를 전세계에 배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어나 프랑스어 책자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 17일에는 ‘일본은 버리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납치문제 조기해결 의지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해 4월 하순부터 일본 전역의 지자체에 배포할 예정이다.
김영남 씨에 대한 DNA 감정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연대도 적극적이다. 납북자가 가장 많은 한국이 적극 나서줄 경우 천군만마의 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27일 미 하원 증언을 계기로 현지에서 한국 피랍자단체와 만나 공동 집회를 열 계획이다. 동시에 한국의 탈북자들이 만든 대북방송 지원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공동 대응에도 나섰다.
이와 별도로 메구미 부부가 5월 초 한국을 방문하고 김영남 씨 모친을 6월에 일본에 초청해 공동집회를 열어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도 한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남북접촉에서 납북자 문제 처리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최근 ‘일본의 입장과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며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긴장관계가 재점화되면서 ‘납북자 연대’의 앞날 역시 호언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용채 재일 저널리스트 pyc4737@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