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와 만나 메구미 씨와 관련된 뒷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실 벽은 온통 납북자들의 사진과 편지 등으로 뒤덮여 있다. | ||
일본 정부가 자국 납북자 문제와 관련, 남편의 신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인 고교생 납북자 문제까지 밝혀내자 국내에서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비난 여론도 급증하고 있다.
사실 이번 결과가 나오기까지에는 한국 정부가 아닌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 개인의 공이 컸다. 일본 정부가 메구미 씨 사망 여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메구미 씨 남편이 한국 납북자라는 단서를 잡고, 급기야 한국 고교생 납북자 5명으로까지 폭을 좁혀 DNA검사까지 실시할 수 있었던 중심에 최 대표가 있었다.
지난 2004년 9월 추석 연휴 때 최 대표는 중국 연길에서 뜻밖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 국군포로 이완섭 씨 귀환과 납북자 김길오 씨 유해 발굴 문제를 처리하러 간 최 회장에게 북한 측 인사가 “메구미 씨의 남편이 남조선 사람”이라고 귀띔해준 것.
“3일 동안 두만강 주변의 중국과 북한 국경 주변을 뒤졌으나 김 씨 유해를 찾지 못했다. 우선 김 씨 가족들을 심양으로 보낸 뒤 연길에서 머무르다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북한 측 인사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 인사가 ‘메구미 남편은 남조선 사람이고 메구미와 같은 시기에 공화국(북한)으로 끌려왔다’고 털어 놓았다. 이 얘기는 나와 동행했던 일본 기자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납북된 고교생 5명 중 한 명이 메구미 씨 남편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최 대표는 북측 인사에게 메구미 씨 남편의 사진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며칠을 기다렸으나 북측 인사가 “사진은 구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 후 동행했던 일본 기자가 사망하고 최 대표도 다른 업무 때문에 이 일을 잊었다고 한다.
최 대표가 북한 인사로부터 들은 말을 처음으로 털어 놓은 것은 지난해 11월. 일본 기자들이 최 대표 사무실로 몰려들어 메구미 씨에 관해 여러 가지를 묻는 과정에서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후일담을 일본 취재진에게 해주었던 것.
최 대표를 만나 정보를 전해들은 일본 취재진은 77년과 78년에 납북된 고교생 5명을 집중 취재해갔다고 한다. 이후 메구미 씨 남편이 한국 고교생 납북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보도가 일본 언론들에 의해 터져 나왔다고 한다.
▲ 지난 2000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장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납북자 가족들. | ||
곧바로 납북자 5명 가족을 설득, 모근과 피를 뽑았다. 특히 납북된 5명 중 김영남 씨 가족의 혈액과 모근을 집중적으로 채취했다. 북한이 메구미 씨의 남편으로 밝힌 김철준의 혈액형 O형과 같은 납북자는 세 명. 그중에서도 김영남 씨를 직감했던 것이었다.
메구미 씨의 남편이 고교생 납북자 중 한 명, 특히 김영남 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가진 최 대표는 올해 1월 4일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그리고 일본 총리실과 외무성에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김영남 씨의 신원 확인, 그리고 메구미 씨의 딸 혜경과 납북자 5명 가족의 DNA 대조를 양국에 요청한 것.
최 대표에 따르면 공문을 접수한 한·일 양국은 무척이나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사정상 신원 확인이 어려우니 이해해달라고 회신을 보냈지만 일본 정부는 메구미 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 일본 정부는 1월 외무성 관계자를 한국에 파견, 1월과 2월 네 차례에 걸쳐 최 대표와 접촉했다고 한다.
“1월 12일 일본 정부에서 전화가 와서 1월 14일과 24일 두 차례 일본 외무성 관계자와 L 호텔에서 만났다. 두 번째 만나는 자리에서 외무성 직원들이 놀랍게도 김영남 씨에 대한 얘기를 계속 꺼냈고 김 씨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
이미 일본 정부도 나름대로 메구미 씨의 남편을 김영남 씨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2월에도 최 대표와 두 차례 비공식 만남을 가진 일본 정부는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외무성 직원을 한국에 파견, 최 대표의 도움을 받아 납북자 5명의 가족으로부터 체세포와 혈액 등을 제공받아 최종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
최 대표는 이종석 통일부장관 등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동시에 면담하면서 자신과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했지만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극비에 부쳐 달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지난 4월 11일 일본 정부가 DNA 결과 발표를 하기 전날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 발표 수 시간 전에 전화로 미리 통보해주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는 것이다. 그간 외교통상부 주변 등에서 “최 대표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다닌다”는 소문 등이 끊이지 않아 심적으로 상당히 괴로웠다는 후문이다. 오죽했으면 DNA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점까지 봤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납북자 수는 48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가 2000년 발표한 납북자 수는 456명이었다. 그러나 납북자가족모임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납북자가 31명 더 있었다. 모임은 정부에 이들도 납북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 납북자 수는 487명으로 공식 인정됐다. 이들 중 최근 4명이 탈출에 성공, 현재 483명이 북한에 남아 있다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한·일 간의 납북자 문제 대응에 큰 차이가 있다며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