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영토의 막내 격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지난 98년 맺은 한일어업협정의 ‘굴욕’에서 이미 예견됐다는 분석이다. | ||
일본은 1998년 한일어업협정으로 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으로 설정하는 ‘성과’를 올린 뒤, 독도에 대한 야욕을 본격적으로 서서히 실행에 옮겨 갔다. 학계에서는 “이미 일본으로서는 이번 탐사 시도만으로도 자국이 의도했던 대로 대성공을 거둔 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히 초점은 한일어업협정의 불평등성에 맞춰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굴욕적인 외교”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99년 1월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된 이 협정안의 존폐 여부가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적해온 <일요신문>은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인 ‘4대 의혹’을 재조명한다.
1998년 11월 28일 일본 가고시마현. 한국의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과 일본의 고무라 마사이코 외상은 양국을 대표해서 ‘한일어업협정’에 각각 서명하고 악수를 교환했다. 이로써 65년 양국 간에 처음 맺어진 ‘구(舊) 한일어업협정’은 98년 1월 일본 측의 일방적인 파기 선언으로 사라지고 ‘신(新) 한일어업협정’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날 이후 양국에서 보인 모습은 판이했다. 일본은 즉각 협정 문안에 대해 학계의 자문을 구했고, 2주 만인 12월 11일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한국은 협정 문안을 비밀에 부쳤고, 학계 자문위원들의 반대 의견도 묵살한 채 해를 넘겨 99년 1월 6일 몸싸움의 아수라장 속에 법안은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다.
당시 학계는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상면 서울대 교수는 “한일어업협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해 독도 문제를 애써 무시함으로써 오히려 권리를 상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는 “일본은 우리의 반발 여론이 어느 정도 무마되면 반드시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중간수역으로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 독도는 폭풍 속에 휘말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불행하게도 당시 학계의 우려는 지금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시네마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고 독도가 시네마현 소속 땅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우익 단체는 독도 상륙을 시도하기도 했다. 민간단체와 지방단체로 시작되던 일본의 야욕은 급기야 정부로 넘어왔다. 이 또한 배진수 고려대 연구교수가 주장한 일본의 독도 점령 6단계 시나리오와 흡사하다.
이 교수는 “일본이 독도 주변 해역을 탐사하겠다고 당당하게 나섰던 것은 바로 한일어업협정에서 양국이 추인한 ‘중간수역’에 근거하는 것”이라며 “당시 정부 편의 논리에 서서 한일어업협정의 내용에 찬성했던 인사들은 지금 왜 떳떳하게 나서지 않는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학계의 주장대로 당시 한일어업협정은 굴욕외교였을까. 사실이라면 왜 우리 정부는 야당과 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협정을 강행 처리했을까.
<일요신문>이 입수한 당시 협정문안과 국회 공식문건 및 학계 전문가들의 입수 자료에 따르면 98년 한일어업협정이 석연치 않게 졸속 처리된 의혹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첫째 ‘중간수역’의 출현 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96년 일본은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며 독도와 울릉도의 중간에 EEZ(배타적경제수역) 경계선을 긋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듬해 우리 정부는 울릉도와 일본 오키섬의 중간에 경계선을 긋자고 제의했다. 이럴 경우 독도가 아슬아슬하게 우리 해역에 들어온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결정적 실수였다. 일본은 자국의 최서단 영토를 독도로 주장한 반면, 우리는 최동단 영토를 울릉도로 삼아 결과적으로 독도를 포기하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독도에 야심을 갖고 있는 일본이 우리 정부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일본은 다시 97년 9월 수정 제의를 한다. 즉 한국이 주장하는 선과 일본이 주장하는 선의 중간을 ‘중간수역’으로 하자는 것. 이렇게 해서 정체불명의 중간수역은 처음 일본에 의해 제기되게 된다. 한국 정부는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을 수 없다”며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히도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등의 원조가 절실했고 실제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98년 YS 정권에서 DJ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지지부진하던 한일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결국 양국이 본국 영토를 기점으로 각각 35해리의 수역을 확보하고 서로 중첩되는 지역을 중간수역으로 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일본으로서는 당초 독도를 기점으로 삼은 것에 비하면 다소 양보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춘 셈이지만 일본의 의도는 오로지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중간수역 설정에 대해 한국 정부는 97년 ‘절대 불가’에서 갑자기 1년 만에 ‘오케이’로 돌아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의 변화에 따른 입장 차이였을까. 외환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심증은 가지만 말을 아끼겠다”며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일요신문> 674호 표지 | ||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한일어업협정에서 확정된 경계선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아닌 ‘배타적어업수역(EFZ)’이 맞다. 실제 당시 정부와 국내 언론들도 EEZ이 아닌 EFZ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달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협정문안 제1조에는 ‘이 협정은 대한민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일본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 적용한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이하 17조에 이르기까지 협정 문안 전체와 부속서 1·2에 이르기까지 모두 EEZ이라는 용어만 등장할 뿐, EFZ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신 교수는 “EEZ과 EFZ은 국제법상 엄청난 개념 차이를 갖는다. EFZ은 말 그대로 어업에 관한 수역이지만, EEZ은 경계수역에 해당한다. 한일어업협정은 분명히 EEZ임을 명시하고 있다. 당시 정부가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또 다른 의혹도 제기하고 나섰다. 즉 경계수역을 정하면서 양국의 영토를 기점으로 각각 35해리의 수역을 정하고 중첩되는 부분을 중간수역으로 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즉 일본은 자국의 기점으로부터 35해리가 조금 넘는 선이지만 한국은 35해리에 못 미치는 33해리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측은 “당시 한일어업협정은 EEZ을 바탕으로 한 어업에 관한 협정이었다. 협정문 제목 자체가 어업에 관한 협정문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별도의 EFZ은 의미가 없다”면서 “또한 우리 법률에는 EFZ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 용어는 쓰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중간수역이 정확히 자로 재듯이 그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 따라서는 35해리가 조금 넘을 수도, 조금 못 미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해명에 대해 이 교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그는 “국제 조약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제3자인 누가 보더라도 협정문안 제1조에 ‘이 협정은 EEZ에 적용한다’고 명시한 것을 어떻게 EFZ 개념으로 받아들이겠느냐”고 어이없어 했다.
세 번째 의혹은 당시 협정문안과 함께 체결한 합의의사록을 감춘 것이다. 이는 <일요신문> 674호(2005년 4월 17일자 ‘신한일어업협정 둘러싼 새 의혹’)에서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국회 인준을 받는 과정에서 협정문안만 공개했을 뿐, 양국 외교 수장들이 동시에 서명한 합의의사록은 그 존재 자체를 감췄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합의의사록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부는 합의의사록을 왜 감췄을까. 여기에도 굴욕외교의 흔적이 드러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합의의사록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협정 제9조 제2항에서 정하는 수역의 설정과 관련하여 동중국해의 일부 수역에 있어서 일본국이 제3국과 구축한 어업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일본국 정부에 대하여 협력할 의향을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3국이란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학계 전문가들은 “우리는 중국과도 엄연히 외교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독도문제나 대륙붕 개발 문제 등에 있어서 일본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보조를 맞춰야할 필요성이 더 많은데도 일본에 대하여 협력하겠다고 서명해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합의의사록은 그 성격상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조약이 아니라 ‘~하기로 노력한다’ 등의 내용을 갖는 협력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도 없고 국회 인준을 꼭 같이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네 번째 의혹은 협정문안과 합의서상에 독도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거나 표시되지 않은 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독도를 암석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국익에 실질적, 명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일본은 당초 처음부터 독도를 유인도로 규정,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좌표상에 기입했던 데 반해 한국은 울릉도를 기점으로 삼아 제안하는 등 독도에 관해 판이한 입장을 나타냈다. 실체적 진실을 모르는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느 나라가 독도에 대해 더 실질적인 애착을 갖는지는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려운 상황일 때 꼭 일본과 협정을 맺어 왔다”면서 “박정희 정권의 65년 한일국교정상화 때도 그랬고, 98년 한일어업협정 때도 그랬고, 우리 경제는 일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던 때였다. 5공의 신군부 정권 역시 취약한 명분을 만회하기 위해 81년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 차관을 빌려온 뒤 갑자기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이 금지곡이 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취약한 명분과 논리 때문에 일본의 침해에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일까. 학계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우선 98년 서명한 한일어업협정부터 우리가 파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 역시 “지금이라도 한국의 EEZ 기점을 울릉도가 아닌 독도로 재선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는 중간수역은 없애야 한다. 또한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어정쩡한 ‘EEZ을 적용하는 어업협정’ 등의 협상 대신 명쾌한 EEZ 경계획정 협상으로 이에 대한 우리의 양보 없는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도 기자에게 “EEZ경계획정 협상을 곧 일본과 벌여나가게 될 것이니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