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지김 | ||
“안기부장으로 재직하실 때 정국이 어땠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냉전시대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긴장된 상태인데도 일부 이산가족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 주장이 있었고 전두환 대통령의 단임제 실현을 위해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때였습니다. 학원가의 소요가 절정에 이르는 헌정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물가안정, 무역수지 흑자 원년 등 성과도 많았습니다.”
“학원가 소요가 왜 절정에 다다랐습니까?”
“지하세력 등이 주사파니 뭐니 하면서 건국대 사태가 벌어지고… 제가 근무하는 동안은 데모 등 사회에 소용돌이가 치는 최고의 절정기였습니다.”
“윤태식이라는 인물을 아십니까?”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수지 김 사건으로 구속됐다는 보도를 보고 나서야 기억을 되살리게 됐습니다. 1987년 1월경 당시 홍콩 교민 1명이 싱가포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해 납치될 뻔했던 사건으로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안기부에 와서 조사를 받으면서 처를 살해했다고 자백을 하는 바람에 비로소 그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1987년 1월 5일 밤에 싱가포르 주재 안기부 요원들이 북한에 납치될 뻔했다가 탈출했다는 윤태식을 호송하여 1월 6일 귀국조치 하겠다는 보고를 전문으로 보냈는데 당시 보고를 받으셨습니까?”
“아마 받았을 겁니다.”
“누구한테 보고받으셨죠?”
“해외담당국장으로부터 보고받았을 겁니다.”
“그 사항을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셨습니까?”
“초기 상황이라 더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사회저명인사 같으면 바로 보고할 수 있지만 윤태식같이 알려지지 않은 미미한 인물은 보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긴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장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윤태식이 국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에는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현지 기자회견을 강행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1월 5일경 처음 윤태식이 월북당할 뻔했다는 보고를 받고 당시 언론이 현지에서 당사자의 기자회견을 요청하는 분위기이므로 기자회견을 용인했습니다.”
“언론이 기자회견을 먼저 요청했단 말입니까?”
“그런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87년 1월 7일 18시 46분경 싱가포르에 있던 안기부 요원들로부터 보고전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윤태식이라는 인물이 북한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거나 월북을 기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북괴의 납치 기도는 오히려 허위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이죠. 그래서 기자회견은 전면 보류해야 한다는 긴급 건의를 담은 전문이 올라온 걸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보고를 받고 기자회견을 보류하라고 지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에서 그렇게 건의가 올라와 기자회견이 보류됐는데 이상한 건 그때부터 3시간 뒤인 1월 8일 0시 50분경 다시 기자회견을 강행하라는 지시가 내려갔습니다. 그런 지시를 하셨습니까?”
검사가 그 시각 본부에서 보낸 전문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그런 강행 지시에 대해선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가 강하게 부인했다. 해외공작국장은 그가 강행 지시를 했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었다. 그가 덧붙였다.
“현지 거점에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서 기자회견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올렸는데 담당국장이 왜 그런 지시를 다시 내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해외공작국장이 기자회견을 강행했다는 얘기였다.
“장세동 부장의 안기부 지휘방침은 어땠나요?”
“당시 본부에서 내려간 지시전문에는 보시는 바 같이 부장의 정책적 판단으로 그런 강행 지시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외담당국장도 부장이 직접 지시했다는데 어떻습니까?”
“정말 인간적으로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누구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 사람이 저를 등에 업고 마치 제가 지시한 양 만드는 건 어이가 없습니다. 물론 업무 수행상 강조하기 위해 부장 지시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자회견을 보류했던 사항을 3시간 만에 다른 명분도 없고 또 강행할 만한 사항도 아닌 걸 한밤중에 부장 지시라고 하면서 전문을 보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도 않은 부장의 지시가 남용됐다고 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누가 강행 지시를 했단 말입니까?”
“제 부하라 꼬집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검사님이 상황을 판단하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알아서 해석하십시오.”
“윤태식이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한 직후 안기부 남산청사에 옮겨져 조사를 받으면서 불과 24시간 이내에 자신이 처를 죽이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북한으로 망명하려고 했다고 자백했다는데 당시 대공수사국장이 보고했습니까?”
“정확한 일자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공수사국장이 저에게 윤태식의 자백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당시는 남북한이 서로 헐뜯는 민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을 고려해서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서 잘 처리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사실 윤태식은 평범한 홍콩교민이고 정보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처리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안기부장 직위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윤태식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떠났던 게 아쉽습니다.”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서 처리하라고 지시한 의미가 뭐죠?”
“당시 보고를 받는 순간 너무 황당해서 짜증이 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법처리를 할 적당한 시점까지는 일단 덮어두고 있으라는 의미였습니다.”
“바로 살인죄 수사를 의뢰하고 국가보안법 위반도 수사해서 처리해야 했던 거 아닌가요?”
“제가 재직 중 적절한 시기까지 일처리를 보류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안기부에서는 중요사항에 대해서 심야라도 부장, 차장, 국장이 모여 회의를 합니까?”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1986년 김일성 사망설이 있을 때 저희 안전기획부 간부들이 밤을 새우면서 정보 확인을 했습니다. 저는 일단 대통령에게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았다고 의견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대통령은 연합사령관도 사망설을 주장한다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그때 사실 두 시간만 더 있으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몽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어 있어서 그때 김일성이 영접하는가를 보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해 1월 13일 월간 시사잡지 <신동아>의 이정훈 기자가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집을 방문했다. 수사기록과는 달리 언론을 통해서도 분명한 역사적 기록을 남겨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장세동 전 부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장 전 안기부장은 기자에게 먼저 해외에서의 허위 기자회견 배경에 대해 의견을 말했다.
▲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윤태식 기자회견을 강행하라는 지시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
그런데 문제는 수신·발신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공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공문이면 발신자가 부장으로 되어 있어도 현지 요원들이 실제는 담당국장이나 과장이 보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검사가 보여준 그 공문에는 ‘부장의 지시니 현지에서 윤태식 기자회견을 가져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국가정책판단’을 강조하며 윤태식의 기자회견을 열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요원들은 정말 부장의 특명으로 알고 그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검사가 내미는 그 공문을 보는 순간 저는 치욕과 모멸감으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기자회견을 보류한다는 전문을 보냈었고 그걸 뒤집을 합당한 사유나 상황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다음날 새벽에 그걸 뒤집는 내용의 전문 여러 장을 싱가포르 현지로 보낸 이유를 지금도 알 수가 없어요.”
검사 앞에서도 부하에 대한 비난을 피하던 그가 이런 비유를 들면서 담당자를 통렬히 비난했다.
“똥개는 도둑이 들어오면 겁이 나서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왕왕 짖습니다. 그러나 셰퍼드는 자신의 힘을 믿기 때문에 짖지 않고 제 힘으로 도둑에게 덤벼듭니다. 왜 공문에 ‘부장의 지시다, 국가정책판단이다’라는 문구를 넣습니까? 조사받는 자리에서 정말 누워서 침 뱉을 수도 없고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누가 했든 살인자를 반공투사로 만든 건 조작이 아닐까요?”
이 기자가 핵심을 찔렀다.
“살인자라는 걸 알면서도 반공투사로 꾸밀 수는 없습니다.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라 공명심과 과욕에 의한 판단처리 미흡입니다. 조작을 했다면 왜 살인자백을 받아냈겠습니까? 해외요원들은 수사관이 아니기 때문에 속을 수 있어도 대공수사관들은 사람을 많이 다뤄봤기 때문에 잘 속지 않습니다. 조사에 착수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윤태식에게서 수지 김을 살해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답니다. 그 순간 윤태식의 정보가치는 제로로 되는 거죠. 북한의 역선전 빌미를 주지 말고 적당한 시기를 택해서 송치하라고 지시한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허위 기자회견을 한 후라 조직이 망신을 당하겠구나 하는 가벼운 부담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관계자들이 윤태식을 조용히 검찰에 송치할 걸로 알았죠. 그러다 그해 5월 26일 안기부장직을 물러나게 됐습니다. 이임하기 전에 직원들을 채근해서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장세동 전 부장의 아쉬움이 섞인 말이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