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들. | ||
그러나 이처럼 탈북자들이 젊어지면서 그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에 젊은 여성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나 강제 결혼 등 ‘성노예’ 신종 범죄가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미국에서 받아들인 탈북자 여성 4명이 겪은 사연은 성노예 범죄의 잔혹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탈북자 젊은 여성들이 중국에서 성노예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관계자들은 “우리가 확인한 것도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탈북 여성의 삶은 북한을 벗어난 이후라도 더 끔찍하고 힘겹기 그지없다. 현실은 정말 참혹하다. 중국 등지에 머물고 있는 탈북 여성의 80% 이상이 인신매매의 잔혹한 손길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미국에 정착한 4명의 탈북 여성 사연은 이러한 범죄 피해자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신 아무개 씨(여)는 스무 살이란 어린 나이에 무려 네 번이나 결혼을 한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탈북자로 지낼 당시의 일로 모두가 인신매매로 인한 강제 결혼이었다. 어렵게 북한에서 탈출한 신 씨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곧 중국의 인신매매 일당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한 뒤 5000위안(약 58만 원)에 중국인 이혼남에게 팔려갔다. 이때 신 씨의 나이는 고작 17살.
어렵게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다시 다른 인신매매 일당에 의해 산둥성으로 팔려갔고 또 다시 흑룡강성으로 팔려갔다. 이렇게 세 번이나 인신매매를 당한 신 씨는 어렵게 인신매매범들로부터 도망쳐 한국행을 시도했지만 체포당해 북송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북한으로 끌려간 신 씨는 다시 탈북했지만 또 다시 인신매매당해 산둥성으로 팔려가는 등 그녀의 지난 4년간의 삶은 온통 목숨을 건 탈북과 끔찍한 인신매매 성폭행의 연속이었다. 중국에서 신 씨는 천신만고 끝에 이미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오빠와 연락이 닿아 함께 미국행에 오를 수 있었다.
데보라 씨(가명·여·25)는 탈북 과정에서 중국 브로커의 도움을 받았다. 중국에 사는 중국인 이혼남과 결혼하라는 권유를 받고 탈북을 결심한 것. 그러나 막상 탈북해서 만난 그 남자는 열다섯 살 연상으로 이혼남도 아닌 유부남이었다. 브로커에게 ‘큰 키의 숫처녀 북한여성’을 부탁한 이 한족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 상대가 아닌 노리개감 여성이었다. 결국 데보라 씨는 이 남성이 얻어준 방에서 꼼짝 달싹 못하며 갇혀 지내야 했다. 브로커의 농간으로 젊은 나이에 한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했던 데보라 씨는 힘겹게 탈출에 성공했다.
인민학교 교사였던 한 아무개 씨(여·36)는 처음부터 탈북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딸의 운동복 살 돈이 필요해 중국에 장사하러 갔다가 인신매매 일당에게 붙잡혀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간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어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중국 남성과 또 다른 가정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국인 남편의 구타를 견디지 못해 결국 탈출을 시도했다. 비록 한 씨는 미국 입국에 성공했지만 이미 북한과 중국에서 낳은 두 명의 아이를 모두 잃은 뒤였다.
나 아무개 씨(여·34)는 담배 가게에서 알게 된 한 중국인의 꼬임에 빠져 인신매매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북한에서의 어려운 삶에 힘겨워하던 나 씨는 탈북해서 중국에 살고 있는 친척집으로 가고자 했고 중국인이 이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어렵게 탈북한 나 씨는 친척집에 가지 못했다. 도와주겠다던 중국인이 알고 보니 인신매매 범이었던 것.
결국 4000위안(약 47만 원)에 흑룡강성 오상시의 한 산골마을 조선족에게 팔려가고 말았다. 그 집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던 나 씨는 극적으로 탈출해 결국 친척들을 만나게 됐다. 연변에서 친척들과 함께 지내며 한 남성을 만나 정식으로 결혼해 단란한 생활을 이어가던 나 씨는 임신 8개월이던 어느 날 야밤에 들어 닥친 공안에게 붙들려 북송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북송돼 엄청난 고생을 감수해야 했던 나 씨는 힘겹게 다시 탈북해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4명의 여성 사연은 단지 표면 위로 드러난 사례일 뿐이다. 탈북자동지회 등 여러 관련 기관에 따르면 더욱 끔찍하고 참혹한 사례는 훨씬 많고 다양했다.
함께 탈북한 어느 모녀는 중국에서 인신매매 일당에게 붙잡혀 나란히 성폭행을 당한 뒤 각기 다른 곳으로 팔려갔다고 한다. 어렵게 탈출한 이들 모녀는 다시 만났지만 또 다시 인신매매 일당에게 붙잡혀 내몽고로 팔려가고 말았다는 것.
28세의 한 탈북 여성은 1000위안(약 12만 원)에 팔려가 2년여를 지내며 임신까지 했다. 하지만 함께 살던 남성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이 여성을 다른 남성에게 팔아버렸다. 팔려간 곳의 남자는 이 여성을 유산시킨 뒤 심한 노동을 시키다 다시 처음 팔려갔던 동네로 이 여성을 되팔았다. 팔고 팔리고 비극적인 운명이 반복됐던 것이다.
또한 지난 3월 23일 유럽의회 탈북자 청문회에 나선 탈북여성 이 아무개 씨(28)는 “한창 커야 할 16~17세 여자 아이들이 남자의 성 노리개가 된다. 정신질환자나 노인들의 성적 대상으로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발이 묶이고 달아날까 옷도 못 걸친 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겨우 목숨만 연장하는 이들도 있다”고 증언했다.
“탈북 여성들의 인권유린 실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두리하나선교원 천기원 목사는 “십중팔구는 인신매매 강간 등 성적 인권유린에 노출되어 있는데 불법체류자 신세라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는 상황”이라며 탈북자 문제에 대한 여론 환기를 강조했다.
두리하나선교원 측은 중국 현지의 탈북자를 10만~30만 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지에 가면 손쉽게 탈북자를 만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두리하나선교원 측이 만난 현지 조선족의 증언에 따르면 흑룡강성의 한 시골마을의 경우 15가구 가운데 12가구의 노총각이 탈북 여성을 ‘사서’ 살고 있으며 한족 노인의 노리개가 되거나 다시 매춘현장으로 팔려가는 탈북 여성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두리하나선교원 이경희 간사는 “중국 현지서 탈북 여성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국 현지인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서 “중국 공안에게 적발될 경우 무조건 북송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할 수없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타의란 ‘인신매매’를 의미하고 자의란 북한 현지에 들어온 밀무역자의 도움을 받아 탈북한 여성들을 의미한다.
이 간사는 “성적 학대도 문제지만 거듭된 가정의 해체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요즘 탈북자는 대부분 건강한 20~30대들로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신혼부부이거나 아니면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특히 탈북 여성들은 인신매매로 팔려가 중국에서 또 다른 가정을 갖게 되거나 되팔림을 반복하며 거듭된 가정의 해체를 겪어야 했다. 중국인에게 팔려가 아이를 낳게 될지라도 그들은 무국적자 신세로 탈북여성이 도망가거나 다른 곳으로 또 팔려 가면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희생자가 되고 만다. 소위 ‘무국적 꽃제비’들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