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미수 등)로 체포된 지충호 씨가 지난 23일 저녁 구속수감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테러한 범인 지충호 씨(50)와 관련,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지 씨가 지난 1월 한국갱생보호공단 출소 이후 가깝게 지낸 인물 대부분이 한나라당 관계자였다는 것. <일요신문>이 현재 지 씨의 주소지인 인천시 남구 학익동에서 지 씨 주변 인물들을 다각도로 접촉한 결과, 지 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관계자는 네 명이다.
주민들은 “이들 중 일부는 최근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공천을 받지 못해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안다”며 “이들이 최 씨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 한나라당을 성토했고 여기에 한나라당을 평소 좋지 않게 보던 지 씨도 함께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지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진술과 관련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에 서운함을 표시하는 지인들에게 지 씨가 직접 나서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한 엉뚱한 자기 과시욕이 이번 범행의 동기가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지 씨의 범행 동기와 관련 지금까지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이다.
인천시 학익동 소재 집창촌(일명 ‘끽동’)은 ‘옐로하우스’와 함께 인천의 전통적인 집창촌으로 유명하다. 끽동 주변은 지충호 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한 현 주소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이미 지 씨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범행 전부터 지 씨를 알고 있었고, 일부 주민들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도 기자에게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중 가장 기자의 주목을 끌었던 얘기는 한나라당의 인천 남구 지역 지방선거 공천 잡음이 지 씨의 박 대표 테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이런 추측의 근거는 집창촌 자진 철거에 앞장선 이들과 지 씨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지난 2004년 이곳 집창촌을 자진 폐쇄하고 재개발하는 ‘학익동 특정지역 폐쇄안’이 구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학익동 집창촌은 업주와 국가의 합의하에 폐쇄되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인천시로부터 29억 원의 예산을 보조받는 데 앞장선 사람은 구의원 이 아무개 씨고 업주들의 자발적인 폐쇄안 동의를 이끌어 낸 이는 주민자치모임의 주요간부를 지낸 황 아무개 씨였다. 그리고 학익동 집창촌에 건물을 갖고 있고 지 씨와 절친한 사이인 최 아무개 씨는 이 씨와의 남다른 친분 관계로 건물주와 업주를 설득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 학익동 소재 집창촌은 절반이 완전 폐쇄됐고 나머지도 올해 안에 폐쇄될 예정이다.
최 씨는 지 씨가 출소 이후 가장 가깝게 지내온 오랜 친구 사이다. 지 씨의 현주소지 역시 최 씨 소재 건물이다. 따라서 지 씨가 최 씨를 통해 이 씨와 황 씨와도 친분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구의원 이 씨나 황 씨 모두 한나라당과 관련을 갖고 있으며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입후보를 위해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모두 탈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나라당 공천에 불만을 품고 모두 무소속 출마를 준비했으나 이 씨는 후보자 등록 마감 직전 뜻을 접었다.
▲ 지난 26일 공개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치료 장면. 이날 오후 진행된 치료이며 사진은 한 당원이 박 대표의 허락하에 찍었다고 한다. 사진제공=한나라당 | ||
하지만 당사자들은 지 씨와의 친분설이나 범행 자극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특히 황 씨는 “지 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며 소문을 강하게 부정했다. 집창촌 자진폐쇄 과정에 대해서도 “주민자치단체 간부로서 할 일을 했을 뿐 이 씨 최 씨와 별다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황 씨는 합수부 참고인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실제 지 씨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씨 역시 “지 씨와는 우연한 계기로 단 한번 만났을 뿐 친하게 지낸 사이는 결코 아니다”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계획하며 지역 조직을 다지기 위해 지역 유력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 최 씨와 지 씨가 있어 두 시간가량을 같이 있었던 것 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씨가 마련한 이 자리에서 오갔다는 대화가 눈길을 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이 씨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갑자기 지 씨가 “야당이나 무소속은 (당선돼도) 힘이 없다. 내가 한나라당 의원도 한번 패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만 힘이 있다”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는 것. 지 씨는 평소 상당히 자기과시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아래 ‘갱생보소호 관계자가 본 지충호’ 참조). 그런 성향의 지 씨가 이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서 아무개 씨도 한나라당 관계자로 지 씨와도 오랜 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다만 친분을 이용해 대출을 요구한 지 씨의 부탁은 거절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씨와 서 씨는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조사에서 이들은 “당시 이 자리에서 지 씨가 열린우리당 의원이 자신의 뒤를 봐준다며 실명까지 거론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열린우리당 의원 측은 “이 얘기를 들었다는 두 사람은 모두 한나라당 관계자가 아니냐”며 자신에 대한 음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 씨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이로 최근에도 몇 차례 만나 몇 십만 원씩 용돈을 준 하 아무개 씨도 한나라당원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지 씨는 한나라당에 대한 편견이 심한 편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자신의 주변에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많았고 이들 중에는 공천심사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지 씨 주변 사람들은 지 씨에 대해 자기과시욕이 대단했고 오랜 수감 생활 탓으로 편견이 대단히 심한 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 야당인 한나라당은 힘도 없고, 보호감호소 제도를 만든 나쁜 당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만난 주변 인물들 또한 한나라당 공천 탈락 등의 후유증으로 불만을 쏟아내자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더욱 크게 팽배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공천 탈락의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에게 야당인 한나라당은 힘이 없다는 자신이 옳았음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우월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주변 사람들은 보고 있다.
이 씨도 “지 씨가 작년 말에 한나라당 의원을 폭행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듣고 거짓말인 줄 알고 곧이듣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허풍이 심하고, 우쭐하는 성격의 지 씨가 더 큰 사건을 벌여 자기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박 대표에게 테러를 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셈이다. 이 씨가 지 씨를 만난 것은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보름 전이었다.
검찰 주변에서는 지 씨가 이 씨 등과 친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주변 인물들의 공천 탈락이 이번 테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자신의 주변에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많았고 이들이 자신을 다소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에 감정이 상한 지 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번 테러 사건을 자행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