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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유영철’로 불리는 정남규는 프로파일링 분석 결과 피해자의 고통을 즐겨온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 ||
하지만 이 가운데 정 씨의 범행으로 확인된 것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단 2건에 불과하다. 봉천동 세 자매 습격 사건과 신길동 강도 사건이 그것. 일각에서는 ‘폭발성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 성격을 나타내는 정 씨의 과대망상증에 검찰과 경찰이 농락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 우발 살인범을 놓고 마치 연쇄살인범인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에는 서울경찰청이 정 씨의 범행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2년 전 유영철 사건 때의 프로파일링이 당시 매스컴의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교하면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요신문>은 ‘범죄를 즐겼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정 씨의 프로파일링 내용 일부를 입수했다. 자신을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고 주장하는 정 씨, 프로파일링을 통해 본 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최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은 정 씨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현재 수사 중인 점을 감안, 전체 내용의 공개를 꺼려했다. 취재 결과 확보한 일부 내용에 따르면 정 씨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보다 더 위험한 연쇄살인범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완전범죄를 추구한 정 씨는 자신의 범행을 통해 희열과 만족감을 느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범행 후 범행현장을 다시 찾아가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의 희열을 재차 음미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파일링에서 그는 범행 결과보다 범행 과정을 더 즐겼던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정 씨는 특정 목적 없이 단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 그 자체를 즐겼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범행당시 피해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이나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 관찰하는가 하면, 자신의 범행이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스크랩해 놓고 이를 보며 즐겼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완전범죄를 위해 자신의 범죄를 분석하고 보완했다고 진술했으나 프로파일링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되돌아보며 즐기는 과정에서 우연히 깨닫게 된 것을 다른 범행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파일링 작성 등에도 불구하고 막상 정 씨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 씨 사건을 수사한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정 씨를 가리켜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오는 우물 같다”고 표현했다.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그의 자백에 경찰은 도대체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무엇보다 경찰을 난처하게 했던 것은 그의 자백을 뒷받침할 물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는 최근 정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칫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부천초등학생 유괴살해사건과 수유리 방화 살해사건 등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정 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원래대로라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진범이라는 단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이 지금까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총 20건의 미제강력사건들 가운데 대부분이 그의 자백만 있을 뿐 그의 소행임을 확실시 해주는 물증은 전무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 씨 사건 수사에 대해 서서히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 씨를 검거, 조사한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정 씨가 과거 2004년도에 저지른 범죄는 대부분 노상에서 일어난 범죄다. 게다가 어떤 목적도 없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어서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런 사건의 경우 대부분 검거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가 관건인데 1년 이상 지나면 물증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은 2004년 1월부터 6월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이 물증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씨를 수사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그가 자백한 내용이 사실일 것으로 믿고자 하는 분위기다. 그들은 “자백한 내용을 토대로 현장검증을 실시한 결과 그는 사건현장의 지리나 사건의 정황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수사 관계자들은 정 씨가 자백한 범행들을 통해 일정한 그의 범행 패턴을 내놓기도 했다.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정 씨가 자백한 2004년 1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발생한 10여건의 사건들 가운데 5월 9일 새벽 2시에 발생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칼에 의한 범행이었다는 것. 반면 2005년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자백 범행 10여건은 망치나 스패너 등 둔기를 사용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즉 초기에는 칼을 사용하다가 범행이 늘어나면서 둔기로 바뀐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 씨는 칼을 사용했을 때보다 둔기로 머리를 가격했을 때 피해자들을 보다 확실히 제압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다”며 “실제로 정 씨가 둔기를 사용한 범행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 씨의 자백 범행에서 드러나는 공통분모는 또 있다. 2004년 사건들은 2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상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나머지 2건도 빌라 계단 등 실제적으로 바깥이었다. 또 정 씨는 초기 범행 직후 항상 곧바로 도주했으나 2005년 10월과 2006년 3월 발생한 사건에서는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질렀다.
범행시간대 역시 대부분 새벽 2시에서 새벽 5시 사이에 발생했다. 이 사건들 중 새벽 6시경 발생한 사건은 모두 5건에 불과하다. 이처럼 정 씨가 자백한 범행은 한 사람에 의한 범행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주장이다. 경찰청내의 범죄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전형적인 범죄 진화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 씨가 자백한 범행들이 상당부분 거짓일 가능성은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정 씨는 자신의 범죄를 포함한 각종 강력범죄가 보도된 신문을 스크랩해온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범행을 위해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경찰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해 신발을 여러 켤레 마련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여 왔다. 또 사이코 스릴러물인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를 즐겨 본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이런 인물이라면 지능범죄행각에 대한 과대망상증이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 다시 말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싶은 나머지 자신을 고도의 지능범으로 포장해 범행을 거짓으로 부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부천초등학생 유괴살해사건에 대해서도 한 관계자는 “부천 사건과 관련 당시 수사 자료를 바탕으로 계속 조사는 하고 있지만 별로 나오는 것이 없다”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밖에 검거 직후 현장 검증에서 다소 과격한 행동 양상을 보였던 정 씨는 최근 들어서는 수사에 협조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범행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은 없다는 전언이다. 내성적인 성격의 정 씨가 자신의 범행을 진술할 때는 얼굴에 생기마저 감돈다는 것.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하지만 기억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술술 잘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