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조에는 뭔가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배어 있었다. 나는 기사들의 신세한탄 세상한탄을 자주 들어주는 편이다. 그들은 특히 불편한 도로행정에 대해서는 면도날같이 민감했다.
“말씀해 보세요.”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오입쟁이 우리 아버지가 힘이 뻗쳤는지 오십이 넘어서 나를 낳았어요. 무책임하게 그거 할 줄만 알았지 나를 제대로 키울 마음은 없었던 거죠. 그러니 제가 제대로 공부를 했겠습니까, 기술을 배웠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장가도 가지 못하고 택시회사 보조기사로 살고 있죠. 사납금 내고 나면 단칸방에서 살기도 빠듯합니다.”
기사는 자기 신세를 입으로 배설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느새 택시는 잠수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납색의 드넓은 강물이 봄 햇살을 퉁겨내고 있었다. 기사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저도 거시기 힘 좋은 아버지 핏줄을 받아서인지 아랫도리에 힘이 뻗치는 겁니다. 여자 손님만 보면 미치겠다니까요. 손님도 아시다시피 요새 여자 값이 얼마나 비쌉니까? 몇 푼 버는 걸로는 도저히 안 되요. 게다가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창피해서 집창촌에도 가지 못하겠어요. 젊은 놈들 천진데 제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요새는 왜 여자인형 있잖습니까? 그걸 마누라 대신 끼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얘기 부끄럽지만 제 솔직한 생활입니다. 이해해주실 분 같아서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정말 인생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그의 우스갯소리 같은 고백에는 진정이 들어 있었다. 그건 인간의 영원하고도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성경에도 반항하는 인간의 음란함과 이를 참던 하나님의 단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모세는 이디오피아 여인과 스캔들이 있었다.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덮쳤다. 칭찬받던 솔로몬은 나중에 수백 명의 첩을 들였다. 간디도 젊은 시절 창녀촌에 갔다는 고백을 자서전에서 몇 번씩이나 하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하는 얘기는 지극히 담백한 고백이었다.
잘 아는 어떤 목사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새벽기도 시간 한 여신도를 겁탈하고 싶은 욕망에 혼이 났다는 얘기였다. 그 목사는 참고 참다가 어느 날 그 여신도에게 솔직히 그런 자기의 고통을 고백하고 사죄를 했다고 말했다. 원초적 본능을 통제하는 진솔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는 순간 그의 음란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법당에서 경을 낭송하는 스님에게서도 그런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내남없이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고 인생인지도 모른다.
택시기사에게 한마디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농도가 잘못 설정된 리비도(인간 행동의 바탕이 되는 근원적인 욕구) 때문에 인생이 꼬인 한 택시기사의 사건을 맡아 변론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비슷한 얘기 하나 할 테니까 들어보실래요?”
나는 기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오십대 중반의 대머리 양도종 씨(가명)는 눈꼬리가 처지고 얼굴 중간에 납작 달라붙은 콧구멍이 하늘을 쳐다보는 코믹한 인상이었다. 그는 특이한 범죄자였다. 지난 20년 동안 줄기차게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여자 속옷을 훔치다 걸리고 잠자는 여자를 몰래 보다가 잡히곤 했다. 형사들은 도둑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강도범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억울한 징역을 산 세월만 해도 15년이 넘었다.
그는 아직도 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감옥에서만 나오면 며칠 후부터 다시 남의 집 여자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술 먹은 밤만 되면 그의 행동은 마치 몽유병 환자 같았다.
땀이 끈적끈적하게 배던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나는 구치소에 있는 그를 찾아갔다. 그의 형이 마지막으로 사고뭉치 동생의 옥바라지를 한다면서 내게 변론을 부탁했다. 형의 말로는 그들의 아버지 역시 시골에서 정신병 증세를 앓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번 쓰러졌다 일어난 후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을 벗고 마을을 방황하곤 했다는 것이다.
양도종 씨가 구치소 변호사 접견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취했다 깬 사람처럼 기가 푹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착하고 양순한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시작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다.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의 여자 훔쳐본 것만으로 감옥생활 15년은 너무 심했다. 그가 무안한지 손으로 뒤통수를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젊었을 때 택시기사를 했는데요. 어느 날 밤 하도 오줌이 마려워서 골목길에 차를 세워놓고 볼일을 보는 중이었죠. 그런데 눈 아래 지하실 방의 창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만 걸친 여자 몸이 그대로 보이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쿵쿵 뛰고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 다음부터는 멀쩡하다가도 소주 몇 잔만 걸치면 갑자기 그 지하방의 벌거벗은 여자몸뚱이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발동이 걸리면 나도 모르게 지하방에서 벗고 자는 여자를 보러 골목골목을 찾아 나서는 거예요.”
어느새 그의 표정이 바뀌고 있었다. 쾌락을 찾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결혼하지 그랬어요?”
내가 물었다.
“결혼은 이상하게 싫어요.”
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창녀촌에 가서 돈 주고 보지 그래요? 그러면 징역은 살지 않을 거 아닙니까?”
이미 병자인 그에게는 무의미한 소리일 줄 알면서도 말했다.
“창녀는 전혀 자극이 되지 않아요.”
“그러면 차라리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면 안 될까?”
주거에 침입하지 않으면 죄가 될 거야 없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처음에는 대문 밖 담 위에서 보죠. 그러나 일단 보면 마음에 차지 않아 점점 가까이 가게 되요.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방문 앞까지 가게 되죠.”
그 바람에 그는 매번 잡혔다. 술 취한 상태라 도망도 제대로 치지 못하곤 했다. 그는 이번에도 그 집 아들인 고교생에게 되게 얻어맞은 후에 경찰에 넘겨졌다. 맞는다고 고쳐지는 병이 아니었다. 그가 신나는 어조로 계속했다.
“변호사님이 몰라서 그렇지 바로 문 앞에서 남편하고 일을 벌이는 여자를 보고 싶은 거죠. 어떤 여자들은 내가 보는 걸 알고 일부러 몸을 더 비틀어서 나를 자극한다니까요. 그 맛을 사람들은 모른다니까요.”
순간 그런 장면들이 또 연상되는지 그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는 이미 중증의 환자였다. 그런데 그의 죄명은 이번에는 준강도였다. 그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하다가 주인여자의 아들과 서로 밀치고 한 게 폭행을 한 것으로 됐다. 나중에 보니까 주인여자의 핸드백에 있던 1만 원짜리 한 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게 형법상 준강도의 요건이었다.
재판이 열렸다. 그가 재판장에게 항의했다.
“난 정말 여자를 보기만 했지 돈은 안 가져갔어요.”
“그럼 여자를 증인으로 불러볼까?”
재판장도 동정이 가는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그러자니까요. 재판장님, 나, 그 여자 삼자대면 하자구요. 삼자대면.”
“그래 당신이 좋아하는 삼자대면을 하자구.”
재판장이 허락했다. 그의 준강도 혐의는 풀어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이 주일 후의 공판정에 여자가 증인으로 나왔다. 몸빼 같은 헐렁한 바지를 입은 얼굴에 주름이 많은 노파였다.
“나이가 몇 살입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육십이유.”
나이보다 더 들어 노파로 보이는 그 여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재판장은 노파의 모습인 증인을 보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도 속으로 ‘악’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검사, 물으시죠.”
재판장이 말했다. 검사가 노파에게 물었다.
“저기 저 남자 아시죠?”
그 말에 증언석의 노파가 피고인석에 있는 양도종을 바라보았다.
“알아유. 저 사람이 나 혼자 자고 있는데 들어왔시유.”
노파가 말했다.
“저 사람이 (뭘) 보러 왔어요? 돈을 훔치러 온 거 같았어요?”
검사가 물었다. 검사의 심증은 강도였다. 관음증은 범인이 대는 핑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유 저 남자가 간 후에 지갑을 살펴 보니께 1만 3000원이 없어졌시유.”
노파가 말했다. 이때 피고인석에 있던 피고인 양도종이 발끈하면서 소리쳤다.
“이봐요. 사람이 정직해 봐요. 그러면 못써요. 내가 아줌마 벗은 거 보기만 했지 언제 돈을 가져갔어.”
“아, 맞아유. 3000원은 내가 다른 데 쓰고 1만 원만 없어졌슈.”
노파가 말을 바꿨다. 양도종은 노파를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렸다. 노파는 기가 푹 죽어 있었다.
“피고인, 조용히 해요.”
재판장이 말렸다. 양도종은 이제는 죄의식조차 전혀 없었다. 결국 그는 이번에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 거의 20년의 징역을 그는 채울 모양이었다.
“와, 너무하다. 보기만 했는데 징역 3년이라니.”
택시기사가 놀라서 말했다. 어느새 차가 시청 앞 광장을 돌고 있었다. 파란 잔디밭 위에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나를 내려준 기사가 웃으면서 말하고 떠났다. 실종된 성도덕과 과잉성욕은 수많은 성범죄를 양산하고 있다. 비아그라만 필요한 때가 아니라 성욕감퇴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