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 대령은 이 같은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FX 사업 진행 과정상의 비리를 담은 육성녹음 테이프를 제작했다. 이 내용은 당시 상당수의 군 수뇌부 실명이 거론된 채, ‘F-15K 밀어주기’를 위해 노골적으로 외압을 행사한 충격적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당시 이 내용의 공개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판정을 받고도 F-15K에 밀려 탈락한 라팔의 제작사인 프랑스 다소사 측과 국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했다.
그렇다면 2002년 당시 FX 사업 때 정부와 군 수뇌부는 왜 노골적인 ‘F-15K 밀어주기’에 나섰을까. 군사평론가 김종대 씨는 당시 FX 사업 의혹을 집중 제기하면서 “2001년 3월 초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3년 전 대통령 당선 뒤 첫 방문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보잉사는 3년 전 한국이 미국의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자사의 여객기를 사준 사실을 떠올리면서, 이번에는 미국의 햇볕정책 지지 대가로 한국 정부가 자사의 전투기와 헬기를 구매할 것이라는 달콤한 기대로 김 대통령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군 수뇌부와 김 대통령 주변의 친미 군맥을 예로 들며 K 장관, L 전 장관, C 합참의장, C 국방부 고위 관리 등의 실명을 줄줄이 거론하기도 했다.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군에서는 이미 FX 사업을 ‘F-15급 전투기사업’으로 차기 공격헬기 사업은 ‘아파치급 공격헬기 사업’으로 부르는 등 사업명칭에서부터 이미 미국 무기를 채택할 것임을 알리는 기조로 흘렀다”고 밝혔다.
우리 내부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방미 때 직접 F-15를 도입해줄 것으로 요청했다. 심지어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은 당시 <아시아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만약 한국이 F-15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공군에서는 왜 F-15를 극렬히 반대했을까. 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국의 주력전투기 도입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F-15는 사실 전두환 대통령 때 도입하려다가 미국의 반대로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후 노태우 정권에서 군은 F-15 대신에 구형인 F-16을 도입했다. 따라서 그의 말대로라면 사실상 10년 전에 도입했어야 할 전투기를 당시엔 미국의 반대로 못했다가 10년이 지나서야 차세대 주력전투기라며 도입을 떠들고 나선 셈이다. 김 씨 역시 “2002년 이미 F-15K는 세계적으로 단종 위기에 놓인 차세대가 아닌 구세대 전투기였다”고 비난했다.
심사 과정에 대한 의혹도 쏟아졌다. 실제 FX 사업 1단계 평가에서 프랑스의 라팔은 F-15K보다 더 높은 평점을 얻고도 탈락, 음모론을 더 부추겼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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