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의 개인 전용 별장으로 알려진 건물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미 재계 주변과 마을에선 수조 원의 공사비용이 들어간 최고 수준의 고급 호화 별장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보광 측은 “이 회장 개인전용 별장이 아니라 스키장 VIP 회원용 콘도”라고 밝히고 있으나 취재진이 직접 현장을 확인한 결과 고급 빌라형 콘도는 이 건물과는 별도로 도로가에 건설 중이었다. 그 안쪽에 상당히 고급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자태의 호화 건물은 누가 보더라도 별장의 모습이었다. 마을 주민들도 이 건물을 모두 “이건희 별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삼성그룹 주변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사석에서 “만약 이 회장이 5년만 일찍 스키에 매료됐더라면 아마도 보광 휘닉스파크는 동양 최고의 스키장이 됐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보광 휘닉스파크는 보광그룹에서 경영하는 종합리조트 회사. 보광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된 기업으로 재계에서는 실질적인 ‘범 삼성가’로 통한다.
최근 들어 이 회장의 각별한 스키 사랑은 종종 매스컴에 회자되곤 했다. 지난 2003년 3월 <시사저널>은 ‘이건희, 스키사랑에 빠지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 회장이 환갑을 넘긴 나이에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폐암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로 이 회장은 2003년 2월부터 스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시작된 이 회장의 스키 사랑은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졌다. 지난 2005년 1월에는 삼성 계열사 사장단을 휘닉스파크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스키 정신을 경영에 접목시키기 위해 스키를 배우라고 권유해 ‘스키 경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스키에 흠뻑 빠진 이 회장은 매년 스키 시즌 때마다 부인 홍라희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휘닉스파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스키시즌마다 휘닉스파크를 찾는 이 회장 가족들이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 이런 까닭에 지난 2005년 겨울 스키시즌 무렵부터 휘닉스파크 주변에서 이 회장의 개인 별장이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한때 잠잠하던 소문이 다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역시 휘닉스파크 주변이었다. 1년여에 걸친 공사가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사실 확인을 위해 기자는 지난 7일 휘닉스파크가 있는 강원도 평창군 보현면 면온리를 찾았다. 때마침 휘닉스파크에서는 삼성그룹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선 위치 확인을 위해 면온리 주민들에게 탐문했다. 놀랍게도 마을 주민들 중 상당수가 별장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휘닉스파크 인근에 별장 공사 하는 게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 이건희 회장 별장을 찾는 건가”라고 답하기도 했다. 몇몇 주민들은 정확한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 출입이 잘 안 된다고 하더라. 아마 들어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행해지는 대규모의 별장 공사는 의외로 주민들 사이에 쉽게 노출이 된 듯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거기서 일하는 인부들이 한동안 우리 가게에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모를 수가 있겠느냐”며 “길가 쪽으로는 최고급 빌라를 짓고, 그 안쪽에 별도로 이 회장이 사용할 별장을 짓고 있다더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알려준 그 장소는 휘닉스파크 내부 부지였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으로는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도로가에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빌라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는 작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듯했다. 작은 길을 따라 약 50m 올라가니 또 하나의 고급스런 건물이 드러났다. 누가 보더라도 고급 별장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별장까지의 접근이 쉽지만은 않았다. 길 중간 부분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건물 앞까지 다가가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관계자가 “여기는 오면 안 되는 곳”이라며 빨리 되돌아 나갈 것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거기서 물러나와 인근의 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별장 전경을 살필 수 있었다.
확인 결과, 공사 중인 도로 어귀의 빌라형 건물은 ‘노블스윙 콘도’였다. 이 콘도는 이미 지난 2004년 5월경 공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자료에는 보광 휘닉스파크 측이 61평형과 90평형의 54개 객실을 갖춘 최고급형 노블스윙 콘도미니엄을 217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신축하기로 했다고 기재돼 있다.
그런데 그 안쪽에 별도로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또한 노블스윙 콘도 공사 현장과는 달리 이 건물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등기부 등본 확인 결과, 문제의 건물은 아직 준공검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탓인지 기재돼 있지 않았다. 토지는 보광 소유로 등재돼 있었다. 노블스윙 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은 문제의 이 건물 건물이 왜 재계와 마을 주변에서 이 회장의 개인전용 별장으로 소문이 났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다음날인 8일, 다시 건물을 찾은 취재진은 건물 측 관계자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몇몇 공사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회장 별장이 아니라, 보광에서 짓는 건물”이라며 자세한 대답을 피했다. ‘어떤 용도의 건물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우린 잘 모른다”고 피했다.
관계자들의 감시의 눈을 피해 입구까지 들어갔다. 입구는 마치 미술관 내부인 듯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때마침 관리직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에게 ‘이곳이 이 회장 별장인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유니폼 착용의 여직원 세 명이 취재진에게 다가와 “보광에서 짓는 VIP 회원전용 숙소일 뿐”이라며 “왜 이 회장의 별장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니 빨리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곁에 있던 관리직 여성도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자리를 피했다.
보광 측에서는 이 건물을 VIP 회원 전용 숙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건물은 빌라나 콘도형 건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 흔한 대형 주차장도 없었다. 완벽히 한 가족을 위한 별장의 모습이었다.
개인 별장으로 치기에는 꽤 큰 편이지만 콘도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았다. 보광 주변에선 “노블스윙 콘도 이용자보다 더 VIP급인 극소수 회원을 위한 건물”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보광 입장에서는 이 회장만한 극소수 VIP가 또 누가 있겠는가. 그렇게 따진다면 보광에서 나오는 얘기도 굳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편 평창군 주민들은 이 회장의 별장 건립에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의 별장이 평창군의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현재 평창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러시아의 소치 등과 경쟁하고 있다. 한 주민은 “소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별장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더라. 그렇다면 우리 평창에도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이자 IOC 위원인 이 회장의 별장이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평창=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