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한나라 충북도당 여성위원들의 워크숍 단체사진. | ||
그런데 5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사건이 다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술자리 추태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최광옥 위원장이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 1순위로 당선됐기 때문. 선거 과정에서부터 충북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이 어떻게 이런 부적절한 인사를 중용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충북도당 차원의 일로 애써 선을 긋고 있지만 또 다시 불거진 술 추문이라는 악재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도당 측에서는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소문을 접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사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1월 20일 밤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충북도당 여성위원회는 충주호리조트로 1박2일의 워크숍을 떠났다. 물론 여성 당직자들만의 행사였다. 밤에 술판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행동이 저질러졌다.
이후 이 추문은 ‘소문’으로 충북 지역 정가에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소문의 강도도 점점 더해갔으나 구체적인 증언이 없는 정가의 루머 정도로 치부됐다. 오히려 ‘근거 없는 흑색선전’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결국 이 추문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였다. 충북 지역신문인 <동양일보>가 지난 6월 18일자로 처음 ‘한나라당 충북도당 여성위 워크숍 술자리 추태 파문’이라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이후 이 내용은 중앙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애써 외면으로 일관하던 한나라당에서도 급기야 지난 23일 대변인 성명으로 철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히는 수순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뒤늦은 대응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과연 한나라당이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겠느냐 하는 점이다. 실제 충북 현지에서는 “한나라당 충북도당이 무조건 사안 자체를 은폐, 축소하려다가 결국 곪아 터진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또한 “한나라당 중앙당도 애써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충북도당은 이 같은 사실을 언제쯤 파악했을까. 이미 2월부터 청주를 중심으로 관련 소문이 확산됐던 만큼 비슷한 시기에 충북도당도 이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역 정가의 추정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충북도당 김회구 사무처장은 “지난 4월 이 사안을 처음 보고 받았는데 당시에는 단지 음해성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충북도당은 지방선거 공천 심사 직전 이 사안을 심각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술자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최 위원장이 비례대표 공천심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김 사무처장은 “5월 10일쯤 이뤄진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일부 공천심의위원들이 이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다”며 “다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결국 최 위원장은 도의원 비례대표 1번 공천을 받아 무난히 당선됐다.
▲ 당시 워크숍 행사 일정표. | ||
공천 과정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됐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송광호 당시 충북도당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특히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송 위원장이 측근인 최 위원장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도덕성 논란을 묵살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도당 측은 “당시에는 분명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모여 술자리를 갖다 보니 문화적 차이에서 오해가 생긴 듯하다”면서 “남자들의 군대 문화처럼 여성위도 그들만의 규율에 따른 군기 잡기를 한 것 같은데 일부 소장파 위원들이 이를 오해해 다소 강압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직후 지역 언론에서 이 문제를 취재하기 시작하자 도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애쓴 정황도 드러났다. 6월 초 충북 지역의 한 방송국에서 이 문제를 집중 취재했으나 결국 보도가 안 된 것으로 밝혀진 것.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도당 여성위 관계자들이 해당 방송국을 항의 방문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들이 방송국을 점거 농성해서 보도를 막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도당 측은 “점거를 하거나 항의 방문을 한 게 아니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안이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사건의 은폐, 축소를 위한 도당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건 은폐를 위한 서명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최 위원장이 받았다는 서명은 대략 ‘옷 벗을 것을 강요한 적도 강제로 옷을 벗기지도 않았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그 대상은 물론 당시 워크숍 참가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서명하지 않으면 제보자라는 누명을 쓴다며 서명을 강요했다”고 얘기할 정도. 이런 의혹에 대해 최 위원장은 “술자리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을 받았을 뿐”이라며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게 아니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도당 측은 진실 규명보다는 오히려 내부 제보자 색출에 더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신 아무개 씨(여·43)가 유력한 제보자로 의심받기도 했다. 신 씨는 도의원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최 위원장과 최종적으로 경합한 강력한 경쟁자였기 때문. 결국 그는 접전 끝에 최 위원장에 밀려 낙선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최 위원장이 이번 파문의 책임으로 물러나게 될 경우 신 씨가 의원직을 승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씨는 “내가 정말 도의원에 욕심을 냈다면 지금이 아닌 공천심사 과정에서 이 사안을 문제 삼았을 것”이라며 소문을 일축했다.
이번 사안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최근 송 위원장이 도당위원장직을 사퇴하는 등 충북 정가 역시 어수선하다. 한 도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처벌 징계보다는 피해자가 있다면 구제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어 모두 화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당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사안의 심각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도당의 적절치 않은 입장으로 지역 여론이 악화되고 그 불똥이 급기야 서울에까지 튀게 되자 결국 한나라당 중앙당이 침묵을 깨고 최근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이계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개인적인 일로 도덕적인 지탄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연관시키려는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과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중앙당 여성위원회와 당 윤리위원회의 여성위원인 이계경 의원과 나경원 의원으로 합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하게 현지 조사를 벌일 것이다. 만약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 문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만약 이 같은 추문이 모두 사실로 밝혀질 경우 도당 차원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고스란히 그 비난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표정은 썩 개운치 못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