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담당 검사 등 관련자들은 인권위의 고발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 측은 “지난 1년간 양측을 그야말로 철저하게 조사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인권위 측은 검찰의 반박에 대해 조목조목 재반박하며 “검찰이 해서는 안 될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를 저지른 것이 인정된다”고 재차 밝혔다.
대검 측은 “감찰부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혐의가 인정되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때 아닌 악재에 무척 곤혹스런 표정이다.
2001년 11월 19일 아침 7시 반경. 모 기업 전무이사였던 최 아무개 씨(55)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에 의해 연행되어 인천지검 특수부로 끌려갔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가 포착됐다는 설명이었다. 이후 최 씨는 22일까지 3박4일간 특수부 검사실 및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 씨가 폭행 및 가혹행위를 당해 늑골이 골절되는 상해 등을 입은 것으로 인권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최 씨의 이 같은 피해사실은 그의 지인인 김 아무개 씨(53)가 인권위에 지난해 6월 해당 검사 및 수사관 등 3명을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수면위로 드러나게 됐다.
김 씨가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처음부터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해 오던 검찰이 본격적으로 폭행을 시작한 것은 조사 이틀째인 20일부터였다는 것. 최 씨는 이날 수사관 B 씨와 P 씨에게 조사실에서 무릎을 꿇린 뒤 구둣발로 걷어 채이고 그것도 모자라 발뒤꿈치로 무자비하게 밟히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폭행은 횟수가 반복될수록 강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검찰은 무릎 꿇고 앉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최 씨의 왼쪽 가슴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했고, 이어 충격을 견디지 못한 최 씨가 오른쪽으로 넘어지자 그의 늑골부분을 발뒤꿈치로 두세 차례 밟아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혔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담당 검사는 자백을 강요하며 말아 접은 폐복사 용지를 최 씨의 목구멍에 넣고 돌려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가혹행위를 했다고 진정서는 주장하고 있다. 최씨는 또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심한 욕설과 폭언을 당하여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는 등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검사와 수사관 측은 최 씨의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진행된 인권위 조사에서 “최 씨를 연행한 당일 변호사가 선임되어 피해자를 접견하였을 뿐 아니라 가건물 형태의 검찰 조사실 시설구조상 불법행위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최 씨는 당시 사건에 있어서 유일 진술인이었다. 자백 여부에 따라 사건해결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유일 진술인을 폭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최 씨가 뒤늦게 인권위에 진정한 것에 대해 “당시 폭행을 당했다면 재판과정 및 고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4년이 경과한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폭행 및 가혹행위 사실 일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지난 1년 동안 최 씨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양측을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최 씨의 주장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최 씨의 손을 들었다.
인권위 구제1팀의 김용국 팀장은 최 씨가 사건 진정을 미뤄온 배경에 대해 “당초 최 씨는 이 사건에 대해 진정할 ‘의사’가 없었다기보다 ‘의지’가 없었다”며 “검찰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무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권위를 통해 진정서를 제출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김 팀장은 “최 씨는 검찰조사 직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와 정형외과 진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김 팀장은 “최 씨의 주장에 거짓이 포함됐을 가능성에 대해 주목했다”며 “우선 최 씨가 검찰 조사 이전부터 지병이나 부상이 있지 않았나 하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최 씨의 최근 6년 간 병력을 모두 조사했지만 늑골 골절상 등 최 씨의 병원 치료는 모두 검찰조사 직후 받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최 씨가 검찰에서 귀가한 다음날 정형외과 치료 후 발부받은 상해진단서의 상해사실 △최 씨가 귀가 이틀째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기재된 폭행 및 가혹행위 등에 대한 기록 △최 씨가 검찰조사 전에는 정형외과 및 신경정신과 분야 진료를 받은 사실이 없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기록 △최 씨의 검찰조사 시 진술을 토대로 공소 제기된 재판이 최종 무죄로 확정된 점 등 기타 제반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최 씨는 검찰 조사가 있은 4개월 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고 이 때문에 수년간 거의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왔다”며 “뿐만 아니라 남편 때문에 충격을 받은 최 씨의 아내도 건강이 악화돼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전했다. 최 씨가 의식을 찾은 것은 2005년 초의 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가 연행된 그날 변호사를 선임케 했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김 팀장은 “검찰 측의 주장을 조사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최 씨 아내의 요청으로 변호사를 알아봐 준 참고인들의 변호사 소개 경위에 대한 진술 △변호사 선임 착수금 영수증이 연행 3일째인 11월 21일자로 발행된 사실 △수임변호사는 선임 전에는 최 씨를 접견한 사실이 없으며 선임된 후에 검찰청에 들어가 A 검사를 만나 선처를 요청하고 최 씨를 접견하였다는 진술 △변호사 선임 전부터 최 씨가 검찰조사를 받고 있었다는 참고인의 진술 △자신이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날인 11월 22일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최 씨 아내의 진술 △최 씨 진술조서 이외에는 긴급체포서 등 적법절차와 관련된 검찰 수사서류가 전혀 없는 점 △최 씨가 귀가 후 치료를 받은 ○○신경정신과 원장이 작성한 당시 의무기록지에 기재된 검찰 조사기간이 최 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최 씨를 특수부 검사실 및 조사실에서 적법절차 없이 3박4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한 채 조사한 사실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이는 최 씨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함은 물론 형법상 불법감금죄를 구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팀장은 “당시 최 씨를 조사한 담당 검사는 수사를 총괄 지휘한 사람으로서 위와 같은 피해자의 폭행 및 가혹행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B 씨와 P 씨 등 검찰수사관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은 이날 참고인을 불법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인권위에 의해 고발된 담당 검사와 전ㆍ현직 수사관 B 씨, P 씨를 감찰부에서 직접 수사하도록 지시하고 이들의 위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