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상품권 인증제가 도입되자 1~2년 새 성인오락실이 전국에 3만여 곳이나 생겨났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상품권은 돈처럼 환전돼 여느 도박장 못지 않다. 사진은 한 성인오락실 전경. | ||
성인오락실의 폐해가 불거질수록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대박에 환호하고 있다. 이미 상품권 시장은 20조 원대를 상회하고 있다. 대한민국 1년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국내의 유명 카지노 전문가는 “카지노장이나 성인오락실 같은 사행성 사업만큼 비자금을 조성하기 좋은 사업은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업계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설이 파다하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권에서조차도 의혹의 핵심인 상품권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문광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지난 DJ 정권에서 상품권 정책은 이미 한 차례 혹독한 폐해를 경험했지만 현 정권 들어 오히려 시장을 더 키우는 정책만 나오고 있다. 현 정부가 상품권 시장을 확대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신음소리도 높아만 가고 있다. 그래도 문광부는 폐지 요구에 상품권 발행업체들의 반발만 우려하고 있다. 끊임없는 의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야권의 한 인사는 “카지노도 그렇고 성인오락실도 그렇고 사행성 산업에 있어서는 DJ 정권의 맥을 현 참여정부가 기가막히게 잘 이어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알려진 성인오락실의 수는 무려 3만여 개로, 그 거래규모는 경마와 경륜, 경정, 강원랜드 카지노의 총 매출액인 10조 원의 4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인오락실의 폭발적 흥행의 배경에는 상품권이 있다. 문광부가 처음 상품권을 성인오락실의 경품으로 도입한 것은 DJ 정권 말기인 2002년이었다. 당시 5000 원짜리 도서상품권과 문화상품권이 성인오락실의 경품으로 사용되도록 합법화했다.
당시 문광부는 이들 상품권을 경품으로 도입한 데 대해 “도서 산업과 영화 산업의 장려와 국민의 문화 함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다소 상식 밖의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곧 엄청난 실책이었음이 드러났다. 도서상품권과 문화상품권은 밖에서 문화적인 용도로 활용되기는커녕 성인오락실 내에서 돈으로 환전되어 사용됐다. 그 때문에 오락실 한 켠에 ‘환전소’가 생겨서 상품권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줄을 서는 새로운 풍속도만 낳고 말았다. 사실상 돈 놓고 돈 먹기가 이뤄진 셈이다.
강원랜드의 일부 문제점과 함께 이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는 당시 DJ 정권의 성숙하지 못한 문화 정책의 대표적 존재로 지적됐다. 실제 지난 2003년 초 문화계의 한 인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에 즈음해서 “사행성을 조장하는 오락실 상품권 등의 폐해를 막아달라”는 당부를 따로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들어 초기에는 성인오락실 사업이 다소 사양길에 접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 정반대의 양상으로 치달았다. 문광부는 지난해 2월 ‘상품권 인증제’를 도입했다. 그동안 도서상품권과 문화상품권만 인정하던 것에서 완전히 상품권의 문호를 확대 개방한 셈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갖가지 정체불명의 상품권이 무려 50여 개에 달할 만큼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켰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은 ‘상품권과 같은 유가증권을 오락실 경품에서 제외하자’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상품권 발행업체들로부터 행정소송이 줄 이을 것’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문광부가 반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문광부는 지난해 3월 인증제에서 다시 지정제로 변경시키는 엇나가는 정책을 계속 이어나갔다. 마치 상품권의 발호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는 듯했다. 지정제로의 변경은 지역별 가맹점 비율을 없애는 등 상품권 지정 요건을 오히려 대폭 완화, 상품권 유통을 더욱 확대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지난해 9월 열린 국감에서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정동채 장관에게 “당시 22개의 상품권이 문제가 불거져 인증이 취소됐음에도 이들 중 몇몇 특정업체는 지정제에서 그대로 살아 남았다”며 “사실상 이들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인증제를 지정제로 살짝 말만 바꾸어 처리한 것 아니냐. 이런 식이니 문광부와 상품권 발행업체 사이에 로비 특혜 의혹이 불거지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여당인 노웅래 의원도 “문광부가 상품권 불법 환전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제도를 완화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는 문광부와 상품권 발행업체간 유착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상품권 문제가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자 지난 1월 문광부는 “상품권 제도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성인오락실에서 사용되는 상품권들. 현재 종류만 50여 개에 달하며 올해 5월까지 21조 원어치가 발행됐다. | ||
이 관계자는 “상품권 지정제도는 상품권의 유통건전화를 도모하고 불법환전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한 것이며, 문광부 산하기관인 게임산업개발원은 불법 환전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상품권은 경품으로 지정하고 있지 않다”는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그는 또 “문광부가 사행성 게임사업을 암암리에 주도해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문광부는 경품용 상품권의 환전을 방지하고 유통 건전화를 위해 최선의 대응책을 마련해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미 현장에서 현 상품권의 불법 환전이 만연하고 있는 실태를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실상을 모르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이런 가운데 문광부와 상품권 발행업체 간의 유착 의혹을 결정적으로 부추기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임산업개발원이 상품권 업체로부터 100억 원대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았기 때문. 노웅래 의원은 “게임산업개발원은 경품상품권을 발행하는 업체들로부터 게임문화진흥기금 조성 명목으로 발행가의 0.04%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아왔다”며 “조성한 액수는 5월을 기준으로 120억 원에 달하며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2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특정한 목적사업을 위해 민간사업자로부터 돈을 걷으려면 기금관리법에 의거해 개별법률에 근거조항을 신설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문광부가 국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 기금의 실체나 규모에 대해 국회에 보고한 적도 없다는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이와 관련, 상품권 유통으로 생성되는 자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게임문화진흥기금을 게임산업개발원에 위탁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금납부를 조건으로 상품권을 허가해 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에 문광부 고위 관계자는 “상품권을 허가해준 대가로 수수료를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게임산업개발원이 발행업자로부터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게임문화진흥기금은 상품권 발행사가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게임산업개발원과 자율적 합의에 의해 출연되는 민간 자율기금으로서, 법적근거를 요하는 정부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문광부가 게임산업개발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문광부와는 전혀 무관한 듯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데 대해서도 의혹과 비난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면 밖으로 드러난 수수료만 100억 원대이고, 실제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거래되는 돈은 수천억 원대가 넘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성인오락실의 상품권지정제가 도입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발행된 상품권은 21조 656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오락실 업계에서는 “상품권 발행업체는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았다”는 얘기가 서슴없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야권의 한 인사는 “성인오락실 사업으로 이미 50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인사는 “성인오락실 사업을 사실상 문광부가 주도하고 있듯, 상품권 발행업체도 문광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 업체 주변에서 친여 성향의 인사들이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에 대해 단순히 근거없는 루머 정도로 넘기기엔 뭔가 석연찮은 개연성이 느껴진다”고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며칠 전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명계남 씨를 거론하기도 했다. 주 의원은 “14개 상품권 발행업체에서 8조 5000억 원어치의 상품권을 발행했고, 발행업체가 받는 2%의 발행수수료 중 일정 부분은 명 씨가 뒤를 봐주면서 리베이트 형태로 가져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폭로의 실체에 관심이 모아졌다. 무책임한 터트리기식 폭로가 아니냐는 비난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주 의원의 최측근은 “검찰에서도 한때 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 검찰 관계자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명 씨 때문에 왠지 수사하기가 찜찜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명 씨는 이에 대해 의외로 큰 반발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면책 특권을 이용해서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면 안 될 것”이라는 점잖은 대응에 그쳤다. 이후 그는 이에 대해서 일절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대신 명 씨의 한 최측근이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대구지역에서 이 소문을 접했다”며 “100% 음해성 루머다. 맹세컨대 명 대표는 게임장 사업에 조금도 관여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는 명 대표가 아닌 정부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 때도 지방에서는 이것을 아주 요긴하게 우려먹었다는 얘기도 있더라. 명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 차라리 철저한 수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