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제이유그룹은 대종상 영화제를 후원했다. 당시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주수도 제이유 회장(오른쪽 세 번째)이 리셉션에서 영화인들과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제이유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사진이다. | ||
최근 중견 탤런트 정욱 부자가 불법 다단계업체를 운영하며 1000억 원대 투자금을 모은 혐의를 받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정욱은 얼굴만 빌려줬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란’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파문을 불러온 제이유 그룹에도 몇몇 연예인이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연예계에선 다단계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가수 K의 친형, 인기 영화배우 L의 고모 등을 통해 다단계에 빠져든 연예인도 상당수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위치의 연예인이 다단계의 수렁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단계 업체들이 연예인 붙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들도 피해자입니다. 우리처럼 속아서 제이유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이유 측은 유명 연예인도 사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순진한 일반인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들 역시 피해자지만 공인으로서 도덕적인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유 다단계사업 피해자인 중년 여성 김 아무개 씨의 증언이다. 김 씨뿐만 아니라 기자가 접촉한 제이유 다단계 사업 피해자들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신뢰할 만한 사람도 이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는 얘기에 제이유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이는 대중성을 확보한 연예인이 갖고 있는 최고의 무기다. 각종 대기업 CF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에게 수억 원의 개런티가 주어지는 이유 역시 이런 대중성에 기반한 신뢰성 때문이다. 그런데 제한된 대기업 CF는 대부분 톱스타로 구분되는 일부 연예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대중성은 확보됐으나 폭발적인 인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대다수의 연예인들은 고가의 대기업 CF 모델 대신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이들로 인해 종종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사기 사건으로 드러난 상가 분양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구설수에 오르는가 하면 효능을 과대 포장한 건강보조식품 광고에 출연해 물의를 빚은 연예인도 있다. 그리고 요즘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다단계 업체 역시 마찬가지. 물론 이런 사안에 연루되는 연예인은 사실 그 누구보다 막대한 타격을 입은 피해자들이다. 단순히 개런티를 받고 광고를 촬영한 것일 뿐인데 마치 해당 연예인이 의도적으로 일반인을 속인 듯한 상황이 연출돼 엄청난 이미지 손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욱의 경우 위의 사례들과 달리 본인이 직접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런 혐의가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미지 손상의 수준을 뛰어 넘어 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될 전망이다. 만약 정욱의 주장처럼 단순히 얼굴만 빌려준 게 사실이라면 법적 처벌은 면할 수 있겠지만 이미지 손상까지 피해갈 순 없다. 각종 드라마에 성공한 사업가로 출연하며 굳어진 정욱의 이미지를 믿고 사업에 투자했다 거액을 손해 본 피해자들의 원성이 정욱에게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단계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듯 연예인이 자주 연루되는 이유를 다단계의 특성 때문이라 설명한다. “다단계는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미지를 파는 곳”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다단계 업체는 판매하는 물건의 경쟁력보다 그 업체가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다. 바로 이런 신뢰를 쌓기 위해 업체의 투명성을 보장해줄 이미지 제고가 필수 요소라는 얘기다.
다른 연예인을 활용하기도 했다. 최고 경영자와의 만찬, 전진대회 등의 공식행사에 변진섭 방실이 설운도 박미경 해바라기 최진희 최유나 현숙 등 인기 가수들을 초대해 특별 무대를 가진 것. 이들의 공연 모습은 지금도 제이유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대외적인 활동에서도 제이유 그룹은 연예계를 적극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대종상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후원사로 참여한 것이다. 제41회 대종상 시상식을 후원해 조직위원장을 맡은 주수도 회장은 감독상 시상자로 시상식 무대에도 오르기도 했었다. 또한 주 회장은 지난 2003년 국내영화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폭넓은 후원 활동으로 영화인협회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뮤지컬 <청년 장준하>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을 후원하고 영화 <써클>을 제작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주 회장은 영화 <써클>에 조연급인 판사 역할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예계 후원 업체로 이름을 알린 제이유 그룹은 제이유프로덕션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영화 <까불지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제이유프로덕션에선 ‘박강성 콘서트’도 주최했다.
“회사에서 영화 <까불지마>를 만들고 박강성 콘서트도 주최한다고 얘기를 듣고 다단계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됐다”는 한 제이유 다단계사업 피해자의 얘기에서 연예계 활용 이미지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다단계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다단계 업체에서 며칠 동안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회사원 신 아무개 씨는 “인기 연예인을 거론하며 그들도 사업에 동참했음을 강조했다”면서 “그 증거로 신문 스크랩을 보여줬는데 자기네들이 조작해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고 얘기한다.
연예인이 다단계에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는 불투명한 미래에 있다. 몇몇 성공한 중견 탤런트나 가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예인은 활동 시기가 제한돼 있다. 인기라는 게 바람 같아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대중성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부업을 찾으려 한다. 가장 흔한 연예인의 부업은 음식점을 개업하는 것이나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연예인들에게 다단계 업체들이 엄청난 수익을 보장하며 다가가는 것이다. 또한 동료 연예인의 권유를 받아 다단계에 빠져드는 이들도 상당수다. 믿는 선배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든 것. 비슷한 상황을 다룬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두고 억지 연출이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연예계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단계 업계 관계자들은 “연예인과 같은 저명인사들은 다단계 사업 망에서 많은 배려를 받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배려로 빠른 시일 내에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서 연예인을 끌어들이지만 얼마가지 않아 피해만 본 뒤 그만두는 연예인이 상당수”라고 설명한다. 물론 잠시 몸을 담았던 연예인에 대한 자료는 두고두고 홍보용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다단계에 연루된 연예인들 역시 대부분 피해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들 연예인의 이미지로 인해 해당 불법 다단계 업체를 신뢰하게 되는 일반인이 상당수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법적 처벌과는 무관할지라도 도덕적 책임까지 면제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