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한정국에 ‘게이트 태풍’이 밀어닥치고 있다. 아래는‘김홍수 게이트’를 다룬 14일 KBS뉴스. | ||
여기에다 또 2004년의 ‘썬앤문 게이트’도 다시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이 조사했지만 매듭을 짓지 못했던 비자금 60억 원의 정치권 유입설이 문병욱 회장 측근들의 진정으로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실 수사’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썬앤문 게이트’를 비롯 각종 ‘게이트’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참여 정부의 ‘레임 덕’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제2의 윤상림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 일고 있는 이른바 ‘김홍수 게이트’와 관련한 검찰의 칼끝도 정·관계 거물급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검사, 전직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현직 경찰 총경 등 10여 명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김홍수 게이트’는 외형상 대형 법조브로커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부장검사 김현웅)는 법조브로커 김홍수 씨(구속)로부터 청탁과 금품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고법 J 부장판사와 또 다른 현직 부장판사 3명, 이 사건과 관련해 얼마 전 사직한 K 전 검사와 지방 검찰청 평검사 모 씨,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P 씨와 H 씨, 서울지역 현직 경찰서장 M 씨(직위해제·대기발령 상태), 총리실 파견 근무 중인 L 경정, 서울지역 경찰 간부 L 씨와 하급직 경찰관 2~3명 등 10여 명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인사들은 김 씨로부터 최근 수년에 걸쳐 수백만~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J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네 차례의 소환조사와 함께 자택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이 이뤄졌고 K 전 검사는 이 사건이 불거진 직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법조계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비롯해 전·현직 판검사와 변호사, 검·경 직원들이 대거 연루된 이번 사건이 대형 법조비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며 검찰의 수사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서는 ‘김홍수 게이트’ 불똥이 법조비리에 그치지 않고 정·관계 거물급을 겨냥한 대형 비리사건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은 이 사건이 수면위로 부상(13일)하기 전인 이달 초 이미 검찰이 수사에 돌입한 사실을 인지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지난 6일 기자는 검찰청을 방문, 김현웅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장을 만나 이 사건과 관련한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당시 기자는 ‘김홍수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명단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였던 만큼 ‘리스트’ 명단과 함께 정·관계 인사 연루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이 사건은 검찰 출입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형평성 차원에서 기자의 취재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고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이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 사이에서 갖가지 의혹과 추측이 나돌고 있는 걸로 안다”며 “일부 의혹들은 전혀 사실과 다를 수 있는 만큼 검찰 수사를 지켜본 후 기사화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검찰은 ‘신중한 수사 진행’을 이유로 출입기자단에게 이달 말까지 엠바고 연기를 요청했으나 기자단이 받아들이지 않자 13일 지금까지 수사 진행상황을 일부 공개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김홍수 리스트’에는 주로 법조계와 경찰 인사들만 나열돼 있었다.
기자는 당초 이 사건에 거물급 정·관계 인사가 연루돼 있을 것이란 정황을 바탕으로 취재에 돌입했다. 대권주자 A 씨와 여권 실세 B 씨, 여권 핵심실세 C 씨의 측근인 현직 L 검사장 등도 ‘김홍수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정보였다.
먼저 여권 실세인 B 씨의 연루 여부가 관심사다. 변호사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장관급 고위직을 역임한 B 씨는 브로커 김 씨와 초등학교 동창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급 카펫 수입업자인 김 씨는 동창인 B 씨를 통해 법조계 인사들을 두루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아직 B 씨가 김 씨로부터 청탁이나 금품을 받은 정황은 포착하지 못했지만 사건이 확대될 경우 B 씨가 김 씨에게 법조계 인사들을 소개시켜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 B 씨가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이 이번 사건을 정치 쟁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 씨의 측근인 L 검사장도 ‘김홍수 게이트’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L 검사장은 몇 년 전 김 씨로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급 수입 카펫을 선물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부 고위직 인사 하마평에 올랐다가 낙마한 전례가 있다. 당시 L 검사장은 대가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검찰 수사는 피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김홍수 게이트’ 불똥이 정치권으로 확산될 조짐이 일면서 대권주자 A 씨의 연루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김 아무개 씨가 김 씨로부터 6억여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6월 초 구속기소 된 것이 단초가 됐다.
검찰은 김 아무개 씨에 대한 보강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구치소에 수감된 김 씨 방을 수색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법조인 로비 수첩’과 탄원서 등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들 문건을 단서로 김 씨에게 법조계 로비 혐의를 추궁했고 김 씨는 관련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김 씨와 정치권의 커넥션 의혹을 파헤치려 했던 검찰의 수사 방향이 문건 압수로 갑자기 법조계로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검찰의 사정칼날을 벗어난 건 아니다. 검찰은 김 아무개 씨가 장관 출신인 여권 J 의원의 보좌관을 역임했고 대권주자 A 씨의 비서관 출신이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김 아무개 씨는 J 장관보다 A 씨 측근으로 행세하며 로비 명목으로 거액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김 아무개 씨는 지난해 5월 김 씨에게 “A 씨가 모친상을 당했는데 찬조금을 달라”고 속여 2000만 원을 가로채는 등 A 씨 야유회와 회식비 등의 명목으로 4600만 원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김홍수 게이트’와는 별개로 김 아무개 씨에 대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김 아무개 씨가 로비 명목으로 받은 수억 원이 실제 정·관계 로비 용도로 사용됐는지 여부 및 일부 자금이 A 씨 측에 유입됐는지 여부 등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자세다.
‘김홍수 게이트’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전될 경우 하반기 정국은 온통 ‘게이트 정국’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