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뉴스를 보면서 나는 그 재판 과정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2001년 1월 1일 저녁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다. 태백시의 영암운수 버스기사 강일생 씨와 고참 기사 두 명이 대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고참 중 한 명이 강 씨에게 말했다.
“어이 강형, 새해 첫날이고 기분도 그런데 한잔 안 할래? 사북탄광 마을에 끝내주는 집이 있어.”
고참 기사들은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 같았다.
“글쎄요….”
강일생 씨가 주저했다. 그는 새벽에 배차를 받아야 했다. 술을 마시면 돌아와서 잠잘 시간이 없었다. 하루 종일 버스를 몰아야 하는데 졸리면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직장 고참들이 말하는데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선배기사들과 함께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사북의 단란주점에 갔다.
고참들이 그에게 술을 권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몇 잔을 받았다. 새벽 2시경 술자리가 끝났다. 고참 기사 한 명이 굳이 2차를 가겠다면서 승용차에 술 취한 여자를 태웠다. 술이 취하지 않은 그는 승용차를 몰아 밤늦게 태백시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경찰서 수사과의 박 형사가 강 씨에게 전화를 했다.
“일주일 전 동료 기사 두 명하고 단란주점 여자를 데리고 태백시에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요.”
“그 여자가 강간으로 고소를 했어요. 조서를 꾸며야 하니까 지금 바로 경찰서 수사과로 들어오세요.”
고참 기사가 그 여자와 2차에서 말썽이 생긴 것 같았다. 이상한 여자였다. 스스로 2차를 간다고 화대까지 받아놓고 강간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그가 경찰서 박 형사에게 갔다.
“누구한테 강간을 당했다는 겁니까?”
그가 고참 기사를 떠올리면서 박 형사에게 물었다.
“그 여자도 누구에게 당했는지 모른대. 그러니까 당신도 DNA검사를 해야겠어. 이 옆 의원에 가서 피를 뽑아와.”
졸지에 그는 강간혐의로 채혈까지 해야 했다. 형사는 일주일 전 그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물었다. 그는 무심코 그날 밤 단란주점에서 양주 몇 잔을 마시고 차를 운전해서 태백시로 온 걸 얘기했다.
“아, 그럼 당신은 음주운전이네? 몸무게는 얼마야?”
형사가 반색을 하면서 물었다. 형사는 결코 그를 그냥 놔주지 않을 얼굴이었다.
“65㎏요. 며칠 전에 마신 술인데도 음주운전이 됩니까? 몸무게는 왜 묻죠?”
그가 걱정하면서 물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대상이 되나 보게.”
“제가 음주측정기에 대고 분 적이 없는데요.”
그가 말했다.
“걱정 마. 우리 경찰은 위드마크 계산법으로 해서 일주일 전 음주량도 얼마든지 측정할 수 있으니까.”
형사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무실 철제 캐비닛 문을 열고 파일철 상단에서 얇은 지침서 한 권을 꺼냈다. 그 책에 음주측정 공식인 위드마크 계산법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날 양주 스트레이트로 다섯 잔을 마셨다 이거지? 그 잔에 술은 50㎖가 들어가고 여기다 당신 몸무게하고 일주일 시간 지난 걸 공식에 대입하면 음주측정 수치가 당장 나오지.”
형사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와, 운전면허를 취소할 수 있겠다.”
박 형사는 낚시에서 월척이라도 건진 듯 기뻐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형사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버스 운전면허를 취소당하면 당장 가족의 생계가 위험했다. 지금 셋방에서는 열한 살짜리,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눈을 초롱초롱 뜨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과거가 영화같이 그의 머리에 스쳐갔다.
농사꾼 아버지가 싫어서 초등학교 시절 도시로 나와 별별 일을 다 했다. 중국음식점 배달, 신문팔이, 공사장 잡부, 과일장사를 했다. 감옥에도 갔다 왔다. 마지막 성공한 직장이 노선버스 기사였다. 그게 없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형사님, 저는 감옥까지 갔다 왔습니다. 출소한 다음에 한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놈입니다. 인간적으로 정말 한 번만 봐 주십쇼.”
그가 통사정을 하면서 빌었다.
“그건 당신 사정이고, 억울하면 나중에 소송을 해. 그러면 당신이 이길지도 모르지.”
형사는 냉소하면서 면허취소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음날로 바로 면허가 취소됐다. 당장 운전할 수 없었다. 박 형사는 피눈물도 없는 사람 같았다. 직장을 잃은 후 할 일은 진짜 행정소송을 거는 일이었다. 그는 혼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형사는 양주 다섯 잔을 먹었다면서 한 잔에 술 50㎖로 계산했다. 이상했다. 고참들이 주는 술을 받을 때 반잔 정도 받는 시늉만 하고 끝냈다. 그렇다면 형사의 계산이 틀린 것이다. 그는 책을 구해놓고 공부했다. 음주측정 받는 사람에게 가장 유리한 수치를 대입하라고 되어 있었다. 형사는 그에게 가장 불리한 수치로 계산을 했다. 그는 일년 동안 독하게 법원을 다니면서 소장을 써냈다. 마침내 박 형사 말대로 이겼다. 그러나 직장을 다시 다닐 수는 없었다. 결국 상처뿐인 승리였다.
먹고 살려고 아침부터 밤까지 고철과 폐지를 수집했다. 어려서 넝마주이도 해 봤다. 그러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아이들 과자 한 봉지를 제대로 사 줄 수 없었다. 사흘 굶고 남의 집 담 안 넘는 놈이 없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절도범으로 구속됐다. 감옥 안에서 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가 자기 인생을 망쳤으니 1억 원을 내라는 얘기였다. 편지지에다 글을 쓰고 또 써 냈다. 이번에도 나홀로 소송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소송구조 요청이라는 제도를 알아내곤 거기다가도 편지를 써 냈다. 없는 사람에게 변호사가 공짜로 도와주는 제도였다. 변호사협회로부터 강 씨를 도와주라는 요청서가 내게 왔다. 이번에는 강 씨가 쓴 수많은 편지들이 연일 내게 파도같이 밀려왔다. 그는 끈질긴 집념가였다. 그러면서도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담당 변호사인 나를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중년의 여판사가 재판장인 민사법정이었다. 방청석에는 뚱뚱한 오십대 남자가 항상 앉아 있었다. 국가를 대표해서 소송에 나온 경찰청 직원이었다. 그 마지막 재판정이었다.
“경찰청에서 나온 분 계세요?”
여성 재판장이 방청석을 내려다보면서 소리쳤다. 뚱뚱한 경찰청 담당자가 땀을 닦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왔다. 원고 대리인인 나는 그와 나란히 좌우로 서서 재판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재판장이 먼저 나를 보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경찰청에서는 얼마간의 돈을 주고 조정으로 이 사건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 취지가 뭡니까?”
나는 대충 알면서 물었다.
“경찰로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살려야겠다는 거죠.”
재판장이 강요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경찰청에서 나온 담당관이 끼어들었다.
“웬만하면 그렇게 하시죠. 우리 경찰청도 이렇게 돈 내놓겠다는 소리 쉽게 하지 않습니다.”
재판에서 질 것 같으니까 고육책을 내놓으면서 큰소리쳤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국민에게 잘못해 놓고 돈 몇 푼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비굴한 태도였다. 법원은 그 체면을 봐주려고 두둔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왜요? 왜 조정에 응하지 않으려는 겁니까?”
판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지금 당사자는 돈보다 국가공무원인 그 담당 형사가 권한을 남용하고 잘못했다는 내용이 적힌 판결문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더 중요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입증을 해 주셔야죠.”
판사가 말했다. 그건 간접적인 압력이었다.
“입증을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당사자는 감옥에 앉아 있고 변호사로서 증거를 더 제출할 수가 없네요.”
내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증거가 없으면 지는 거 아닙니까?”
재판장이 내게 따져 물었다. 질 위험성이 있으니까 자기 말을 듣고 합의하라는 말이었다.
“정신적 고통을 입증하라고 그러시는데 그걸 알려주는 뇌파그래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당사자는 감옥에 있으면서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셈이고 도대체 변호사가 어디서 정신적 고통의 증거들을 구해온단 말입니까? 판결이유에 증거가 없어 패소시킨다고 그렇게 쓰시라니까요. 그러면 될 것 아닙니까?”
내가 맞받아쳤다.
“도대체 왜 합의를 못하겠다는 거죠?”
재판장이 내게 다시 물었다.
“감옥에 있는 본인이 한이 맺혀서 그렇게는 못하겠답니다. 그 박 형사가 자기같이 무릎 꿇고 사과하는 걸 봐야겠답니다. 그 사람은 피해의식에 가득 젖어서 변호사인 내가 경찰과 야합할까봐 겁주는 편지가 지금도 보낸니까요.”
국가가 그런 피해의식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경찰청에서 나온 담당자가 한마디 했다.
“변호사님한테 오는 편지 내용은 그 정도지만 우리 경찰관에게 오는 편지들은 완전히 협박입니다.”
그는 죽을 지경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은 재판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장님도 판결문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하신다면 변호사나 경찰같이 부담도 나누시기 바라죠. 왜 판결을 안 하려고 합니까?”
“알았어요. 정 그러시면 제가 판결문을 써야죠.”
재판장이 한 발 물러섰다. 내가 계속했다.
“돈도 돈이지만 판결이유에 담당 박 형사가 어떻게 못된 행동을 했다는 걸 정확히 써주세요. 그게 재판의 목적입니다.”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판결이유도 더러 있었다.
“알았습니다.”
재판장이 대답했다. 재판장은 한참 생각을 한 후 그 자리에 나온 담당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경찰에 계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즈음 바닥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정신적 한계에 도달해서 너무들 피폐해져 있어요. 재판을 하다보면 그런 분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극도의 미움만 존재하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중단하고 경찰청 사람을 보았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그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세요. 그게 법의 온정 아닙니까?”
재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