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을 갚을 방법이 없게 되니까 일곱 살짜리 초등학생을 유괴해서 몸값을 받으려고 범행을 한 거 맞죠?”
“그렇습니다.”
오양욱이 기운 없는 어조로 자백했다.
“아이들을 시골의 폐가로 데리고 가서 양 손목과 입을 청색테이프로 감아 아이들을 항거불능케 했죠?”
“예,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그랬나요?”
검사가 다그쳤다.
“….”
그는 말이 없었다. 검사가 재차 확인했다.
“피해자인 아이들을 21시간 동안 피고인의 지배 아래 두고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부모에게 헌 지폐 3000만 원을 요구한 게 사실이죠.”
“그렇습니다.”
검사의 신문은 그렇게 간단히 끝났다. 이어 변호사인 내가 묻기 시작했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 아이들을 달랜 점과 청색테이프로 묶지 않은 점을 부각시켰다. 잠시 후 나는 증인석으로 연지아빠와 연지를 나오게 했다. 연지가 법정에 들어와 오양욱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이었다. 재판장이 그걸 놓치지 않고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연지는 수갑을 차고 있는 오양욱을 보고 놀라면서 물었다.
“아저씨, 왜 여기 와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양욱이 잠시 연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따뜻했다. 아이의 얼굴에 안됐다는 표정이 보였다. 변호사인 내가 연지에게 부드럽게 묻기 시작했다.
“연지야, 저 아저씨가 어떻게 했어? 무섭게 했어?”
“아니야, 재미있었어. 저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 착해.”
연지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저 착한 아저씨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이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되물었다. 그 말에 재판장이 끼어들어 증인석의 연지를 안심시켰다.
“아니야, 우리가 그냥 물어보려고 아저씨 데리고 온 거야.”
아이의 작은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그 집 무서웠어?”
내가 물었다.
“아니, 하나도 안 무서웠어.”
연지가 작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엄마 아빠도 없었는데 안 무서웠단 말이야?”
내가 되물었다.
“아니, 무서운 게 하나 있었어.”
아이가 생각난 듯 말했다. 난 속으로 뭔가 하고 걱정됐다.
“뭔데? 뭐가 무서웠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그 집 방바닥에 거미가 있었는데 참 무서웠어. 모기도 깨물었어.”
아이다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엄마한테 오게 됐지?”
내가 물었다.
“아저씨가 가고 수민이랑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지나가다 우리를 봤어. 왜 거기서 노느냐고 물었어. 그래서 모르는 아저씨가 데려왔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자기 집으로 가재.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
나는 다음에 감색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단정하게 받쳐 입고 나온 연지아빠에게 물었다. 사십대 초의 회사원이었다.
“아이가 유괴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 주시죠.”
“그러니까 유괴된 날 아침 7시 10분 평소와 마찬가지로 광화문에 있는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아내는 연지 가방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5시쯤 됐어요. 집사람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는데 연지가 안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혹시 길에서 교통사고나 나지 않았나 걱정되더라고요. 그날따라 거래처 사람과 저녁약속도 있고 또 밤에는 가야 할 상가도 있었습니다. 손님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어요. 애가 안 들어왔다고요. 정말 불안해지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 계집아이가 어디 갈 데가 있겠어요? 집사람은 이미 동네 놀이터나 학교는 구석구석 다 찾아봤다고 했어요.
우리 부부는 그때부터 정신이 없었죠. 그날 밤 연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어떤 아저씨하고 같이 있다는 거예요. 정말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제가 연지에게 주위에 뭐가 있니 하고 다급하게 물었더니 옷가게가 있다고 애가 대답하더라고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파출소에 수사본부가 설치됐어요. 순경 열 명이 동원돼서 아파트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어요. 한밤중에 범인한테서 또 전화가 왔어요. 경찰이 수사를 하는 걸 범인이 다 알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연지엄마도 그런 기분인지 저한테 경찰이 손을 뗐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경찰이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수색을 하는데 범인이 그걸 알면 아이들을 당장 죽여버릴 것 같았어요. 사실 저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사람은 경찰 몰래 3000만 원을 주면 될 텐데 공연히 경찰에 신고했다고 후회했죠. 저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면서 아내를 달랬지만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였죠.
▲ 변호사회관 앞에 있는 법의 여신상. 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 ||
난 오양욱이 자수한 것인지 체포된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형량에 차이가 나는 중요 요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아이를 데리러 경찰서에 가셨죠? 그때 보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죠.”
내가 말했다.
“오후 3시경 강력반으로 갔습니다. 형사들 책상 앞에서 연지하고 수민이가 놀고 있었어요. 옷만 조금 더러워졌지 아이들이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옆으로 저기 저 분이 강력반 철제의자에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더라고요. 저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우선 내 딸을 죽이지 않은 데 대해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 분한테 다가가서 아이들을 살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오히려 인사를 했습니다.”
“수사기록을 보면 강력반에서 범인을 체포한 걸로 되어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실 때 어땠습니까?”
“제가 옆에서 볼 때 좀 민망한 게 있었습니다. 형사들이 저희 집에 있을 때부터 자기네들끼리 틈만 나면 막 싸우더라고요. 인사고과에 관련이 있는지 강력1반하고 강력4반 형사들이 서로 자기네가 긴급체포한 거라고 우기면서 다퉜어요. 그리고 서로 공명심 때문에 그런 거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고요. 제가 보기에는 저 오양욱 씨가 창동역에서 기다리는 형사에게 찾아가 자수한 것 같던데요.”
수사기록을 뒤집는 확실한 증언이었다.
“경찰에서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신 일이 있죠?”
내가 물었다.
“그날 진술했습니다.”
내가 그 진술조서 사본을 보이면서 물었다.
“여기 보면 범인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셨던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저는 연지를 살려준 것만 해도 감사했습니다. 또 저 역시 IMF 때 곤란을 겪어봤죠. 용서해 주려고 한다고 그러니까 담당형사가 일단 조서에는 처벌을 요구한다고 쓰고 나중에 필요하면 말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검사의 구형과 변론으로 재판절차가 실질적으로 끝났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 없어요?”
재판장이 최후진술의 기회를 줬다.
“….”
그는 그냥 침묵하고 있었다. 재판장은 그런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더니 한마디 했다.
“오양욱 씨, 이 법정이라는 딱딱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하기 불편한 점이 있을 겁니다. 구치소에 돌아가서라도 하고 싶은 말들이 있으면 느꼈던 감정까지도 차근차근 글로 써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으로서 빠짐없이 그것들을 읽고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부터 나는 사건을 맡게 된 첫 과정부터 마지막까지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법정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판사가 열심히 읽어주기만 한다면 글로 하는 변론도 괜찮았다. 유괴범들은 곤란한 순간이 오면 아이들을 단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오양욱의 특징은 피에로 분장이었다. 사흘을 굶고 남의 집 담을 뛰어넘지 않는 인간이 없다. 그는 카드빚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결핵까지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저녁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9월 20일이었다. 전날 선고에서 재판장은 그를 석방하는 파격적인 선고를 했다. 하나도 아니고 아이를 두 명이나 납치한 유괴범을 용서한다는 건 관례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전에 책을 읽고 있는데 오양욱 그가 불쑥 사무실로 들어왔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재판장이 변호사한테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재판장이? 왜요?”
내가 물었다.
“판결을 선고할 때 저보고 ‘당신은 그 피에로 분장 때문에 정상을 참작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용서받는 건 전부 담당변호사 덕이니까 꼭 찾아가서 인사를 하라고 했어요.”
재판장은 인간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오양욱 그는 세상이 꼭 회색으로만 보이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연지가 그를 좋아했다. 연지 아버지의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현명한 재판장을 만난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재판장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이 땅에 수많은 판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판례를 빠짐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사기록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양형기준에 따라 기계같이 정확히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다운 모범적인 행동들입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보게 된 판관은 약간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눈은 수사기록보다는 앞에 서서 떨고 있는 한 인간의 마음속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기존의 판례보다는 힘든 사정을 이해하려하고 그의 삶에 들어가 보려는 태도였습니다. 많은 판사들의 고개는 상급법원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선은 법대 아래 힘들어하는 낮은 죄인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엄격한 양형기준을 깨고 용서를 택한 당신의 지혜에 감사드립니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