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원조교제 할래요?”
열다섯 살도 안 된 앳된 소녀의 목소리였다.
“너 어디 있니?”
그가 물었다.
“영등포요.”
저쪽에서 대답했다. 막상 전화를 받고 나니까 그는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다.
“그래 여기 반포니까 내 차로 가면 40분쯤 걸릴 거야. 거기 경방 필 백화점 앞에 서 있어.”
소문으로만 듣던 게 사실이었다.
“알았어요. 빨리 와요.”
저쪽의 아이가 대답했다. 그는 가지 않았다. 40분쯤 흐르자 다시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저씨, 왔어요? 나 백화점 정문 앞에 서 있는데….”
아이가 독촉했다. 그는 사무실에 있으면서 마치 영등포에 도착한 양 가장하면서 말했다.
“야, 너 보니까 못생긴 것 같다.”
“그러면 하지 말지 뭐.”
저쪽에서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간단했다. 그게 다였다. 아이를 놀린 것 같은 게 속으로 미안했다.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의 미남인 그는 명문대를 나오고 삼십대 초에 벌써 성공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매일 약혼녀와 만나 여러 준비를 하는 도중이었다. 어느 날 저녁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찰청에서 수사관 두 명이 들이닥쳤다.
“박경훈 씨, 원조교제 한 일이 있죠.”
찢어진 눈에 냉랭한 빛이 흐르는 수사관이 단정하듯 말했다.
“그런 일 없는데요.”
그가 의아해하면서 대답했다. 그런 기억이 없었다.
“밖에 차를 세워놨는데 거기 가서 잠깐 확인 좀 하시죠.”
그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수사관들이 타고 온 차 안에 여자애가 있다면 그의 결백이 당장 증명될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들이닥쳐 사원들 앞에서 원조교제를 확인하는 수사관들이 불쾌했다. 그가 따지고 들었다. 친구 검사에게서 주워들은 지식이 떠올랐다.
“우리 수사에도 미란다원칙이 적용 되지 않습니까? 막 가자고 하면 가야 되는 겁니까? 인권유린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검찰청 수사관들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움찔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가세요. 확인해 드리죠.”
그가 자신 있게 앞서 나갔다.
한 시간 후 그는 서울지검 3○○호 검사 앞 철제의자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검사의 이지적인 날카로운 얼굴을 보니까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마음이 위축됐다. 검사의 책상 위에는 십대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사진과 메모쪽지 비슷한 게 보였다. 검사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 원조교제한 거 맞지?”
검사는 이미 그의 죄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원조교제 혐의를 받는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벌써 회사 사원 사이에 소문이 돌 것 같았다. 약혼녀가 알면 또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그가 사실대로 말했다. 검사는 냉소를 지으며 책상 위에 있던 사진을 들어서 그에게 보였다.
“이 아이 몰라? 당신과 여관에서 잤다고 하던데.”
“모릅니다. 대질시켜 주십시오. 그러면 저의 결백이 분명히 증명될 겁니다.”
검사는 다시 사진 옆에 있던 쪽지를 그에게 보였다.
“원조교제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아이들의 쪽지에 당신 전화번호가 있을 수 있어? 안 그래?”
검사는 이미 그의 유죄를 단정하는 눈치였다.
“검사님, 누구나 무죄추정의 법칙이 적용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결백한 걸 가려주셔야지 어떻게 자꾸만 저를 범인으로 만드십니까?”
그가 항의했다.
“무죄추정의 원칙? 이 친구 아주 지능범 아냐? 그래 이제부터 정확히 증명해 줄게.”
검사가 화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때 옆 벽 쪽의 책상 뒤에 앉아 있던 서기가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거들었다.
“저 친구 역시 짐작대로 전과가 많습니다. 요리조리 말 돌리는 데 선수더니 역시 근거가 있어요. 전과가 줄줄이네요. 검사님, 사기 폭력 강간 종류별로 다 있어요.”
서기는 자리에서 그 서류를 들고 일어서더니 그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이걸 봐 임마. 방금 컴퓨터에서 빼온 전과기록표야. 사기, 폭력, 강간, 당신 죄들이 줄줄이 적혀 있잖아?”
그는 이상했다. 여태껏 경찰서에 한 번 잡혀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기가 보여준 전과기록의 이름 부분을 살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다시 그 서류를 살폈다. 주민등록번호가 달랐다.
“주민등록번호를 보세요. 제 거가 아니잖아요.”
그가 서기에게 말했다.
“뭐?”
서기가 놀라서 전과기록을 다시 살폈다.
“아! 잘못됐네. 그건 미안해.”
서기는 그에게 사과했다. 그는 다시 철제의자에 앉아 두 시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여자아이 한 명이 검사실로 들어섰다. 노랑머리를 한 십대 중반의 전형적인 불량소녀 같았다.
“당신 이 여자애 알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검사가 소녀에게 물었다.
“같이 잔 사람이 이 아저씨 맞니?”
“맞는 거 같아요.”
여자아이가 껌을 씹으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맞는 거 같아요가 뭐야? 확실히 얘기해야지.”
검사가 언성을 높여 다그쳤다.
“확실히 맞아요.”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생전 처음 본 아이가 어떻게 자기와 원조교제를 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사가 가증스러워하는 듯한 눈길로 그를 째려보면서 내뱉었다.
“당신 말이야.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 어디 한번 머리 마음껏 써서 빠져나가 보라고.”
서기는 조서에 ‘여자아이가 기가 막혀하는 표정이었다’고 묘사하는 문장을 살짝 덧붙였다. 섹스를 하고도 그걸 뻔뻔스럽게 부인하는 셈이 됐다. 조서에 묘사되는 행동 하나가 치명타인 것을 종종 본다. 다급해진 그는 옆의 소녀에게 소리쳤다.
“너 도대체 나하고 어디서 만났다는 거야?”
“○○ 글로리에서 만났잖아요?”
“채팅을 해서 나를 만났다는 거야?”
“네.”
채팅을 해서 원조교제를 했다면 반드시 서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그가 다급하게 검사에게 말했다.
“검사님,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사하십시오. 저 아이하고 내가 통화를 했는지요. 그게 모든 걸 증명해 줄 겁니다.”
“이 사람아, 검사가 피의자가 부탁하는 대로 다 조사해 주는 줄 알아?”
그날로 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에는 그와 함께 잡힌 원조교제를 한 사람들의 사진이 클로즈업되어 보도되고 있었다. 검찰은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된 후 시범조로 원조교제범들을 검거해서 발표한 것이다. 그와 약혼했던 여자도 떠나고 혼자 일구었던 사업체도 문을 닫았다.
그의 변호를 맡기로 하고 구치소를 찾아가서 그를 만났다.
“저를 믿으실 수 있겠어요?”
그가 나를 보며 울먹였다. 붉게 충혈 된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얼굴마저 붉어졌다.
“믿을게요.”
내가 대답했다.
“아으 아아~.”
그가 갑자기 통곡했다. 믿어준 데 대한 격렬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와 원조교제를 했다는 여자아이를 법정에 증인으로 신청했다. 여자아이는 계속 출석하지 않았다. 구인신청을 해도 의미가 없었다. 바쁜 경찰관들은 법원의 구인장을 집행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 여자아이의 확실하고 명백한 진술이 있지 않는 한 재판장은 어떤 항변도 믿지 않았다. 그게 현실 재판의 한계였다. 거짓 주장과 위증이 난무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요구했다.
“그 여자아이의 집에 찾아가서 난동이라도 부려서 여자아이를 법정으로 끌고 오세요.”
“그러다가 법에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가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여자아이 때문에 사업도 망하고 결혼도 실패하고 인생이 파멸했는데 그 아이를 만나 따질 분노도 없단 말입니까?”
법에 의해 한번 얻어맞으면 사람들은 반쯤은 바보가 됐다. 재판은 시간만 끌고 지지부진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승부수를 던졌다. 재판장에게 그가 정말 원조교제한 심증을 가졌다면 범행을 부인하는 교활한 그에게 아주 무거운 형을 선고하라고 변호사로서 이례적인 요구를 했다. 결백하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셈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최후진술을 했다.
“저는 정말 원조교제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유죄로 보신다면 아주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징역형을 내려 주십시오. 감옥에서 평생 썩겠습니다. 엉거주춤한 판결은 내리지 마세요.”
담당 일심 재판장은 엄하기로 소문났다. 나는 무거운 징역형을 각오한 그의 굳은 표정에서 그가 진짜 결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심 선고 법정에서 재판장은 먼저 판결이유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사기록을 세심히 살펴봤습니다. 재판장은 피고인이 그래도 유죄라는 심증을 굳혔습니다. 피고인은 역시 중한 실형을 선고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재판장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피고인은 깊은 속에 감추고 있는 양심에 물어보십시오.”
재판장의 부릅뜬 눈에서는 그에 대한 분노가 보였다. 그러나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중형을 선고해야 하지만 저는 석방시키겠습니다. 정말 양심껏 세상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 이후 검사의 항소이유서는 더욱 준엄했다. 파렴치범에 범행까지 부인하는 교활한 인간에게 자유를 허용해 주었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된 여자아이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드디어 여자아이의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그 부모들과 싸웠다. 항소심 재판 최후 진술 때였다. 그가 이렇게 절규했다.
“맘대로 하세요. 맘대로. 당신네들은 진실을 들을 줄 모릅니까. 난 돈도 없고 힘도 없어요. 그렇지만 정직하게 말했었어요. 원조교제는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호기심은 있었다고요. 그리고 사업상 룸살롱에 갔다가 여자하고 잔 것도 고백했어요. 지금 보니까 그런 내 말들이 전부 나를 죽이는 증거로 이용됐어요. 죽이세요, 이제 지쳤어.”
그가 통곡을 했다. 그를 지켜보던 항소심 재판장이 물었다.
“피고인 정말 안 했어요?”
“안 했다니까요. …어어엉~.”
그가 바닥에 앉아 통곡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죄가 선고되었다. 법의 거미줄에 걸리면 약자는 정말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