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중소기업 판로 확대를 위해 TV 홈쇼핑 채널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존 중소기업 전문 홈쇼핑 홈앤쇼핑 CF.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부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소기업 판로 확대를 위해 TV홈쇼핑 채널 1개를 추가로 승인하겠다고 발표했다. 롯데홈쇼핑 비리 등으로 납품업체에 대한 홈쇼핑 측의 ‘갑질’ 논란이 일면서 중소기업과 농수산물 업계를 위해 정부가 51%의 지분을 갖는 공영 홈쇼핑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설 홈쇼핑보다 수익성 면에서 부담이 덜한 공영 홈쇼핑에서 현재 30%대인 판매수수료율을 10~20%대로 낮추고 판로 확보가 어려운 중소·벤처 기업 제품과 농수산물 등에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TV 홈쇼핑은 GS홈쇼핑과 CJ홈쇼핑, 롯데홈쇼핑, NS홈쇼핑(농수산물 전용), 홈앤쇼핑(중기 제품 전용), 총 6곳이다.
미래부의 발표에 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지난 5월부터 기존 홈쇼핑사와 미래부, 중소기업청 등이 참여해 만들어진 중기지원협의회에서 중기 지원을 위한 T커머스 사업(상품판매형 데이터방송)을 논의해왔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가 있기 직전인 지난 10일 한국TV홈쇼핑협회에서도 T커머스 개국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7의 홈쇼핑’이 들어설 경우 황금 채널을 두고 경쟁해 송출 수수료가 높아질 것을 우려하는 홈쇼핑 업계 측은 중기업체를 지원할 T커머스를 적극적으로 활성화 시키자는 입장이다.
그동안 기획재정부와 이견을 보여 오던 미래부가 입장을 바꾼 이유는 ‘초이노믹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꾸려진 뒤 급물살을 탄 사업이라 기재부의 파워가 그만큼 막강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기재부와 농협 측은 지역경제 정책에서 지역특산품 전용 채널을 논의하는 등 신설 홈쇼핑 건을 추진했지만 승인권이 있는 미래부는 방송산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곤란한 입장을 보여 왔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재부 등에서 관심을 보여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도 미래부는 반대 입장이었다”며 “협의회를 통해 중기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입장이 뒤바뀌니 (미래부에) 칼을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미래부는 홈쇼핑 신설보다는 T커머스 신설이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면서도 “하지만 지난해부터 벤처기업협회와 농협, 중기청 등에서 지속적으로 건의가 있어서 논의는 해 왔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영 홈쇼핑 신설이 기존 홈쇼핑의 납품업체 비리 등 고질적 문제를 고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면 오히려 세금만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미 중기전용 홈쇼핑인 홈앤쇼핑도 제품 판로 확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제2의 홈앤쇼핑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홈앤쇼핑은 중소기업중앙회(32.93%), 농협경제지주(15%) IBK기업은행(15%) 중소기업유통센터(15%) 등이 자본금 1000억 원을 모아 설립했다. 하지만 홈앤쇼핑은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영식(새정치민주연합), 김동완(새누리당) 등 여야 의원들로부터 대기업 제품 편성 비중이 높고 중기 제품에 대한 수수료도 상대적으로 높아 중소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을 운영하려면 인건비와 배송비, 채널 이용료인 송출수수료 등을 내야 하는데 유지비라도 벌기 위해서는 잘 팔리는 제품 편성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주장하듯 최대한 많은 벤처 업체에게 기회를 주면 유지비도 벌기 힘들어 보여 현실성이 부족하다. 결국 잘 팔리는 중기 제품만 팔아서 중소업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진기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난 2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실에서 주최한 ‘벤처 및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토론회’에서 “중기 제품 판로 확보는 정부의 역할로 가능하며 홈앤쇼핑이 있는데도 판로 확보가 안 된다면 추가적으로 승인한다 해도 나아질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홈쇼핑 신설 반대 움직임이 타나고 있다. 전정희 새정치연합 의원은 홈쇼핑 신설 결정에 대해 “지금은 신설보다 기존 홈앤쇼핑의 공공성 확대가 더욱 필요한 때”라며 홈앤쇼핑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의 박완주 홍의락 의원도 18일 ‘홈쇼핑 비리근절 및 중소기업 살리기 대책마련 토론회’를 연다.
미래부는 홈앤쇼핑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제7의 홈쇼핑을 기존 홈쇼핑들과 차별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홈앤쇼핑 운영 방식이 나머지 사설 업체와 유사하다. 신규 입점하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확보해주는 게 목표인데 제대로 되지 않아 중소업계 불만이 많았다”며 “그래서 공영으로 운영해 새로 들어오는 중기 제품 판로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중기 제품 판로 모색을 위해 만든 ‘MB표’ 홈앤쇼핑의 실패에 따라 생겨난 ‘박근혜표’ 대안인 셈이어서 향후 정치권에서의 논란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관련 업계에서는 그동안 홈앤쇼핑을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유통센터에 또 다시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공영으로 운영되는 홈쇼핑에 적자가 나게 되더라도 결국 나라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나 이득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중기청은 중소기업 전문 홈쇼핑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중기유통센터가 중소기업의 ‘벤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운영주체로 지목되고 있다.
중기청은 미래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중기유통센터를 중심으로 홈쇼핑 사업 신설안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기청은 최근 진행한 공용 TV 홈쇼핑 사업과 관련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9월부터 홈쇼핑 인가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난 국감에서 중기유통센터는 중소기업 전용 매장의 임대료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를 유치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신설 홈쇼핑 운영주체와 관련해 미래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심은) 여러 안건 중 하나로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발표됐기 때문에 어떻게 꾸려갈지는 공청회와 관계부처 등과 합의해야 한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