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연말의 해질 무렵이었다. 그 화려한 밀실의 도박장에서 8명의 여자들이 도박을 하고 있었다. 억대의 판돈을 놓고 파란 수표가 수십 장씩 돌고 있었다. 대낮부터 시작한 게임은 열이 한창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도박판을 책임진 노미 엄마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러나 상대방 쪽에서는 역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거 괜찮은 거야?”
눈치 빠른 김 사장 사모님이 경계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찾는 전화니까 아무 걱정 말아.”
도박장의 하우스장인 노미 엄마가 안심시켰다. 도박판을 벌여주고 고리도 뜯고 그 자리에서 사채이자를 놓는 속칭 ‘꽁지’ 노릇을 하려면 경찰을 끼지 않고는 해먹지 못한다고 했다. 사모님들은 안심하고 다시 판을 돌렸다. 그들은 서로 누구 엄마라고 불렀다. 그중에는 이상할 정도로 허술한 차림으로 온 여자도 있었다. 그때였다.
“문열어!”
창가에 우람한 남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재빠르게 판돈들을 걷어 백에 넣고 화투를 치우는 중이었다.
철문이나 이중유리창은 형사들이 쉽게 깨고 들어오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재수가 없었다. 도박판에 새로 가입시킨 신입 회원이 문 앞에 앉아 있다가 문을 열어줘 버린 것이다.
“경찰이다!”
도박판 주인 노미 엄마가 소리치면서 이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이어서 배짱 좋은 선길이 엄마가 뛰어내렸다. 그 건 도망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형사 앞에서 하는 일종의 자해행위였다. 형사들의 신경이 떨어진 두 여자에게 집중되었다. 잠시 후 노미 엄마는 다리가 부러졌다면서 한 형사에게 업혀 올라왔다. 같이 떨어진 선길이 엄마는 이마가 찢어져서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형사들 중 팀장 같아 보이는 사람이 두 여자의 처리 문제를 놓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내뱉었다.
“두 여자는 병원으로 가쇼.”
노미 엄마와 선길이 엄마는 사실상 방면된 것이다. 그때 구석에 있던 미옥이 엄마가 우는 시늉을 하면서 형사들에게 매달렸다.
“아저씨, 나는 파출부예요. 여기 이 여자들하고는 달라요. 단지 심부름만 해줬을 뿐이에요. 보내주세요, 형사아저씨.”
노름꾼인 미옥이 엄마는 항상 식모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진짜요?”
형사가 미옥이 엄마를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옆에 있던 다른 여자들에게 확인의 눈길을 보냈다. 다른 여자들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아줌마도 가쇼.”
그녀가 혀를 날름하며 방을 빠져 나가자 이번에는 박 언니가 옆에 딸린 작은 방 침대 위에서 발가벗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들, 나 조금만 건드려봐. 네놈들 모가지가 성한가.”
나체로 날뛰는 그녀를 형사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범인을 잡으러 와서 자칫하면 강제추행으로 오히려 혹을 붙일 것 같았다. 나체로 날뛰는 박 언니도 검거대상에서 제외되고 나머지 세 명만 경찰서로 연행됐다. 잠시 후 빠져나간 여자들은 정장에 밍크코트를 차려입고 당당하게 경찰서로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피의자가 된 세 명의 여자들 뒤에 와서 당당하게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백 사장한테 연락을 했으니까 하룻밤만 참아. 그러면 나올 거야.”
백 사장은 노름판의 해결사였다. 그 유능한 백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경찰서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잡혀서 유치장에 들어간 여자 남편 중의 한 사람인 김 사장이 나의 법률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기계부품 공장을 해오면서 이제야 성공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브로커 백 사장이라는 사람을 믿지 않고 변호사인 나에게로 구명의 방향을 돌린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구속된 다른 두 명의 여자들 변호까지 맡게 됐다.
“경찰서에 가 보니까 그 해결사 백 사장이라는 사람 꽤나 끗발을 부리던데요.”
김 사장은 진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끗발을 부리던가요?”
내가 물었다.
“백 사장이 형사들하고 워낙 잘 통하니까 우리 집사람이나 같이 잡힌 다른 여자들까지 마음대로 다 유치장에서 빼내 가지고 특별면회를 시켜주는 겁니다. 형사과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어느 형사나 다 동생이라고 부르던데요. 또 형사들도 진짜 형님 대접을 깍듯이 하구요.”
경찰서마다 정보 끄나풀도 드나들고 그런 브로커도 있었다.
“해결사 백 사장이 형사과에 들어가면 반장 자리에 앉아서 그 밑에 있는 형사들에게 ‘이봐 동생 점심이나 하지’ 하면서 10만 원씩 점심 값을 주더라고요. 형사과 구석에 비디오카메라가 있어서 그런지 형사들이 머뭇거리니까 백 사장이 형사들보고 ‘이 사람들아 형님이 동생들한테 점심값 주는데 뭘 주저하나’라면서 오히려 혼을 내더라고요. 백 사장이 저의 집사람도 유치장에서 불러내서 경찰서 앞 식당에 데려가 불고기도 먹이고 그랬어요. 백 사장 백으로 저도 담요를 처에게 들여놔 줬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과시에 거의 다 속아 넘어갔다. 그가 계속했다.
“그 백사장이 저보고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관내에서 안 통하는 게 없는 사람이래요. 막말로 그 지역에서 어떤 도박을 하든지 사전에 얘기하면 경찰에서 손을 못 대게 할 수 있대요. 또 경찰이 덮쳤더라도 자기가 다 빼낼 수 있대요.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재수 없는 경우라고 해요. 자기가 없는 사이에 다른 서의 형사들이 덮치고 게다가 지금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아 자기와의 관계를 모르고 구속영장을 올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새 형사과장이나 서장이 죄지은 것같이 자기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허세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는 돈에 코가 꿴 수사기관원들이 있었다. 김 사장이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다음날 나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가서 도박한 여자들을 만났다.
“변호사 아저씨, 나 내일까지는 빼줘야 해요.”
잡힌 여자 중의 한 사람이 당당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국내 굴지의 음료수 회사 사장부인이라고 했다. 어깨에 걸친 고급 밍크코트가 더럽고 어수선한 유치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오십대 초의 그녀는 탄력 있는 피부에 아직도 요염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집에서는 구속된 거 모릅니까?”
내가 그녀의 철면피한 태도를 참으면서 물어보았다.
“집에서는 친목계 회원들하고 사흘간 온천에 간 걸로 해 놨어요. 그때까지 못 나가면 남편이 이 사실을 알 텐데 큰일 났어요.”
“남편이 뭘 하시는 분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건 알아서 뭐 하시게요?”
그녀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판·검사에게 돈 몇 푼만 주면 석방될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관계는 정상참작에서 중요한 사유입니다.”
내가 신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남편은 음료수와 주류회사 사장이에요. 그리고 저도 대한민국 패션계에서 제 이름을 대면 다 알아주는 처지고요.”
그녀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내가 입만 벌리면 다른 여자들도 다 잡혀 들어오게 돼 있어요. 그렇지만 그 여자들을 불면 뭐 하겠어요. 내가 그만큼 죄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혼자서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예수도 그런 십자가는 지지 않았다.
이틀 후 서초동의 서울형사지방법원 422호 법정. 구속적부심사를 위한 썰렁한 재판정에는 차디찬 냉기가 감돌았다. 맨 앞줄의 하이팩 의자에 세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고급 밍크코트를 걸치고 있던 사모님들의 복장이 홑겹 재소자복에 검정고무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오지 않아야 할 곳에 잘못 온 듯한 표정이었다.
“일어서시죠.”
정리가 소리쳤다. 이어서 재판장이 배석판사 두 명을 데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법대에 나와 앉았다. 재판장이 앞에서 기다리던 여자들을 불러 세웠다.
“이런 노름을 보통 때 어디서 하셨어요?”
재판장이 물었다.
“친구들하고 보통 사우나에서 모여서 했어요.”
세 명 중 한 사람이 대표해서 대답했다.
“여기 구속영장을 보면 가게 이층의 전문 도박 하우스던데?”
재판장이 기록을 들추다가 맨 왼쪽에 서 있는 사장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과가 있네요. 그때는 어땠습니까?”
재판장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저 사실은 그때도 억울했습니다. 작년에 여자들이 도박을 하는 집에 수표를 할인하러 갔었어요. 그때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경찰서에 끌려갔어요. 저는 도박을 하지 않아서 참고인 진술만 받고 있는데 반장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같은 친구들끼린데 혼자만 빠져나가면 괘씸죄에 걸리니까 재미삼아 한두 번 했다고 하라는 거예요. 기껏해야 벌금 약간 무는 건데 상관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조서를 다시 꾸미고 손도장을 찍은 거예요.”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호소했다.
“그러면 이번에는요?”
재판장이 물었다.
“이번에도 사실은 어음을 할인하러 갔던 겁니다. 그중에서 한 여자가 화장실에 가기에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한 번 화투를 잡았던 거예요. 도박꾼이 아니에요.”
“그러시겠죠.”
재판장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구속적부심사가 간단히 끝났다.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법정 문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뒤에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옆머리의 털만 약간 남은 오십대 말쯤 돼 보이는 대머리가 서 있었다. 해결사 백 사장이라는 남자였다. 그 옆에는 도박 현장의 다른 여자들이 시녀처럼 늘어서 있었다.
해결사 백 사장이 내가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지껄였다.
“뭐 도박이 죄나 됩니까? 지 돈 가지고 지가 노는 건데. 그렇다고 폭력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법 계통은 좀 아는데 도박치고 풀려나가지 않는 걸 못 봤어요. 변호사를 사는 건 얼마나 빨리 빠져나가느냐 하는 것 때문인데 다른 변호사들은 다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요. 이 재판 품새를 보니까 정식재판까지 갈 것 같던데 다 틀렸어.”
대머리가 주위 여자들에게 들으란 듯이 교만하게 소리쳤다. 한 시간쯤 후 구속적부심사가 기각됐다는 통보가 왔다. 도박한 주부들은 이제 구치소로 넘어가게 됐다. 유치장 안에서 펄펄뛰며 변호사인 나 때문에 낭패했다고 욕들을 한다고 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