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호흡조절에 들어갔다. 사행성 게임 비리 파문과 관련 쏟아지던 제보와 의혹을 선별해서 보다 확연한 것부터 치고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게임기 기판과 상품권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검찰은 내부적으론 이미 호흡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정신없이 쏟아지던 제보와 의혹을 선별해서 보다 확연한 것부터 치고 들어가겠다는 것.
검찰 안팎의 소식을 조합해보면 향후 검찰의 칼끝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겨눠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상품권 발행사 등 관련 업체 주변 수사를 더욱 강도 높게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상품권 발행사 선정 과정에서 펼쳐진 로비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서 결국 이번 파문의 성격이 권력형 게이트인지 아니면 단순 이권 비리인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국회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다. 벌써부터 몇몇 여권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될 정도. 로비 의혹에 연루된 몇몇 현역 의원의 소환이 이어질 것이란 얘기가 검찰청 주변에 확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바로 대통령 친인척과 최측근의 연루설이다. 검찰은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이 ‘신중론’에 대해 “수사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회 등 정치권 인사 수사
김민석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회장(41)의 구속으로 수사에 속도를 붙인 검찰의 다음 칼끝은 국회를 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상당한 압수수색과 조사를 통해 일부 로비 리스트가 확보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검찰 측에서도 공공연히 “문광위 등 정치권 인사들을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당초 검찰이 주목한 것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검찰과 국회 주변에서 다른 흐름이 감지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문광위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 정치인들과 여당의 거물급 인사와 그 측근 의원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
특히 정가 일각에선 검찰 수사의 타깃이 문광위에서 부산 지역 정치인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들이 은밀히 나오고 있다. 실제 구속된 김 회장이 동아대를 졸업한 부산 출신이라는 점과 이번 파문의 진원지였던 코윈솔루션 등 일부 업체들 역시 부산 인사들이 다수 연루돼 있다는 것. 예전부터 빠찡코 등 성인오락업이 집중적으로 발달해온 부산 지역 인사들을 통해 사행업계의 인맥이 서울 여의도로까지 확장됐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문광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 등 게임산업 관련자들이 국회에 자주 나타나 의원실 관계자들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며 “일부 보좌관들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이후 술자리에 어울렸다는 얘기는 파다하게 나돌았다”고 전했다.
부산 지역 출신으로 가장 활발히 거론되는 여권 인사는 A 의원이다. 의원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보좌관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한다. 문광위 소속의 열린우리당 김재홍,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등이 관련 업체 주선의 외유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지만 A 의원은 지금까지 전혀 언론에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이어서 의외다.
검찰 주변에서도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아닌 의외의 인물(건)이 터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검찰 에서 A 의원 관련 비리 의혹이 이번 파문이 터지기 전부터 첩보 수준으로 그동안 몇 차례 제기됐다는 얘기도 있다.
부산은 한나라당이 거의 싹쓸이를 해오고 있는 지역인 탓에 자연히 야당 인사들의 이름도 많이 거론된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지역 출신 한나라당 중진급 인사 2~3명의 이름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 역시 “여당의 문광위 소속 의원과 우리 당의 부산 출신 의원들 몇몇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전했다.
문광위 의원들 가운데에는 L, K, C 의원 등의 이름이 로비 의혹과 관련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당 소속의 K 의원은 최근 8000만 원 수수설이 나돌자 사무실을 아예 닫아걸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달리 또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되는 여당의 C, Y 의원 등은 다른 관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이 여권 내의 대선주자로도 거론되는 한 거물급 정치인의 측근 인사들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 내의 특정 계보가 이번 파문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와 브로커 수사
검찰이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압박수사를 벌이는 곳은 상품권 업체 등 관련 업계와 그 주변 브로커들이다. 이번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여러 업체를 압수수색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여전히 업체 관계자들을 통한 정·관계 로비 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상 이번 파문의 의혹 규명 여부는 업체 수사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업체들이 펼친 로비의 종착지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이번 파문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업체 간에도 서로 상대방 흠집내기 식의 제보와 근거가 명확치 않은 폭로전이 가열되고 있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본지에도 한 업계 관계자가 제보를 통해 “지금 검찰이 안다미로의 김용환 대표만 너무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몸통은 따로 있다. 상품권 발행업체 B 사의 대표 C 씨가 상품권 아이디어를 내는 등 상품권 도입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검찰이 그는 비호하고 애매한 김 씨만 캐고 있다”고 전해오기도 했다. C 대표는 명문대 출신의 80년대 학번인 탓에 업계 주변에서는 여권의 386 출신 실세들과 친분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역시 현재 수사 중인 업체 관계자들의 출신 성향 가운데 두 가지 부류의 인사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대 386 세대 출신’과 ‘동교동계와 친분이 있는 호남 출신’들이 그것. 이는 당초 이번 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의 최초 진원지가 어디인가 하는 의혹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 실세들이 기획한 아이디어라는 설과 지난 DJ 정권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가 동시에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
우선 삼미문화상품권의 박원양 회장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3·1절 골프 구설수에 시달린 인물이고, 상품권 업계의 거물 브로커 이 아무개 씨는 동교동계 조 아무개 전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안다미로의 김용환 대표 역시 DJ 정권 시절인 99년부터 상품권 시장에 뛰어들었고 DJ 정권 말기인 2002년 2월에 문광부가 경품용상품권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로 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반면 H 사의 C 사장과 I 사의 L 회장은 각각 서울대 83학번과 82학번 출신의 386세대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및 정계 386 출신 인사들과의 친분설이 확산되기도 했다. 또한 코윈솔루션은 권기재 전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에 대해 C 사장은 “내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운동권 출신의 386세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연관설을 부인했다.
청와대 주변 인사 수사
검찰이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은 청와대 주변으로까지 수사의 폭이 확대되는지 여부다. 자칫 현 정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최대의 권력형 게이트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성역 없는 수사”라는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권력 실세 주변 인사로 거론된 이들은 노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 씨와 영부인 권양숙 여사의 친동생 권기문 씨, 그리고 최측근으로 알려진 노사모 전 대표 명계남 씨 등이다.
노 씨는 바다이야기의 유통업체인 지코프라임이 인수한 우전시스텍에서 이사로 근무한 전력이 불거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명 씨는 이번 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과 관련 처음부터 줄곧 의혹의 대상으로 거론됐다. 권 씨는 권기재 전 청와대 행정관과의 친분설이 불거지고 있다. 권 전 행정관은 모친이 코윈솔루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파문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보도를 했다며 일부 언론사와 네티즌을 상대로 고소하거나 고소를 제기할 뜻을 비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권력 측근으로의 수사 확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권 전 행정관의 소환 조사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로 당장 소환할 계획이 없음을 시사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카지노와 성인오락실 등 사행성 산업을 둘러싸고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연루설 등 각종 루머가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불거져왔던 것이 사실. 청와대 민정실에서도 이와 같은 관련 정보를 입수, 내사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민정실 자체 조사 결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정리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권 전 행정관의 소환조사를 폭풍의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노 씨나 명 씨와는 달리 그는 그동안 거의 거론된 적이 없는 ‘새로운 인물’이어서 민정실에서도 미처 면밀하게 체크를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권 전 행정관은 사실상 권 여사와 아주 먼 친척에 불과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권 여사의 친동생인 권기문 씨와 권 씨의 친분관계가 계속 부각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두 사람은 2003년 이후 안동 권씨 모임에서 처음 알았으며 다른 특별한 친분관계는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아직 검찰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이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지난 4년간 이웃으로 살았고 학교 또한 부산 K 대 상경계열을 각각 81학번과 82학번으로 함께 다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또한 한 언론사는 두 사람에 대해 ‘부산국세청 및 산하 세무서와 우리은행 부산지역 지점에 각각 근무하면서 고향과 항렬도 같아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으며 부산지역 안동 권씨 종친회에서도 종종 만나 교분을 두텁게 나누는 모습이 일반에 노출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부산 지역의 평범한 세무 공무원에 불과했던 권 씨가 갑자기 2004년 3월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된 것에 대해서도 계속 특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에서 잇따라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검찰 측에서도 이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음인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뭔가 확실한 것이 있을 때 불러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