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sponsor)란 본래 후원자라는 뜻. 그러나 최근 인터넷 일부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서 스폰서는 자신에게 물질적 후원을 해주는 ‘능력남’으로 통용된다. 이 같은 능력남과의 만남을 뜻하는 것이 이른바 ‘스폰 만남’이다. ‘스폰 만남’은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들에서부터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상대 남성은 연령이나 외모에 상관 없이 ‘재정 능력’으로 결정되고 있다.
문제는 스폰 만남이 ‘건전한 후원’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해당 여성들이 스폰을 받는 대가로 스폰서와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성적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 묵시적인 ‘원칙’이다.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스폰 만남은 이처럼 신종 성매매나 성범죄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스폰 만남의 요지경 실태를 추적했다.
지난 5일 기자가 한 포털 사이트의 스폰 카페를 방문했을 때 마침 그곳에서는 ‘창녀들의 전화번호 공개’라는 글이 게시되어 회원들 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건은 돈 많은 남성들에게 접근해서 ‘한 건’ 하려는 전문 ‘꾼’들이 여러 스폰 카페를 전전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한 남성회원의 폭로로 인해 불거졌다. 이 남성이 공개한 ‘블랙리스트’에는 ‘대학생 행세를 하는 A’ ‘소녀가장 행세를 하는 B’ ‘자칭 모델지망생 C’ ‘독일 유학을 원하는 가난한 첼리스트 행세를 하는 D’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E’ 등 10여 명의 여성들이 거론되고 있었다.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뭇 남성들과 문란한 관계를 맺는 일부 ‘선수’들의 ‘못된’ 행태를 보다 못해 신상과 전화번호를 공개하게 됐다는 것이 이 남성이 밝힌 ‘글을 올리게 된 배경’. 그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며 남성들에게 접근, 계약을 지키지 않은 채 여러 명으로부터 동시에 스폰을 받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성매매를 제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유사 카페에는 잠자리까지 가진 스폰서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은 채 종적을 감췄다는 ‘피해’여성들의 글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이들의 세계에서도 스폰을 받는 여성과 스폰서를 자처한 남성이 서로가 물고 물리는 사기극까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5일 현재 이 포털 사이트에 개설되어 있는 스폰 카페는 무려 40~50개에 달한다. 500명 이상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는 카페도 여럿이다. 해당 사이트 측에서는 수시로 단속을 실시해 불건전한 카페에 대해서는 ‘블라인드제’를 적용, 폐쇄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단속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들 카페가 ‘스폰’이라는 금칙어를 피해 ‘SP’(스폰서) ‘후원’ ‘능력남’ ‘도움’ ‘ㅈㄱ’(조건) 등의 단어로 포장돼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른바 ‘스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리구두’ ‘신데렐라’ ‘귀족’ ‘키다리아저씨’ 등 좀 더 교묘한 검색어로 위장한 카페들도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 카페는 ‘대한민국 1%의 상류층 생활, 당신도 가능하다’ ‘신데렐라가 되어 보십시오’ ‘진실된 스폰을 원하는 남성이 기다립니다’ 등의 글을 메인화면에 게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을 유인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카페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여성들은 ‘훌륭한 스폰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들에게 남성의 나이나 외모 등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들 여성들은 “한 달 꼬박 힘들게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뻔한 현 상황에서 데이트를 해주는 조건으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느냐”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스폰 관련 카페의 상당수 운영자들은 카페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저마다 회원 모집에 주력하는 모습. 이들은 ‘대한민국 1%의 능력남과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운명적 만남’을 모토로 내걸고 “오직 신뢰를 토대로 한 진실된 만남을 주선한다”며 여성들의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스폰을 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는 멘트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여성회원들에게 ‘개인정보를 유출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현재 자신의 상황 및 원하는 남성상, 조건을 기재하고 자신의 신체 사이즈 및 사진을 첨부해 이메일로 보내라고 요구한다. 접수된 내용을 토대로 최대한 맞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스폰 카페에는 운영자의 수상한 행태를 고발하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카페 운영자의 권한으로 수집한 개인 정보들을 불순한 목적으로 타인에게 누출시키거나 운영자 자신이 ‘한번 만나자’는 ‘작업’을 걸어오기도 한다는 것. 심지어 자신의 사진이 인터넷에 나도는가 하면 신상을 훤히 꿰뚫고 있는 남성들이 성매매를 제안해오기도 한다는 여성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들 카페는 겉으로는 대가가 배제된 건전한 ‘후원만남방’임을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여성분만 가입하라’며 ‘감동 스토리’를 예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스폰 만남이 가능한 여성의 조건이 무엇인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한 운영자는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만 지원하라’는 말로 스폰의 성격을 암시하고 있다.
스폰서를 찾는 여성들도 겉으로는 ‘순수하게 후원해주실 분’을 구하는 기색. 하지만 기자가 대화를 나눠본 여성회원들 중 대부분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성적 서비스 같은 육탄공세도 불사할 각오라고 고백했다.
직장인 최 아무개 씨(26)는 “시간·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젠틀한 40~50대의 스폰서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100만 원 남짓한 현재 수입으로는 자신의 생활비로도 빠듯하다는 것이 최 씨의 얘기. 그는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한 달에 네 번 만나는 조건으로 넉넉한 용돈을 주는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길 바란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대학생 이 아무개 씨(22)는 좀 더 노골적인 조건을 내놓았다. “월 400(만 원) 정도 스폰해줄 수 있는 분을 구한다. 문화생활, 음주, 고민상담은 물론이고 해외여행, 잠자리까지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 그는 또 “가능하면 작은 오피스텔을 마련해줄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옵션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스폰을 원하는 여성들 중에는 ‘화려한 세컨드’를 자청하고 나서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관계라면 지속적인 성관계는 물론이고 동거나 장기계약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스스로를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나 조건만남을 하는 여성들과 차별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나잇스탠드나 조건만남은 거부한다’ ‘싸구려 여성으로 보지 말라’ ‘진실된 마음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원한다’는 것이 스폰을 구하는 여성들의 전형적인 멘트.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고품격 만남’을 지향한다는 이들의 행색이 성매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여성들은 왜 ‘스폰 만남’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현재의 암울한 생활을 벗어날 방법은 정기적으로 스폰을 받는 일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기자가 접촉한 여성들의 대부분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호화롭고 근사한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 유학이나 해외여행, 자동차 구입 등 특정 목적을 위해 스폰서 구하기에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능력 없는 실제 남자친구와 장사를 하기 위해 목돈이 필요하다고 밝힌 여성들도 있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기대에 부합하기라도 하듯 스폰 카페를 드나드는 남성들은 저마다 최고의 스폰서를 자청하고 있다. 기자가 직접 몇몇 남성들과 대화해본 결과 ‘주 1회, 공연·쇼핑 같이하며 여유로운 생활 즐기실 여성 구합니다’ ‘루이비통 가방과 페라가모 구두, 까르띠에 시계 지겹도록 사드릴 수 있습니다’ ‘용돈 받으며 상류층 모임에 같이 참석하실 분’ ‘당신의 꿈을 이뤄드립니다. 오피스텔, 차량 지원 가능’ ‘월 200 정도 용돈 가능합니다’ ‘해외여행 즐기며 스폰 받을 분’ 식으로 적극적인 제안을 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제시한 스폰 내용은 지성과 미모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스폰 만남이 순조롭게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남성회원들은 ‘여성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액수를 제안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까지 ‘스폰녀’를 몇 번 만나봤다는 한 40대 남성은 “일반 채팅 사이트에서는 한 번에 7만~10만 원 정도에 성관계를 전제로 한 조건만남이 이뤄지는 데 반해 이런 곳에서 스폰을 원하는 여성들은 아예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으로 작정하고 덤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로 만나보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면서 겉멋만 잔뜩 들어 도도한 척하는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여성을 왜 도와야 하는지 회의가 들어 그냥 돌아온 적도 많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남성은 “스폰은 형편은 어렵지만 고상하고 지적인 여성들이 여유로운 남성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성매매나 조건만남과 다를 바 없다”고 단언했다. 스폰을 원하는 여성을 만나본 결과 대다수가 유흥비와 게임방비, 자신을 치장하는 돈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골적으로 거액을 요구하거나 터무니없는 지원을 원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는 것. 아예 ‘한 번(성관계)에 10만 원’이라는 조건을 내걸며 선불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남성회원들 사이에선 스폰을 원하는 상당수 여성들의 신상이 알고보면 ‘거짓’이었다는 비난도 수두룩했다. 형편이 어려운 명문 여대생을 사칭했던 여성이 알고보니 나이트클럽과 찜질방을 전전하는 가출한 ‘백조’였다거나 ‘나가요걸’이었다는 식의 얘기다.
그러나 ‘스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성들 역시 대다수는 스폰 만남을 건전한 후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한 스폰카페 운영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층이 낯선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거액을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단순히 호기심에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고백했다. 또 실제로 스폰을 자청하는 남성들이 한 달에 수백만 원을 지원해줄 만큼 능력이 있는지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
“간혹 스폰이 이뤄지더라도 돈이 오가는 한두 번의 엔조이 만남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이 운영자의 증언은 스폰 만남이 성매매나 조건만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힌 여성들과 남성들의 ‘위험한 거래’는 스폰 만남이라는 신종 성매매의 형태로 오늘도 은밀히 계속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