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이 부실대출 비리의혹에 휩싸였다. | ||
조직이 방대하다보니 내부기강도 극도로 문란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전·현직 농협 직원이 공모해 국정원 상조회비 90억 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고, 8월에는 현직 농협 직원이 지점 간부들의 비자금 불법조성 등 농협의 고질적인 비리 의혹을 청와대 검찰 국가청렴위원회 등에 제보해 수사기관이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농협중앙회가 100억 원대 부실 대출 논란에 휩싸여 또다른 비리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감사원에 진정서가 제출된 상태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에서도 이번 국감 때 농협의 방만 경영 실태와 부실대출 논란 등 각종 의혹을 파헤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농협의 부실 대출 논란은 A 건설사와 B 시행사 간의 법정 분쟁과 맞물려 있다. 농협은 지난 5월 중견 건설사인 A 사가 신청한 120억 원 당좌대출건과 관련해 A 사 소유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일대 부지 약 5000평에 대해 최고한도 144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문제는 A 사가 담보물로 제시한 부지가 A 사와 B 사 간에 소유권과 점유권을 놓고 몇 년간 법적분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특성상 리스크(위험요소)가 있거나 소송 등 다툼이 진행 중인 담보물에 대해서는 철저한 현장실사 후 승인여부를 결정하는 게 관행이다.
A 사와 B 사는 토지 원소유자와의 계약문제로 인해 몇 년 전부터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수원지방법원은 점유권을 갖고 있는 B 사가 제기한 ‘토지출입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타인이 토지 불법점유를 할 수 없도록 결정했고, 현장에는 이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부착돼 있다.
농협 측이 현장실사를 제대로 했다면 이 같은 게시물을 발견 못했을 리 없고 담보물에 대한 리스크 여부도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감정을 의뢰받은 C 감정평가법인은 법적분쟁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담보물에 대한 평가 의견을 농협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의 여신취급규정 상 소송 또는 분쟁 중에 있는 부동산일 경우 담보취득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농협 측도 C 법인이 제출한 평가서와 문서상 표기된 내용만으로 대출 승인을 한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B 사는 지난 7월 A 사를 상대로 불법침입과 재물손괴 등을 이유로 수원지검에 고소장을 제출, 양사의 민사 분쟁은 형사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 왼쪽은 B 사가 감사원에 제출한 진정서. 오른쪽은 문제의 부지에 세워져 있는 게시물. 분쟁중인 땅임을 알 수 있다. | ||
이와 관련 B 사의 J 대표는 12일 기자와 만나 “담보감정평가서 조작은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은 분식회계와 더불어 대형 금융부실과 서민금융 압박의 주원인이 되는 암적 존재”라며 “사회정화와 서민금융 살리기 차원에서 사실을 확인해 대출금을 회수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 측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 해당 담보물에 대한 감정평가를 마친 후 대출승인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면서 담보물에 대한 분쟁 여부에 대해서는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농협 측은 또 A 사 대출건과 관련해 불법 부정 대출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체 조사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해명하고 있다.
농협 측은 민원이 제기되고 감사원에 진정서가 제출되는 등 문제가 확산될 조짐이 일자 그때서야 A 사에 대한 대출 약정을 해지하는 등 사태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심사실의 한 관계자는 14일 기자와 통화에서 “A 사는 재무제표상의 신용만으로도 120억 원의 대출이 가능한 기업”이라며 “이런 회사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담보물을 제시한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C 법인의 현장실사 유무에 대해서는 “현장실사를 한 것으로 안다. 다만 현장에 게재된 고시문 등은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분쟁이 진행 중이라는 민원과 진정서가 제출된 만큼 A 사에 대한 당좌대출 70억 원을 지난달 28일 약정 해지했고, 144억 원에 대한 근저당설정에 대해서도 오늘(14일) 해지 접수를 했다”고 밝혔다.
농협 측의 해명과 뒤늦은 사태 진화에도 의혹은 끊이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 120억 원이라는 거액의 대출을 승인하면서 현장실사를 의뢰한 C 법인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가서에는 점유자의 승낙을 받고 출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담보물을 둘러싼 분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농협 측이 A 사에 대한 대출 약정 해지와 함께 근저당 설정을 해지하는 등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는 것은 스스로 잘못된 대출이었음을 시인하는 격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열린우리당 최규성 의원 측은 A 사에 대한 농협의 부실대출 의혹건과 관련해 농협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등 이번 국감에서 농협 측의 방만 경영 실태와 대출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철저히 규명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어 농협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A 사 대출건으로 촉발된 농협의 부실 대출 의혹이 국감을 통해 규명될 수 있을지, 나아가 농협의 여러 가지 의혹이 아울러 해소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