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이어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2001년 한중어업협정 당시 예견됐다. 사진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연합뉴스 | ||
그런데 이어도 분쟁 가능성은 이미 5년 전인 2001년 2월 한중어업협정 비준을 둘러싸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기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이어도는 명확히 우리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역에 포함시키지 않고 양국의 공동 수역 성격인 ‘기타 일부 수역’으로 방치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제2의 독도’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일었던 것.
당시 정부는 이어도가 우리 수역 내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단지 어업협정일 뿐이며, 일단 비준안을 통과시켜 주면 이 문제는 중국과의 ‘추후 협상’ 과정에서 명확히 해두겠다”며 미봉책에 급급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비준안이 통과되자 ‘추후 협상’은 흐지부지됐고 결국 오늘날의 이어도 분쟁을 자초한 셈이 됐다.
더군다나 당시 주무 부서였던 해양수산부 장관과 외교통상부 차관이 각각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도 이 같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이어도는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평상시 물 속에 약 30m 정도 잠겨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섬은 아니지만 최근 우리 정부는 이곳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는 등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이듬해인 93년 12월부터 양국 정부는 어업협정을 놓고 치열한 마라톤협상을 벌여왔다. 양국은 2000년 8월 3일 한중어업협정에 서명했고, 이듬해인 2001년 4월 5일 양국 당사자 간 고위급 회담에서 이 협정에 최종 합의함으로써 한중어업협정이 정식으로 발효됐다. 우리 국회는 2001년 2월 28일 임시국회를 통해서 이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시 국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야당인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협정안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되기 불과 하루 전인 2001년 2월 27일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김종하 의원은 “한중어업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 ‘과도수역’, ‘잠정조치수역’ 및 ‘기타 일부 수역’으로 각각 나뉘어 표기되고 있는데 기타 일부 수역은 그 기점조차 표기되지 않고 있어 그 범위가 불분명한 불완전한 협정의 형식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양국 간 협정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자 국회 비준의 전제조건”이라며 “정부는 추후 기타 일부 수역의 기점이 합의되면 또 다시 국회비준을 요청할 것인지, 그리고 중국에 대해 이어도가 우리 수역임을 확인하는 대외적인 선언을 할 용의가 없는지 답변해 달라”고 질문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란 즉 자국의 해상 영토를 말한다. ‘잠정조치수역’은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종의 공동관리 수역이다. ‘과도수역’은 한중어업협정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경우인데, 협정 체결 이후 4년까지는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다가 4년 이후부터는 자국의 EEZ로 귀속되는 일종의 ‘준 배타적 경제수역’ 성격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다는 이 세 가지 수역으로 나뉘어 설정되어 있다(그림 참조).
그런데 잠정조치수역의 북쪽 해상과 잠정조치수역 및 과도수역의 남쪽 해상은 아무런 표기도 없이 그냥 내버려진 채로 있다. 이 지역이 바로 ‘기타 일부 수역’이 되는 셈인데 이 수역에 대해서는 양국 간에 명확한 경계선도 없고 협정 문안에도 아무런 단서 조항이 없이 그냥 방치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의 영해로 인식되어온 이어도가 바로 이 기타 일부 수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19면 수역도 A부분).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원웅 의원은 “마라도로부터 200해리에 해당되는 북위 29도 45분까지는 엄연히 국제법상으로 우리 해역임에도 불구하고 좌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며 “아주 민감한 문제는 제주도의 마라도 남단에 위치한 이어도도 양국 간의 경계가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중·일 어업협정 수역도’(한국 정부 작성)를 보면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점이 발견된다. 4년 이후 각각 양국의 자국 EEZ로 귀속될 ‘과도수역’을 보면 중국 측의 과도수역은 남쪽 끝이 북위 31도 50분인데, 우리 측의 과도수역은 그보다 조금 올라간 북위 32도 11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어도의 위치는 북위 32도 07분이다. 31도 50분과 32도 11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어업협상 당시 우리 역시 중국 측 과도수역의 최남단과 똑같은 북위 31도 50분으로 수역을 설정했다면 이어도는 우리의 과도수역에 포함되며, 따라서 4년 후인 2005년에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EEZ로 귀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협상에서 이어도를 우리의 과도수역 밖으로 설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오늘날 중국과의 영토분쟁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 배경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해양수산위 소속의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 측으로부터 여러 가지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과도수역을 결정할 때 어떻게 해서 중국 측의 과도수역은 북위 31도 50분인데 우리 측의 과도수역은 북위 32도 11분으로 이어도를 포기하고 양보했는가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업협정과 EEZ는 별개”라는 당시 정부의 설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쏟아지고 있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와 이상면 서울대 교수 등 그동안 이 문제를 제기해온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는 신한일어업협정 때에도 어업협정과 EEZ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업협정에 관한 수역은 ‘배타적 어업수역’을 뜻하는 ‘EFZ’라는 용어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협정문에는 분명히 EEZ가 명시되고 있다. 정부가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한중어업협정문에도 역시 ‘각 체약당사자는 과도수역에서 점진적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 제도 실시를 위해 적절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EEZ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당초 이 협정안이 2000년 8월에 서명되었음에도 정부는 국회에 그 내용을 제출하지 않고 묵혀두었다가 2001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준동의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당시 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우리의 남방한계선(북위 29도 45분)을 이번 협정문에 명확하게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못했다면 추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들어가는가”라고 묻자, 반 차관은 “이번에 이것을 비준해 준다면 앞으로 이행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는 어정쩡한 답변을 내놓았다.
당시 실무자인 이준규 한중어업실무회담 수석대표는 “비록 협정 본문에 우리의 남방한계선을 명기하지 못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 북위 29도 45분까지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중국이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시 여당 중진이던 박상천 의원이 나섰다. 그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부 수역’이라는 표현을 써 가지고 수역도 확정하지 않은 채 국회의 비준동의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정부는 ‘한중어업협정이 빨리 타결될수록 어민들한테 유리하다’는 말로 커버하고 있는데 이런 협정이 어디 있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종하 의원은 “명확한 경계 없이 한다면 비준과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는 분쟁이 계속된다고 본다. 결국 분쟁의 씨를 안고 가는 것”이라고 앞일을 예견하기도 했다.
당시 노 장관은 “2000년 8월 정식 서명 직후 비준동의를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비준동의가 4월이나 6월 국회에서 통과돼도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라는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의 질문에 대해 “지난해 8월 정식서명 직후 비준동의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당시 국회에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구체적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번 임시국회에 비준동의가 이뤄져야 3월 중으로 예정된 고위급회담에서 협정발효일자 등의 원만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정부는 “일단 비준이 되면 중국과의 추후 협상 과정에서 이를 확실히 해두겠다”며 사태 모면에 급급한 모습이었고, “우리의 영토 주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 문제점을 부대조건으로라도 명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하던 일부 의원들 역시 못미더워하면서도 “추후 협상을 잘 해주기 바란다”며 결국 비준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튿날 국회 비준안 통과 이후 ‘추후 협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설명도 없이 흐지부지됐고, 2001년 4월 5일 양국 간 최종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이어도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의 언급도 없었다. 그리고 이어도 문제는 5년 만에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한중어업협정은 5년이 지난 후에는 한쪽의 문제 제기로 파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현재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며 “이어도 문제는 본질적으로 외교통상부 관할일 뿐 어업협정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또한 “현재 중국과의 EEZ 협상이 진행 중이고 한중어업협정은 단지 어업에 관한 협정일 뿐 이어도 문제와는 관계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