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남규 | ||
정 씨가 저지른 범행의 엽기성 때문일까. 그에 대한 사형선고는 이미 예상됐던 일로 추후 공판에서도 이번 1심 결과가 뒤집어지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정 씨가 순순히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아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종교인들과 교화위원들의 발걸음도 차츰 바빠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로 남겨질 ‘정남규 교화’는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정 씨와 접촉을 시도한 몇몇은 정 씨의 완강한 거부로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진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정 씨는 사형이 구형된 후에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미안한 건 잘 모르겠다” “범행을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지금도 밖에 나가면 살인을 할 것”이라는 정 씨의 법정 발언은 변호인의 변호를 무색케하며 사형제 존폐 논란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정 씨가 강퍅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종교인들이나 교화위원들의 ‘노크’도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종교계 일부 인사들이 그를 교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종교의 힘으로 살인마를 신앙인으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정남규 새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들은 여느 재소자를 다룰 때보다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 가고 있다. 이는 선고가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 씨가 겉모습과는 달리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독기로 가득 차 있는 정 씨가 외부인들의 접근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피울 경우 구치소 측으로서는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정 씨가 원하지 않는 이상 교화위원들과의 만남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정 씨는 뉘우침이나 죄책감 없이 여전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교화위원들에 따르면 자해를 시도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요주의’ 재소자의 경우 구치소에서 교화위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온다고 한다. 정 씨가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사건의 여파로 볼 때 구치소 측으로선 요주의 인물임이 분명하다.
교화위원들은 “정 씨처럼 교화가 불가능해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내키는 대로 증오심을 표출하겠지만 정 씨 역시 그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다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범행 후에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인면수심’의 태도를 보인 것은 역으로 그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정 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 정 씨가 과연 종교와 신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일지도 미지수. 정 씨와의 접견을 준비하고 있는 일부 종교 관계자는 “살인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는 정 씨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로서는 정 씨가 언제쯤 심정변화를 일으킬지, 어떤 종교에 귀의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생각보다 어려운 장기전이 될 거란 전망도 있다. 따라서 정 씨 교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교회나 절에 다닌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방법 등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을 사형수 전담 교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순자 씨는 “살인마도 사람”이라며 “쉽진 않겠지만 정 씨 역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참회할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양 씨는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94년 엽기존속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오렌지족 박한상도 마음을 열었으며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유영철도 참회의 카드를 보내왔다”며 정 씨의 교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참회의 진위를 떠나 엽기 살인범들이 무조건적인 증오심과 경계를 풀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마음이 열리면 양심도 되살아나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유영철이 직접 그린 그림카드를 보내온 것이나 부모를 죽인 박한상이 교화위원을 ‘엄마’라고 불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개 사형수들은 사형이 확정된 후 한두 달 동안 식사를 거부하거나 멍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 등 전형적인 변화 과정을 밟게 된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형이 확정된 지 한참 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때쯤이면 세상을 향한 증오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분노에 찬 눈빛 역시 조용히 흐르는 한 줄기 눈물로 바뀐다는 것. 지금까지 냉혈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 씨가 과연 향후 어떻게 변할지 좀더 두고볼 일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