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악에 받쳐 있었다. 윗도리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그의 몸은 얼룩진 뱀 껍질 같았다 .혈관이 터지고 살이 패여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게 웬 상처야?”
내가 물었다. 지독히도 두들겨 팼다.
“한밤중에 형사들이 지하실에 끌고 가서 패더라고요.”
“어떻게?”
“옷 벗기고 눈에 청 테이프 붙이고 바닥에 엎드리게 한 다음 대여섯 놈이 구둣발로 이기고 각목으로 까더라고요. 뭐든지 물으면 말하려고 했는데 묻지도 않아요. 그냥 나를 작살내는 게 목적인 것 같더라고요. 나를 작살내면서 형사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그랬는데?”
“자기네는 허가증 있는 건달이래요.”
그가 계속했다.
“새벽 세 시쯤 됐을까. 내가 까무러치니까 잠시 형사들이 때리는 걸 쉬더라고요. 내가 지옥을 가도 그 새끼들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가방 속에 있던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느 틈에 담당 교도관이 뛰어와 촬영을 제지했다.
“고문당한 걸 찍으려고요.”
내가 말했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슬쩍 찍으시면 우리 목이 달아나죠. 알면서 그러십니까? 그리고 변호사님도 좋은 일 없을 거구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접견 금지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변호사가 와도 일체의 촬영이나 녹음이 차단됐다.
“그래도 내가 일단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죠?”
내가 따졌다.
“정식으로 촬영을 하시려면 구치소장에게 신청서를 내셔야죠. 그러면 구치소장은 그 신청서를 법무부에 보내서 그 허가 여부에 대한 지침을 받게 됩니다. 그후에 촬영하시죠.”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그동안 고문 상처는 다 없어져 버리겠네?”
“사실 그렇죠. 벌써 접견도 금지시키고 저 사람들 터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는걸요.”
“그러면 어떻게 한다?”
나는 증거보전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나는 고문당한 강윤철을 데리고 교도관 몇 명이 사무를 보고 있는 앞으로 갔다. 그들을 증인으로 만들 셈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강윤철의 웃통을 벗게 했다.
“자, 직접 이 상처를 한번 봐두시죠.”
내가 담당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당장 그 의미를 알아챘다. 그들은 얼른 시선을 돌리며 외면했다. 증인이 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나는 다시 그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마침 경비교도대 소속의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복무 대신 교도소에서 근무했다. 의식이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내 앞의 강윤철의 상처를 보면서 멋모르고 소리쳤다.
“야, 이거 독하게 두들겨 맞았네. 너 어디서 맞았냐? 우리는 기술적으로 하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패지는 않는데.”
순간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상황을 눈치 챘는지 얼른 입을 닫았다. 고문 증거를 잡고 항의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오십대의 교도관이 소리 없이 내게 다가왔다.
“저, 잠깐만.”
그가 문밖으로 가자는 은밀한 눈길을 보냈다. 나는 그를 따라 바깥으로 나가 복도 구석으로 갔다.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이런 고문은 말이죠 증거보전이라는 정식절차를 밟으면 그건 하지 말라는 거하고 똑같아요. 제가 방법을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여기 구치소 보안 책임자를 만나서 치료를 요청하세요. 그러면 여기 의무관이 진료를 하게 되지요. 그러면 병상일지나 차트가 남죠. 나중에 그걸 증거로 삼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놓칩니다. 그리고 의무관이 조작할 우려가 있으면 나중에 그걸 문제 삼으세요. 이걸 가르쳐 드렸으니까 그 대신 우리 파트는 골치 아픈 데 휘말리지 않게 해 주세요. 말단인 저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잠시 후 나는 교도소 보안책임자가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더위 먹은 교도관들이 여기저기 책상 뒤에 지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책임자의 사무실은 뒤켠 깊숙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보안 책임자 방 바로 앞에 있는 뚱뚱한 남자가 막아서면서 물었다. 견장에는 무궁화 두 개가 반짝였다.
“보안 책임자 되시는 분을 만나러 왔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는 순간 나를 예민하게 살폈다. 이윽고 그는 내가 청탁을 하러 온 것으로 오판한 것 같았다.
“지금 계십니다만 아주 바쁘십니다. 저에게 찾아오신 사유를 말씀해 주시면 들어가서 보고를 드리고 허락을 얻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죠?”
책임자를 만나는 것도 겹겹이 장애물이 설치된 셈이었다. 나는 막아선 그에게 고문을 항의하면서 한참 시비를 벌인 후에야 간신히 보안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어떤 일이십니까?”
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노련한 관료의 냄새가 났다.
“어제 구치소에 들어온 사람 중에 고문을 받은 사람이 있어서 왔어요.”
“예?”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늘 있는 그렇고 그런 일 아니냐는 얼굴이었다.
▲ 영화 <홀리데이>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수사기관에서 얻어맞고 구치소에 들어오는 게 어디 한둘입니까? 그래 그걸 까발리려고 저에게 오신 겁니까? 제가 협조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오히려 나를 질타하는 어조로 계속했다.
“흔히 인권변호사들이 고문을 까발리려고 하는 걸로 아는데 변호사님도 우리 구치소가 정부와 한가족이라는 걸 아시죠? 다 이해하실 수 있는 입장 아닙니까? 왜 그러십니까?”
“저는 피가 터지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진 걸 봤습니다. 구치소에 들어올 때 신체검사를 하게 되어 있는데 어떻습니까? 그걸 눈감았으니까 직무유기가 틀림없죠? 제가 틀림없이 서류절차를 밟을 테니까 그렇게 아십쇼.”
보안책임자의 표정이 순간 달라지고 있었다.
“에이 그깟 일로 무슨 서면절차입니까? 제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가 펄쩍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얼른 일어서서 책상 위에 있는 인터폰을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의무과장 바꿔.”
그가 나보고 들으란 듯이 소리쳤다.
“뭐? 어제 의무과장이 무단결근했다고? 오늘은 나왔나? 지금 자리에 없어? 알았어. 그러면 어제 들어온 강윤철 씨 신체검사를 다시 하고 상처가 있으면 치료해 주라고 해.”
그가 인터폰의 송수화기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는 의무과장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내가 보아왔던 단순한 육체적인 고문의 한 모습이었다. 검찰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했다. 나중에 법정에서 고문당한 사실을 주장했다. 씨도 먹히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최후진술에서 고문을 당한 그 남자는 검사에게 이렇게 분노해서 소리쳤다.
“검사님, 저도 말이죠 검사님을 때려서 범인으로 만들라고 하면 5분 만에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그러지 마세요.”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경찰은 때려 조지고 검찰은 불러 조진다’고 했다. 경제범으로 구속된 유명인사인 거물급 사장이 있었다. 그가 매일같이 검찰에 소환될 때의 감정을 내게 얘기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기자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건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다. 그 험악한 일제강점기에도 죄수들이 움직일 때에는 머리에 용수라는 걸 씌워서 얼굴을 가려줬다는 것이다.
그는 검사실 구석 철 의자에 포승과 수갑으로 묶인 채 하루 종일 앉았다가 저녁이 되면 구치소에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고 했다. 찬바람이 도는 연말 무렵이었다. 식사시간이면 검찰청사 구내에 있는 비좁은 유치장에 혼자 들어가 기다려야 했다. 냉기가 흘러나오는 관 같은 방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동태가 되어 굳어 있을 때는 없는 죄라도 요구만 하면 뭐든지 진술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담배를 좋아했다. 체인스모커 사장님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골초였다. 또 커피도 끔찍이 마셨다. 젊은 검사가 꽁꽁 묶여 있는 자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홀짝거리다 쓰레기통에 붓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못 배운 잡범들은 때려 조졌다. 배운 사람들은 자존심을 뭉개버리는 것 같았다.
거물급 인사들만 조사하는 높은 기관에 다녀온 오십대의 중견 회계사가 있었다. 담당 수사관들이 한밤중에 옷을 벗긴 채 ‘원산폭격’이라는 고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원산폭격이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뒷짐을 지는 기합이었다. 노년기에 그 고문을 받으니 피가 모두 머리로 몰려서 죽을 것 같더라고 했다. 또 팬티만 입고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들고 있는 벌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때면 만사 다 때려 치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내 의뢰인 중에 전도사가 있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지하교회를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외로운 아이들을 데려다가 떡볶이도 만들어 주고 돌봐주었다. 그러다 모략에 빠지고 말았다. 교회에 자주 찾아오는 가출 소녀를 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형사들이 빙 둘러서서 그의 뒤통수를 치면서 놀려댔다.
“당신이 전도사 맞아? 면도사 아니야?”
형사들은 그렇게 그를 퇴폐업소와 비교하면서 놀려댔다. 그들의 경멸의 눈빛들 속에서 모멸감으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혐의가 풀렸지만 조사 도중에 얻은 자존심의 상처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사교범 중에 고문이론을 쓴 부분을 본 적이 있다. 물리적인 고문은 유치한 단계라는 것이다. 인간을 처절하게 괴롭히는 방법은 다른 데 있다고 했다. 사람과 직업에 따라 다양한 고통 주는 방법이 있었다. 명예심이 강한 교수나 전문직종 사람들은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아 주라고 하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 같은 곳을 찾아 똥을 푸게 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부자들은 며칠을 굶긴 후 싸구려 빵 하나를 개에게 하듯 던져준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먹는 순간 그의 모든 내면이 굉음을 울리면서 파괴된다는 것이다.
폭행의 흔적도 없는데 조사받고 돌아와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내면은 치유하기 힘든 큰 상처가 있는 게 분명하다. 고문자 측에서는 인간의 외면만 멀쩡한 걸 주장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진 고 조영래 변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고시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검찰청에 가서 실무수습을 했는데 그때 내게 온 피의자에게 수갑과 포승을 풀어주고 담배 한 대 권하지 않은 게 평생 후회가 됩니다.”
남의 육체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조사는 가능하다. 집념과 끈기로 그리고 객관적인 자료를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물어 들어가면 그게 고문보다 강한 수사방법이다. 요즈음 많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