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1일 이병완 당시 홍보수석의 예방을 받는 노태우 전 대통령. | ||
공교롭게도 최근 국내외 정세의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는 여러 논란의 한가운데에 모두 노 전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음에도 정작 그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이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단순히 침묵만이 아니라 아예 근황 자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을 정도다. 올해 들어 노 전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다시 그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들어 대다수 전직 대통령들의 대외 행보는 무척 활발한 편이다. 22일 ‘급성신부전’으로 별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의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82)은 전남대 등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80)은 일본 <도쿄신문>과 특별회견을 하는 등 최근의 북핵 문제를 놓고 현역 시절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76) 역시 대구의 모교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대외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4명 가운데 실질적으로 최연소자인 노 전 대통령은 일절 대외 행보가 없다.
올해 1월 1일에도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자택에서 신년 인사차 방문하는 측근들 및 하객들의 인사를 받느라 분주했지만 유독 노 전 대통령의 자택만은 썰렁했다. 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휴식차 장기간 미국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최근까지 노 전 대통령이 언론에 모습을 노출시킨 것은 지난 5월 31일 지방선거 때 투표장에 나타난 것 단 한 번뿐이었다.
지난 10일의 전직 대통령 초청 청와대 오찬에도 노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불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미국에서 전립선암 치료를 받는 등 그동안 건강 문제가 몇 차례 불거졌으나 테니스 등으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은 테니스로 건강을 관리해왔다. 지난 99년 <일요신문> 카메라에 잡힌 모습. | ||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측근들과 지인들은 “처음 듣는다”며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혹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부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 부부와 각별한 관계로 알려진 한 테니스인은 “어른(노 전 대통령)과 김 여사가 한때는 매주 남산과 양재동 등에서 테니스를 즐겼지만 지금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그래도 김 여사는 테니스 동호회에 꾸준히 나오셨는데 한두 달 전부터는 그분도 안 보인다고 한다. 어른의 건강이 최근 무척 나빠졌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뇌졸중 증세가 보인다고 해서 걱정이다”라고 크게 우려했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노 전 대통령의 최근 건강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는 한 인사를 통해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지인인 의학박사 K 씨는 “뇌졸중은 아니고, 대뇌와 소뇌가 있는데 소뇌의 기능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소뇌는 우리 신체의 평형감감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자연히 어지럼증도 생기고 말도 다소 어눌해져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뇌졸중 환자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처음에는 걸음을 제대로 못 걸을 정도로 심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2주 전에 퇴원해서 지금은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다소 호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청와대 모임에 참석 못한 것도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는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부득이 참석을 못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담당했었던 K 의료원의 C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직접 담당하지 않아서 정확히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딱히 병명을 규정하기 힘든 일종의 ‘소뇌 축소’와 같은 좀 희귀한 퇴행성 병인 것은 사실”이라며 “뇌졸중하고는 다르며 꾸준히 치료를 해야겠지만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거나 호전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소 장기간의 치료가 불가피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입원시 담당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의 A 박사는 학회 행사 등 바쁜 일정을 이유로 기자의 전화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