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를 올리던 남경필 지사가 장남의 군 폭행 문제가 터지며 대권가도에 상처를 입었다. 일요신문 DB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국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군대에 보낸 두 아들 중 장남이 후임병을 폭행,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17일 언론을 통해 밝혀진 후 이틀 만의 일이다. 정치인 자녀의 폭행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최근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으로 군대 가혹행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파장은 더욱 컸다.
남 지사의 아들 남 아무개 상병(23)은 후임 A 일병의 턱과 배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는 등 상습폭행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또 다른 B 일병에 대해서는 뒤에서 껴안거나 손등으로 바지 지퍼 부위를 치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남 상병의 폭행과 성추행 혐의가 축소·은폐됐다고 주장하며 혐의 내용을 추가로 폭로하기도 했다.
아들의 군 폭행 사건과 관련해 남 지사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에 올랐다. 남 지사가 아들의 입건 소식을 지난 13일 접했지만 이를 알고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남 지사가 15일자 신문에 기고한 글에는 군 가혹행위에 대해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를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며 자식을 걱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 지사가 같은 날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거리에서 호프 한잔하고 있다. 분위기도 짱”이라는 근황을 올린 것도 지적됐다.
여기에 지난 11일 아내와 합의 이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남 지사가 가족사로 곤욕을 치르게 됐다. 현재 남 지사는 대부분의 대외 일정을 취소하고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온 남 지사의 정치행보가 가족사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버지 고 남평우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수원시 팔달구에서 내리 5선을 한 남 지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여파에도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며 힘을 과시했다.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에도 부지사를 야당 몫으로 정하는 ‘연정’ 방식을 도입하는 등 독보적인 행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남 지사의 정치적 특성이 혁신 등의 이미지 정치였기에 이번 가족사 문제는 더욱 여파가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기도 출신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남 지사의 경우 그동안 정책보다는 이미지 정치로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도정활동을 하며 실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번 팔달구 보궐선거에서 신인 김용남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이기고 당선된 것도 그의 영향력을 증명한 셈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남 지사의 대권가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이번 일로 그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게 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남 지사가 그가 지금까지 닦아온 대권가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이 많다. 특히 병역비리 등 자녀들의 군 문제는 중요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고배를 마시게 하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에서 남 지사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막강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이 전 총재는 아들 정연 씨의 병역 비리 의혹 등으로 여론이 악화돼 대선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다.
남경필 지사가 8월 19일 경기도 양주시 양주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을지훈련에서 훈련에 참가한 장병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올해 진행될 국감도 남 지사에겐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연합 측에서 지역 유지로 꼽히는 남 지사의 도정활동에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는지 훑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 지사의 동생이 운영하는 경남여객은 경기도에서 대형 버스회사로 꼽힌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때부터 상대 후보 측은 남 지사의 버스 공약이 경남여객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안행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남 지사의 정책과 관련해 경남여객에 혜택이 있는지 등을 찾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가족사로 타격을 받은 남 지사가 다시 대권주자로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도지사 임기가 아직 4년이나 남았지만 도정 특성상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남 지사에겐 불리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자녀 군 문제는 예민한 사항이라 거의 재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재기하려면 국민들 앞에 선보일 엄청난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도지사는 행정가이기에 관리하는 자리지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은 못 된다. 도지사 재선도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남 지사의 지지율도 폭락한 상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남 지사의 아들 군 폭행 혐의가 논란이 된 이후인 지난 18~19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권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남 지사 2.9%를 얻어 7위에 그쳤다. 바로 전 주 조사에서는 지지율 5.4%로 5위였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떨어진 셈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그동안 대권주자로 꼽혀왔던 김무성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당내 입지가 강화됐다. 여기에 경기도지사로 성과를 올리며 잠재적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리던 남경필 지사가 대권가도에 상처를 입으면서 당내 경쟁 구도가 더욱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쇄신파’ 이미지가 겹치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경우 본인의 입지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는 “남 지사는 그동안 당과 다른 쇄신파 이미지였기 때문에 이번 여파가 당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대권구도에 있어서는 이번 남 지사의 타격이 김무성 대권가도를 1인 독주체제로 만들 가능성을 높여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김문수 전 지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김 대표에 비해서는 세력이나 지지도면에서 떨어진다. 그 와중에 잠재적 후보였던 남 지사마저 존재감을 잃었다”며 “선거는 막상막하의 후보들이 모여 경쟁해야 국민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야권의 경우 막상막하의 후보가 여럿 거론되는 것과 비교된다.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 내 경쟁구도는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