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유통 중인 ‘짝퉁’ 제품을 압수해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많은 이들이 쇼핑몰을 시작하는 이유는 비단 눈에 드러나는 대박스토리 때문만이 아니다. ‘○○이가 쇼핑몰을 통해 △△브랜드 짝퉁을 원가보다 4배 비싸게 수천 개나 팔아치워 떼돈 벌었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적잖은 사람들을 쇼핑몰 창업의 길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정당한 방법이 아닌 짝퉁을 들여와 파는 불법행위를 통해 큰돈을 벌고 있고 이로 인해 ‘짝퉁 유통’에 뛰어드는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범법행위를 모색하는 젊은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셈이다.
“인천항에 가보세요. ‘나까마’(중간상인)들 천지입니다. 아무리 ‘짝퉁’ 반입이 안 된다고 해도 그 사람들 통하면 다 들여올 수 있어요. 다만 물건을 들여오는 데 수고비가 좀 들긴 하죠. 하지만 제대로 된 ‘짝퉁’은 단가가 좀 비싸더라도 일단 반입해 오면 수요가 따라 주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다 이 사업을 하려고 해요.”
인터넷 ○○종합쇼핑몰에 입점해 패션제품을 판매하는 한 업자가 얼마 전 기자에게 털어논 말이다. 그에 따르면 가짜 명품을 공급받는 게 문제지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짝퉁’ 장사는 한마디로 배 이상 남는 장사라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에서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짝퉁’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한탕 심리’로 짝퉁 유통에 뛰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이른바 ‘짝퉁’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모조품 시장 규모는 세계적으로 약 542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모조품 시장은 2조~3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정도면 현재 1조 원대를 넘기기 힘든 우리나라 영화시장보다 훨씬 더 큰 규모고, 최근 가전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해 한창 기대를 모으고 있는 차세대 DVD시장의 2조 원보다 더 큰 규모다.
근래 들어 국내 짝퉁시장은 인터넷 쪽으로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시장이 더 커질지 아무도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날로 커지는 시장 규모와 달리 단속 인력은 한정돼 있어 짝퉁 유통을 막기에는 한마디로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대체 인터넷 ‘짝퉁’ 판매업자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기에 이처럼 ‘지망생’들이 몰려드는 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10월 중순 나까마로 위장해 명품 이미테이션(모조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쇼핑몰 업자들에게 접근해 보았다. 여러 시도 끝에 인터넷 유명 포털 사이트의 나까마 관련 카페를 통해 한 쇼핑몰 사이트 운영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기자가 카페 게시판에 올린 ‘중국에서 들여온 명품 △△△자켓 A급 짝퉁 수량한정 땡 처분’이라는 문구를 보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남 아무개(33)라고 소개하며 4개월 전부터 짝퉁 판매를 해왔다고 밝혔다.
남 씨는 기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3500㏄급 대형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차가 좋다고 부러워하자 그는 두 달 전 새로 구입한 차라고 웃으며 말했다. ‘쇼핑몰로 돈 벌어 마련한 자동차냐’고 물었더니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 모아둔 돈과 쇼핑몰로 벌어들인 돈을 합쳐서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내 남 씨에게 신분을 밝히고 양해를 구한 뒤 짝퉁 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 씨는 “나도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려 줄 수는 없다”며 한 걸음 물러선 뒤 “이 바닥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빼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일반 시중에 떠도는 중국산 보세 물건인데도 유명 브랜드만 박아 넣으면 판매량이 40%가량 급증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평생 외길로 장사할 사람 아니면 누가 짝퉁에 관심을 안 갖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짝퉁 판매업자들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인터넷에서 쇼핑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쇼핑몰을 만든 뒤 상품을 올려놓고 이를 포털의 패션 관련 카페 등에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는 것. 이렇게 하다보면 한두 사람씩 찾아와 입소문을 내 준다는 것이다. 만약 상품이 저질 짝퉁이 아니라 A급 짝퉁일 경우 이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게 남 씨의 설명이었다.
그는 특히 짝퉁 업자들이 취급하는 A급 짝퉁은 신발의 경우 애프터서비스(AS)를 백화점 매장에 의뢰해도 아무 문제없이 접수될 정도로 완벽하게 똑같다고 자랑했다. 어차피 구매자들도 가짜인 걸 알고 사는 것이니 정말 ‘진짜 같은 가짜’일수록 더 비싸게 팔린다는 것이다.
‘월 순수익이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남씨는 “800만 원가량 되는 것 같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기자가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는 “이 정도는 못 버는 축에 속한다.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진짜 많이 버는 친구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게 예사다”라며 “이 바닥이 위험 부담이 크긴 해도 판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독일 주간 <슈테른>이 보도한 중국 베이징 아파트의 ‘짝퉁’ 숍. 대부분 제조에서 판매까지 집안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 ||
유 씨는 “지금까지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사이트를 모두 20번도 넘게 바꿨고 사무실은 지금도 2주에 한 번꼴로 바꾼다”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짝퉁업자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수시로 사이트와 사무실을 옮겨다닌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7월 경찰의 단속에 걸린 적이 있는데 그때 1700만 원을 벌금으로 날렸다”며 “그것 이외에 경찰에 덜미를 잡힌 적은 없다. 이제는 단속을 피하는 요령을 조금은 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단속을 피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유 씨는 각종 명품들을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기자가 “이것들은 모두 진짜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진짜다. 가짜 팔아서 번 돈 진짜 사는 데 쓰고 있다”며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같이 파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그가 자신의 팔에서 풀러 보여준 시계는 시가로 1200만 원 상당의 고가 명품시계였다.
놀랍게도 유 씨는 자신의 한 달 순이익이 2400만 원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고수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스포츠 명품이나 패션 명품의 짝퉁은 원가보다 적게는 4배, 많게는 15배 가까이 부풀려 팔아치우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브랜드 오리털 파카 짝퉁의 경우 중국에서 3만 원에 들여와 22만 원에 팔았다고 유 씨는 밝혔다. 원가보다 무려 7배가 넘는 가격에 판 것이다. 유 씨는 “오리털 파카는 많이는 못 들여오고 총 60벌 정도 처분했다”고 말했는데 이것만 계산해 보아도 그는 단일 품목으로 1140만 원이나 벌어들인 셈이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국내 쇼핑몰 업자와 중국 업체와의 무역을 알선해 주고 있는 한 전문 업자를 만나 빗나간 ‘짝퉁드림의 실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 지사에서 중계무역을 하고 있다는 최 아무개 씨(54)는 “요즘 중국 공장과 연결시켜달라고 의뢰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짝퉁 생산 공장을 소개받으려는 이들이 90%다”라며 “이런 의뢰를 해 오는 이들이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젊은 사람들이라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 쇼핑몰 업자와 중국 공장의 거래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패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명품 상품의 사진을 찢어 중국 공장으로 보낸 뒤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일주일 내로 감쪽같이 만들어 보내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내가 소개시켜줘서 돈 번 사람들이 많다. 아마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젊은이들도 많은 것 같더라”며 “과거 벤처 붐이 그랬던 것처럼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이라고 인식된 이상 이것(짝퉁 판매)을 통해서 돈 벌려는 젊은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에서 짝퉁 판매를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마약 같은 장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쉽게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손 떼기 어려운 장사라는 의미다. 그러나 설사 짝퉁 판매로 큰돈을 번다고 해도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게 마련. 실제로 기자가 만난 인터넷의 젊은 짝퉁 판매업자들 역시 한 달에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면서도 명품 구입과 유흥 등 호사스러운 생활에 그 돈을 탕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빗나간 ‘짝퉁드림’에 자신의 청춘을 내거는 젊은이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명품 권하는 사회’가 도리어 ‘짝퉁 수요’를 부추기고, 그 와중에 ‘짝퉁 장사’로 돈을 번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명품으로 치장하는 이 아이로니컬한 악순환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