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륜에 빠진 아내를 죽이는 남편이 등장한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 | ||
“저는 대학에 나가 신학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고교 동창인 김민구 판사가 찾아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김민구 판사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판사가 사건을 소개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김민구 판사도 변호사님을 직접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엄 변호사를 찾아가면 세밀하게 사정을 파악해서 법원에 얘기해 줄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랬다. 나는 많은 살인사건을 취급했다.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부딪치고 사랑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고통을 살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써서 법원에 제출하고 또 세상에 발표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경전과는 다른 삶의 진실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먼저 그가 말한 사건의 수사기록을 구해다 읽었다. 아내 살인범으로 구속된 황인욱이라는 인물은 영화계에서 신화 같은 존재로 알려진 강 아무개 감독의 사위였다. 강 감독은 감독협회를 대표하기도 하고 한국영화계의 대부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의 딸이 어느 날 남편에게 살해된 것이다. 아버지인 강 감독조차도 살인의 동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딸에게 끔찍하게 잘해주던 사위였다. 그가 영화판을 돌아다니느라 돌보지 못하던 딸이었다. 사위가 아버지의 모자랐던 애정을 다 보충해 주는 것 같았다. 고마운 사위에게 이제 촬영하던 영화만 끝나면 아파트라도 한 채 사줄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 사위가 갑자기 딸을 목 졸라 죽였다는 것이다.
황인욱이 아내를 살해한 후 경찰에 자백한 부분은 이랬다.
“아침 9시경 발렌타인 양주를 병째 들고 그냥 4분의 1 정도 마셨습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옆에 아내가 누워 있어도 왠지 저하고 멀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함께 오래 살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살며시 일어나 베개로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내의 얼굴을 가리고 손으로 목을 졸랐습니다. 자던 아내가 잠결에 눈을 뜨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오빠’ 하고 부르는 듯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나서 양손으로 계속 목을 졸랐습니다. 아내가 몸을 약간 비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적막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영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코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싱크대로 가서 티슈를 가져다 코피를 닦아 주었습니다. 손가락을 아내의 코에 대봤습니다.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내 옆에 누웠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기억이 없습니다.”
살인이 있던 그날 오후 3시 파출소에서 나온 경찰관 두 명과 열쇠공, 그리고 긴급출동한 119구급대원들이 서울 역삼동 주택가 빌라 2층 문 앞에서 긴장한 채 서성대고 있었다. 열쇠공이 한참이나 열쇠구멍을 들여다본 후 고개를 돌려 경찰관을 보았다.
“안전핀이 걸린 걸 보면 안에 사람이 있어요.”
수리공은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 경찰관이 초인종을 계속 눌렀다.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오전에 그를 만나기로 한 황인욱의 후배가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차는 분명 주차장에 있는데 집안에선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사다리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그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려가 집안으로 들어갑시다.”
경찰관이 구급대원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은 괴괴한 정적이 감도는 황인욱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부부의 침실 안에 들어간 그들은 침대 위에서 잠자듯 조용히 죽어 있는 삼십대 여자를 보았다. 그 옆에 황인욱이 허리를 꼬부리고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리다 굳어 있었다. 방바닥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카터와 흰색 노끈이 떨어져 있었다. 황인욱이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 같았다. 응급실에 실려 간 황인욱의 잘린 손목이 봉합되고 독약을 먹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위세척작업이 진행됐다. 응급실 밖에는 기별을 받고 달려온 황인욱의 누나와 매형이 초조하게 기다렸다.
“미친놈인가 봐, 미친놈.”
응급실 앞에서 서성대는 형사들이 자기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응급조치를 마친 의사가 나왔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내 동생이 죽지는 않았어요?”
황인욱의 누나가 의사에게 물었다.
“독약을 먹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술을 마신 것 같아요.”
의사의 대답이었다.
한 시간 후 응급실 구석에서 형사가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황인욱에게 물었다.
“경찰이 정말 맞아요?”
황인욱이 살피는 눈으로 물었다.
“맞아요.”
현장으로 나온 박 형사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그래도 황인욱은 의심의 표정을 풀지 않았다.
“평소에 지병이 있으세요?”
형사가 물었다. 그는 이미 현장에 있던 가족과 후배들로부터 그가 정신분열증환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부인과의 사이가 어떠셨죠?”
“몇 달 전부터 제가 일방적으로 집사람을 괴롭혀 왔습니다. 제가 바람을 피워놓고도 일방적으로 와이프한테 덮어씌웠죠.”
“부인이 왜 죽었죠? 혹시 자살하신 거 아닙니까?”
형사가 물었다.
“제가 죽였어요. 아니 얘기 안 해, 얘기하려면 조건이 있어.”
그가 정색을 하면서 말을 중단했다.
“무슨 조건이요?”
형사가 물었다.
“담배를 줘요.”
“얘기 다 하고 담배 드릴게요.”
형사가 달랬다.
“필요 없어. 이건 나와의 싸움이야, 담배를 줘.”
“안 된다고요.”
형사가 말했다.
“그러면 물을 게 있으면 의사하고 얘기하세요. 저는 저예요.”
“부인이 왜 죽었어요? 자살했죠?”
형사가 물었다.
“자살할 사람이 아니죠. 얼마나 겁이 많은데.”
“그럼 어떻게 죽었죠?”
“너무 사랑해서 같이 죽고 싶었습니다. 목을 졸랐습니다, 이 손으로요. 죽이고 나서 손을 붙잡고 같이 누워 있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빨리 죽고 싶어요.”
“죽을 때 몸으로 반항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영화에서는 그러는데 실제는 안 그러던데….”
그게 다였다.
얼마 후 변호사인 내가 구치소에서 만난 황인욱은 노란 뿔테 안경 뒤로 빛이 반짝이는 눈동자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영리해 보이는 수재형 타입이었다.
“아내를 사랑했어요. 내가 죽였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보기만 해도 아까운 사람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살인을 부인했다. 그가 뭔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쓰면서 계속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끓이고 선식을 만들었어요. 잠자는 아내를 살짝 건드리면 더 잔다고 칭얼거리곤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아침은 깨웠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아내 얼굴이 거무스레한 게 코밑에 피가 약간 굳어 있는 거예요. 손가락을 대보니까 숨이 안 나와요. 겁이 덜컥 났죠.”
그가 말을 해놓고 순간 내 눈치를 본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 장면에서 왜 신고를 안 했느냐고 물어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그가 샐쭉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돌발적인 사고를 막기 위해 그의 팔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차디찬 금속성의 빛이 번쩍였다. 어쩌면 그 손으로 내 목을 조를지도 몰랐다. 구치소 방 안에는 그와 나밖에 없었다.
“왜 신고를 안 했어요?”
내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물었다.
“할 수 없었어요, 신고를.”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주위 사람들이 주는 느낌이 달랐어요. 나보고 ‘너 불안해하는 것 같다’라면서 뭔가 나를 자꾸만 정신병자로 몰려고 유도하는 거였죠. 같은 날 여러 사람을 만나도 하는 얘기가 똑같아요. 얼마 전 주위사람들에게 이끌려 정신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괜찮다고 했는데 요번에 경찰에서 뗀 진단서를 보니까 내가 심한 정신병환자라 입원을 권했는데도 거절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정말 의사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죠.”
“누가 아내를 죽였다고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사실 아내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권력가인 장인이 내가 보기 싫어서 어디다 빼돌리고 살인사건으로 위장한 거죠. 경찰서에서 장인을 만났는데 내가 딸을 죽였다면 분노해야 할 텐데 아주 냉소적이고 담담해요. 그 표정만 봐도 딸을 빼돌린 걸 알 수 있어요. 아마 옆 감방에도 장인의 스파이가 들어와 있는 거 같아요.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
“장인이 왜 그런다고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리고 딸을 빼내서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게 틀림없어요.”
확실히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지나온 삶을 추적해 보기 시작했다. 십년이 넘는 나이 차이와 못마땅해 하는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은 아내 강경숙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목숨을 줄 정도로 서로 사랑했다. 강경숙은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이었다. 남편을 아버지 못지않은 감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무렵 남편의 연극영화과 동기생인 감독이 흥행에 성공을 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황인욱은 풀이 죽어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룬 게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예요? 당신은 더 좋은 대작을 만들어야 해.”
아내 강경숙은 남편의 성공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황인욱은 일하던 팀들과 어울려 아이처럼 지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내 강경숙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황인욱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감시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미행당하고 도청당한다고 무서워했다. 불안해서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수시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감정변화도 극단적이었다. 지독히도 즐거워하다가 어느 순간 침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변했다. 주변에서 그를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권유했다. 그의 처 강경숙은 완강히 거부했다. 주변에서는 황인욱의 자살을 걱정했다. 엉뚱하게도 결과는 아내 살인이었다. 법정에서 황인욱의 살인사건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