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감에 참석한 백성학 회장. 뒤에 신현덕 대표가 보인다. 사진제공=오마이뉴스 | ||
이에 대해 백 회장과 경인TV 측은 “신 대표의 주장은 음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지만 파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스파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경인TV의 방송 허가 추천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논란이 된 두 개의 문건 가운데 특히 ‘D-47 정국동향’ 건은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만약 이 문건이 국내의 어느 기관이나 특정인에 의해 작성돼 미국의 정부기관에 전달됐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칫 엄청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감장에서 신현덕 대표는 “(지난) 7월 초 백성학 회장이 북한의 동향과 관련한 국내 정세분석, 노무현 정권에 대해 미국 측이 취할 수 있는 방향 등에 대한 문서 작성을 은밀히 제안했다”며 “백 회장 자신이 국내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문서와 정보를 제공받고 있으며 그것을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고 폭로했다. 또한 그는 “실제 백 회장은 내가 작성해 올린 문건들도 영문으로 번역해 보여 주었으며, 내일이면 현직 미국 부통령 책상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백 회장은 한국과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등 한반도에서의 군사 문제를 총괄하는 미국 측 책임자인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를 잘 안다고 말했으며 최근에는 현직 한국 외교장관과도 만나 롤리스와의 관계를 과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롤리스와 오랫동안 인연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인사가 영안모자 해외담당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사람 역시 문서 작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 회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음해다. 더러 아는 분들을 통해 여러 문건들을 받는 것은 있지만 미국 정부에 전달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경인TV 역시 파장 직후 보도 자료를 내고 “백 회장은 외부 증권가에 나도는 보고서나 외부 자료를 신 대표에게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며 자료를 넘긴 바 있다”며 이 문건의 성격을 정체불명의 ‘찌라시’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건을 접한 정치권과 주변 관계자들은 단순 정보지 수준으로 보기만은 어렵다는 평이 대세다. 단순한 동향 정보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다루고 대처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도 여기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신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 회장은 간첩 행위를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역시 “첩보활동과 관련된 문서라는 오해를 받기 쉽게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스파이 논란’의 또 다른 쟁점은 민감한 사안이 담긴 ‘D-47 정국동향’ 문건을 과연 누가 왜 작성했는가 하는 점이다. 신 대표는 “백 회장은 다른 곳에서 작성되어 온 문건도 참고 삼아 읽어보라고 내게 주었는데 ‘D’로 표시하는 사람이 47번째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즉 자신이 보고하는 문건은 백 회장이 S라는 이니셜로 명명하고 그 순서에 따라 ‘S-1’, ‘S-2’ 식으로 명기하는 것과 같이 D라고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정기적으로 백 회장에게 문건을 보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백 회장은 “책상 위에 그런 보고서가 올라와 있어 신 대표에게 확인해보라며 줬다. 나도 누가 이런 문건을 작성했는지 궁금한 만큼 조사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 문건들이 실제 미국에 전달됐는가 하는 점이다. 신 대표는 자신이 올린 ‘S-1’ 문건의 영문 번역본 문건을 같이 공개하면서 미국에 전달하기 위한 목적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백 회장은 “영안모자 계열 30개 해외법인 간 정보교류를 위해 영문으로 번역했을 뿐 미 정부 측에 전달한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문건 내용을 보면 해외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보낼 내용이 아니다”라며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스파이 논란’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백 회장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평북 철산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백 회장은 평소 “미국은 내 생명의 은인인 나라”라고 말해왔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미 인사로 통한다는 것. 단순히 친미 인사 수준이 아니라 폭넓은 미국 워싱턴 정가의 인맥으로 실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국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백 회장의 미국 인맥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 일가와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내일신문>은 지난 1일자 보도에서 ‘미 국방부 롤리스 부차관보가 방한하면 백 회장 신세를 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에서 그의 영향력은 국내 정부 관계자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논란이 경인TV의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불거진 양 공동대표 간의 헤게모니 갈등에서 비롯된 폭로 비방전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백 회장 측은 이번 파문을 회사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신 대표와 CBS의 음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의 강력한 진상 규명 요구가 아니더라도 이번 스파이 논란이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백 회장은 폭로자인 신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반격에 나섰고 신 대표 역시 “수사가 이뤄지면 더 밝힐 것이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일각에서 두 사람의 대화 녹취록이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