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 뒤인 22일에는 수원지검 강력부가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신이 직접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20억 원가량의 수익을 올린 현직 경찰관 B 씨(36)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사행성 도박게임을 감시하거나 단속해야 하는 대학교수와 경찰관이 오히려 인터넷 도박사업에 뛰어든 현실은 사이버 세상에서 얼마나 거센 도박광풍이 불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기자는 한 통의 제보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S(35)라고 밝힌 제보자는 수년간 몸담아온 온라인 도박게임업계의 실태에 대해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이에 그를 직접 만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온라인 도박게임업계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11월 23일 강남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S 씨는 자신을 온라인 도박게임 개발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P 씨라는 20대 중반의 남성과 함께 이 자리에 나왔는데 그 역시 도박게임 개발자였다.
S 씨는 “나는 이 업계에서 거의 초창기 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름대로 도박 산업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는데 이젠 이 업계를 떠나려 한다”며 “막상 떠나려고 보니 지금의 폐단이 너무 심각해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언론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인터넷 도박게임은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보드게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도박게임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때마침 오프라인 사행성 오락실이 철퇴를 맞은 뒤 온라인 도박사이트들은 말 그대로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S 씨는 약 5년간 경마와 카지노 위주로 도박게임을 만들어 각 사이트에 공급해왔다고 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도박게임 사이트는 주로 프로그래머들이 운영과 개발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도박 사이트는 ‘고객’들이 프로그램 장치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대해 모르면 사이트를 운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게임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각종 첨단 제작기술이 동원된다고 한다. 때문에 게임 하나 개발하는 데 억대의 돈이 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게임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잡는 데 드는 비용과 게임 프로그램 관리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최근에는 게임 개발과 판매, 관리를 도맡아 하는 전문 업체까지 등장, 수많은 도박 사이트들이 이런 업체를 통해 게임을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도박 사이트 운영에는 많은 투자가 따르지만 프로그램 오류나 경찰의 사이트 단속 등과 같은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 모든 투자비용을 어렵지 않게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 S 씨의 설명이다. 그만큼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이용하는 수요자가 많고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기도 쉽다는 것.
S 씨는 온라인 도박게임의 중독성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젠 온라인 도박을 성인 PC방까지 가서 할 일이 없다”며 “요즘에는 집에서 게임을 다운받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다른 회원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그가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온라인 도박게임은 일반 사행성 성인오락실보다 훨씬 비도덕적이고 위험하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은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재미 삼아 하는 일반 게임 사이트처럼 위장해 운영하기 때문에 어린 10대 학생들까지 쉽게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
S 씨는 “요즘 도박 사이트들은 겉으로 봐서는 일반 게임 사이트와 거의 구분이 힘들다. 게임머니도 처음 회원으로 가입하면 공짜로 얼마씩 지급해 주고 일단 게임의 맛을 보게 만들어 놓았다”며 “많은 이들이 유료 게임을 얼마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게임을 접했다가 나중에 도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사이트들은 대부분의 경우 국내 법망을 피해 해외에 서버를 개설해놓고 있으며 사이버머니를 교묘한 수법으로 현금으로 교환하도록 해 중독성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얘기 중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도박 사이트의 적은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다. 도박 사이트의 최대의 적은 바로 다른 도박 사이트다”라는 부분. S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업자들은 자신의 사이트나 게임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이트를 죽이는 데도 혈안이 돼 있다. 고객이 다른 사이트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경쟁 사이트가 새롭게 내놓은 포커게임으로 히트를 칠 경우 이를 방해하기 위해 게임을 해킹해 상대 패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유포시키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그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전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온라인 도박에 대한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에 이 틈을 타 일반 직장인들이 게임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잡으로 도박게임 개발이나 운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직장인뿐만이 아니다. 대학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게임 개발에 뛰어든다”며 “이 가운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체 사원이나 명문대생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친구들끼리 도박게임을 만들어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다른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고액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아이디어와 전략을 잘 짜면 도박 사이트로 불과 수개월 만에 수십억의 돈을 만질 수 있다. 때문에 엘리트라 불리는 고급두뇌들이 대박을 노리고 이 사업에 투신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S 씨의 후배라는 P 씨가 전하는 일화는 마치 영화 속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P 씨에 따르면 그의 친구 K는 명문대생으로 지난 2003년 말 군 제대 후 온라인 도박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그는 언제인가부터 집 안에만 틀어박혀 두 달 동안 컴퓨터와 씨름했다. 알고 보니 K는 그동안 도박게임을 개발했던 것이었고 이후 그는 후배 한 명과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는 대히트를 쳐 K는 4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37억 원이라는 거액을 벌어들였다는 것이 P 씨의 증언이다.
하지만 사이트가 너무 커진 탓인지 K는 불법 사이트 운영 등의 혐의로 지난해와 올해 한 차례씩 경찰에 입건됐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한다. 경찰의 단속에 대비해 해외 서버를 철저히 관리하고 자신이 쓰던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미리 조작해 둔 덕분이었다.
이에 대해 P 씨는 “당시 K는 경찰의 단속을 미리 염두에 두고 유사시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이트를 운영해 왔다는 근거를 모조리 없애버릴 수 있는 일종의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했다”며 “이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도박게임업계의 진짜 고수들은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얘기다.
S 씨는 “인터넷 도박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의 대박을 노린다. 크게 한탕 하는 게 목표다”며 “그래서 단속을 피한다는 핑계로 사이트를 폐쇄하고 회원들의 돈을 챙겨 달아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고 털어놓았다.
끝으로 그는 “음란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도박은 절대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다. 도박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데다 단속을 피하는 수법 또한 최첨단이기 때문이다”면서 “어떻게 도박 사이트 운영자가 단기간에 수십억씩 돈을 벌 수 있겠나. 결국엔 99%가 아닌 100%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걸 인식하고 스스로 도박의 유혹을 경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