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여성 헬기 조종사인 피우진 중령. 전역대기 상태인 그는 군내 여군 성희롱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자전적 에세이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펴내 파문이 일고 있다. | ||
하지만 피 중령이 1979년 임관 이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오늘날 그의 전역 명령이 반드시 병력 때문만일까 하는 일말의 의문을 품게 된다. 그 스스로가 자신을 ‘꼴통’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그는 군 생활 내내 군내의 막강한 남성우월주의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 일개 대위의 신분으로 여군을 술집 접대부 취급한다는 이유로 4성장군의 명령을 면전에서 거절하기도 했다. 여군을 군인으로 보다는 여성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반항적’인 피 중령은 절대 다수인 남성 군 장성과 장교들, 심지어는 일부 여군 장교들에게까지 거북살스러운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전역이 임박한 시점에 또 한 번 대형 사고를 쳤다. 강제 전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사소청을 제기한 상태에서 지난 11월 22일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한 것. 여기에서 그는 민감한 사안이랄 수 있는 군내에서 빚어지는 여군에 대한 성희롱 또는 성추행 문화를 언급했다. 그는 여군을 개인 비서나 술 따르는 접대부 취급하는 일부 장성들의 잘못된 관습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부 여군 장교들의 경우 이런 잘못된 남성 군 장성·장교들의 관습에 맞서기보다는 여기에 편승해 오히려 부하 여군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죽했으면 ‘여군 대장은 호스티스 마담’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라고 일부 몰지각한 여군 장교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피우진 중령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79년 8월 여군사관후보생 27기로 소위로 임관하며 군과 인연을 맺었다. 그뒤 여군훈련소 중대장, 특전사 중대장, 1군사령부 여군대장, 12항공단 205항공대대 중대장, 16항공대 부대장, 11항공단 본부 부단장, 항공학교 학생대 학생대장 등 여군 장교로서 남성에 못지않게 야전부대의 지휘관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그는 이 땅의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군인 행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지난 2002년. 유방암 선고를 받은 그는 완치를 위해 유방 절제 수술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그는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결국 전역 처분을 받았다. 그는 현재 전역 대기 상태로 있다. 그의 공식적인 전역 일자는 11월 30일. 12월 13일 있을 인사소청위원회에서도 그의 소청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는 불명예스럽게 30여 년의 군 생활을 접어야 한다. 다음은 지난 24일 피 중령과 나눈 인터뷰 내용.
―인사소청 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군의 예민한 치부를 드러내는 책이 나왔다. 이번 출간이 오히려 피 중령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 같은데.
▲그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설사 인사소청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준비했다. 그리고 정말 떳떳하게 군을 비판하려면 어쨌든 현역으로 있는 지금이 적격인 시기라고 생각했다. 쫓겨나고 나서 책을 낸다면 마치 뒤에서 분풀이하듯 욕하는 것 같지 않은가. 또 중령으로 전역하고 나서 회고록을 쓴다는 것도 우습고. 무조건 군을 비하한 것도 아니고 일부 잘못된 점을 비판한 것이니만큼 이제 우리 군은 이 정도의 비판에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성숙함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난 군을 믿는다.
―강제 전역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번 전역 조치가 부당하다는 뜻인가.
▲얼마 전 한 공군 장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피부암 환자임에도 비행에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복무를 한다’는 얘기를 해줬다. 또 얼마 전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지만 한 육군 장교는 근무 중 지뢰를 밟아 양 다리를 절단하는 심신장애 2급 판정에도 불구하고 육군대학에서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군 참모총장의 판단에 따라 정상적인 근무에 지장이 없다면 복무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예외 조항도 있다. 최근에는 국방부에서 이 규정의 비합리성을 문제 삼아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내 경우도 이미 신검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무조건 나는 안 된다며 규정만 고집하며 전역을 명령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 헬기 조종석에 앉아 웃고 있는 피우진 중령의 옛 사진. | ||
▲쉽게 말하면 난 군에서 ‘꼴통’이었다. 주변 선후배 동료들이 ‘제발 좀 편안하게 가자. 안 그랬으면 진급도 잘 하고 그럴 텐데 네가 그렇게 좌충우돌하니 누가 널 진급시켜 주겠나’라는 충고도 많이 해준다. 그런데 내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는 적당히 눈감을 부분은 감아야 할지 몰라도 성격상 난 그걸 잘 못했다. 그렇다고 딴 사람들이 눈감는다고 해서 난 그것을 크게 욕하지는 않는다. 서로 가치관의 차이다.
―아무리 계급사회라지만 주변 시선이 있는데 정말로 상사라고 해서 부하 여군에게 신체적 접촉을 하거나 술자리 등에 강제로 동원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이제는 군도 많이 개혁이 됐고 사관생도 배출 등으로 여군에 대한 지위도 다소 향상됐지만 80~90년대만 해도 그런 인식이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군에서 여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말 다양하다. 또 어느 한 사람이 여군을 대하는 것도 굉장히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예를 들어 일을 하다보면 군인으로 보일 때도 있고 또 순간적으로 여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여자고, 게다가 내 명령을 절대로 따라야 하는 하급자고, 과거 상관들도 다들 그렇게 해왔고, 그게 특별히 문제가 되지도 않았고, 여군들도 별로 항변하지 못했고, 뭐 이런 식이니까 여군을 쉽게 대하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모 여군 고위 장교의 성상납 행위였다(상자 기사 참조). 그 여군 장교만의 돌출 행동인가, 아니면 실제 비일비재한 경우의 한 사례에 불과한 것인가.
▲실제 비일비재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여군 장교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한 경우는 드물겠지만 소극적으로나마 그런 잘못된 관행을 눈감고 도와준 이들도 많다. 책에서 언급한 그 여군 고위 장교는 개인적으로는 내 선배가 되는데 절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관례가 지속되게 하고 남군들에게 그런 여지를 주는 아주 나쁜 경우다. 차라리 남군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우리 여군 스스로 그렇게 격을 떨어뜨리느냐 말이다. 오죽하면 여군 대장을 호스티스 마담이라고 부르겠는가.
―책을 보면 방송인 손석희 씨가 훈련병 시절 피 중령의 부대원이었던 것으로 소개됐는데.
▲79년 소위 임관 직후 여군 훈련소 중대장을 맡았는데 거기에는 여군 부사관 후보생뿐만 아니라 영문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는 남자 병사들도 들어와 있었다. 거기에 손 씨가 훈련병으로 있었는데, 무척 하얀 얼굴에 똑똑하고 반듯했던 사병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훈련병인지라 내게 이런저런 잘못으로 당시엔 혼도 많이 났다. 며칠 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더라. 아마 내 소식을 다른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들은 모양이다. 30년 가까이 됐는데도 나를 정확히 기억했다.
―79년 특전사에서 교육을 받았을 때에는 12·12 군사 쿠데타를 경험하기도 했다는데.
▲소위 시절 4주간 특전사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하루는 밤 9시에 총성이 막 나더라. 깜짝 놀랐다. 일직사령으로부터 전화로 ‘단순 오발사고가 났으니 숙영지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음날 평소와 똑같이 사령부를 지나서 교육대로 가는 길에 보니 시신 한 구가 그대로 있더라. 그 시신이 바로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인 김오랑 소령이었다. 불과 며칠 전 교육받으러 왔을 때 사령관실에서 당시 정병주 사령관과 김 소령에게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했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당시에도 군 쿠데타에 대해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땐 우리의 정보도 한계가 있었다. 나도 역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나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나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만약 소청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역이 확정된다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
▲행정소송을 벌일 것이다. 변호사와 다 얘기된 부분이다. 이번 건은 비단 내가 복직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이런 규정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