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수도 회장. | ||
검찰의 수사 형태도 하나하나 단계별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주 회장의 개인 횡령과 탈세 등 내부 비리로 시작된 수사가 청와대와 검찰 및 경찰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폭발력이 가중됐고, 이어 다시 정치권 인사 연루설이 불거지면서 서해유전 개발 사업 등의 JU 신규 사업에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이 모든 상황이 놀랍게도 국정원에서 지난해 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보고서 문건의 내용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JU로 인해 피해를 당한 측들은 “검찰과 언론에서 너무 정·관계 인사들만 거론하는 등 흥미위주로만 사건을 몰아간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작 사건의 핵심은 많게는 1조 원대에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액수의 은닉 비자금의 행방이라는 것.
국정원 보고서는 이 비자금의 행방에 대해 중국을 ‘해외자금 도피처’로 지목하고 있다. 실제 주 회장은 구속 직전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 중국으로의 밀항을 시도한 것으로 한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중국에 바로 ‘황금’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참여정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곳은 국정원”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바다이야기’ 파문과 ‘일심회’ 간첩 의혹 사건에 이어 JU 사건까지 터져 나오면서 노무현 정부의 인기 하락과 상반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이는 거꾸로 말하면 청와대에서 국정원 보고서를 ‘홀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말도 된다.
단적인 예가 참여정부 최대 게이트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JU 사건으로 국정원 보고서가 뒤늦게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국정원 보고서를 구해달라는 요구로 아우성이라고 한다.
국정원 보고서는 그 작성 시기와 청와대 보고 여부를 놓고 지금도 숱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지난해 말경 작성돼서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보고서가 세간에 처음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올해 5월이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서 5월 16일자로 최초 보도했고,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같은 시기에 국회에서 이 보고서 문건을 언급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막상 당시에는 이 보고서가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검찰에서 “내용의 신빙성이 다소 의심스럽다”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재순 청와대 비서관 가족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뇌관이 폭발한 그 시점까지도 검찰 측은 애써 국정원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현재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과 관련자 이름은 모두 국정원 보고서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지도층 인사 가족 회원가입 실태’ ‘정·관계 대상 금품 살포’ ‘신규 사업 실태’ 등의 항목들이 하나하나 순서대로 검찰 수사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고서 내용 중 가장 눈길이 가는 또 하나의 항목이 있다. ‘비자금 해외 밀반출 의혹’이 그것이다.
보고서 문건은 ‘주 회장이 2003년 중국 북경에 ‘북한무역사무소’ 설립에 이어 2004년 10월 필리핀에 ‘JU네트워크’ 현지 법인 설립 등으로 영업망을 확대’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해외지사 설립의 배경에 대해 이 보고서는 ‘그룹이 부도가 날 경우 모든 자산이 압류될 것에 대비, 해외법인 설립 등을 명분으로 자산을 분산시켜 피해를 줄이겠다는 발상에서 추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고, 특히 ‘현지 법인들을 환치기에 이용하거나 자금 도피처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도 역시 해외 법인 설립의 핵심 인사로 한의상 씨를 지목하고 있다. 한 씨는 현재 구속 중인 주 회장에 이어 JU의 핵심 실세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져 검찰의 집중 수사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보고서에는 ‘한의상 JU네트워크 고문이 ‘B’라는 유통회사를 설립, 필리핀 현지 법인으로 외화를 송금한 후 제3국으로 외화를 빼돌리고 있다는 설이 유포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보고서는 ‘일각에서는 JU프로덕션 본부를 중국에 두고 있는 것과 관련 ‘비자금 도피처’라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업계에서는 오너들의 비자금 해외 밀반출 소문이 파다하며 JU네트워크 전산실 홍○○ 부장은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주변인에게 호언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홍 씨 역시 이번 사건에 결정적인 수사 단서를 쥔 인물로 현재 검찰에서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중국으로의 비자금 도피설’은 향후 검찰이 밝혀야 할 핵심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미 상당액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것이라는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 회장이 잠적에서 구속 직전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6~7월의 약 한 달여 도피기간 중에 중국으로의 밀항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는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 1조 원대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액수의 은닉 비자금 행방이 JU 사건의 새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제이유그룹 사옥. | ||
이외에도 주 회장은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중국으로 빠져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봄께에도 중국으로 몰래 떠나려다 공항에서 출국금지 조치 사실이 확인돼 못 나간 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는 금감원에서 회사의 경영 위기를 밝히는 회계 감사결과가 공시되고 검찰 내사설이 나오는 등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JU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만 4조 5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JU 측은 이 돈이 수당(전체 매출액의 50~70%)으로 지급되거나 신규 프로젝트 사업에 투자됐다고 해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법정 증언을 통해 JU의 수당 지급 방식은 지정된 산출 공식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결정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된 돈도 300억~400억 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엄청난 차액이 오리무중인 셈이다. 천문학적인 비자금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확산되는 이유다.
국정원 보고서에는 비자금의 규모를 2000여억 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비자금의 규모는 총 2000여억 원이며, 한의상 고문, 정○○ 총경리, 최○○ 이사, 홍○○ 팀장 등을 통해 조성됐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자금 중 100여억 원을 검찰 경찰 정치권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로비자금을 활용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검찰에서도 현재 이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실제 수당으로 지급된 돈과 회사 전산에 (허위로) 기재한 액수의 차액만 계산해도 최소한 수천억 원에서 1조 원대까지 나온다”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비자금이 조성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는 비자금의 은닉 실태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해놓고 있다. 이에 따르면 ‘차명계좌를 통해 ○○은행 개인금고에 450여억 원이 보관되고 있고, 사채업자 변○○ 씨가 400억 원을, 중간 전주 이○○ 씨가 150억 원을 각각 세탁 관리하고 있으며, 북경 법인 60억 원, 필리핀 법인 40억 원 등 해외 법인 밀반출 100여억 원, 기타 내연관계에 있는 JU○○○ 이사 ○○○, 동생 ○○○, JU○○○○ 대표 ○○○ 등을 통한 투자지분 은닉, 특별관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내용은 비자금 2000여억 원 정도의 규모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들의 주장대로 훨씬 많은 비자금 규모가 드러날 경우 또 다른 재산 은닉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서울 압구정동에서 여전히 운영 중인 ‘불스홀딩스’사 역시 그중의 하나로 거론된다. 구속된 주 회장을 대신해 JU 관계자들이 설립한 이 회사의 운영 자금이 의심받고 있는 것. 회사 주변에서는 그동안 주 회장이 재산을 차명으로 은닉했다는 의혹을 샀던 ‘B’ 사에서 자금이 나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C 빌딩에 주 회장이 소위 ‘바지사장’을 내세워 운영하고 있는 여러 업체들과 ‘안가’로 사용하는 방들이 입주해 있다고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자금 은닉 의혹에 대해 주 회장은 지난 7월 검거 직전 “비자금이 한 푼이라도 나오면 스스로 내 팔을 자르겠다”고 강력히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주 회장은 회사 관계자들이나 투자자들에게 그동안 공공연히 “내 재인 자산만 1조 원인데 설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한 사업가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1조 원의 자산가가 됐다는 것은 결국 역설적으로 그 스스로가 차명으로 재산을 은닉했음을 반증하는 결과라는 것이 주변의 반응이다.
실제 “그룹의 한 관계자가 ‘주 회장이 빨리 나와야 돈도 받을 수 있다. 구속이 장기화되면 분산된 돈들이 차명 관리자들의 돈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는 얘기 역시 주 회장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차명으로 돈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28일 정상명 검찰총장이 이번 사건 수사의 사령탑인 선우영 서울동부지검장의 보고를 받은 뒤 심각한 얼굴로 ‘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 가능성을 언급했을 정도로 JU 파문은 자칫 그 피해액만 수조 원대가 아니라 비자금 규모 또한 ‘조’의 단위로 넘어설 수도 있는 엄청난 메가톤급 뇌관을 간직하고 있다. 그 엄청난 규모만큼이나 파편은 정·관계 여기저기로 마구 튈 것으로 보인다. 정·관계와 법조 인사들이 파장을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시종일관 극도의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이런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