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이근영 전 금감원장. 연합뉴스 | ||
김 씨와 현직 검찰 간부들과의 연루 의혹으로 본격화된 검찰 수사가 금감원과 감사원, 국세청 전·현직 고위 관계자에서 정치권 인사들로까지 확대되면서 거대 게이트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김 씨의 상호신용금고 인수 작업을 도와준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과 신상식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이 구속되고, DJ 정부 실세인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까지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김 씨의 폭넓은 로비 실체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김 씨 관련 의혹 및 쟁점과 김 씨 주변 등에서 제기된 새로운 의혹들을 자세히 정리해봤다.
골드금고 의혹에서 시작
애초 김 씨가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은 골드상호신용금고(골드금고) 인수 로비 건 때문이다. 98년 그레이스 백화점을 처분하고 부동산 사업 등을 벌이던 김 씨는 삼주산업 회장 시절인 지난 2001년 3월 업계 예상을 깨고 골드금고 인수자로 결정됐다.
당시는 골드금고의 최대주주였던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이 전자상거래 유통업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려는 목적으로 금고를 포함한 계열사 일부를 정리하는 단계였다.
당초 ‘이용호 게이트’의 당사자인 이 씨가 인수 대상자로 유력했지만 김 씨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결국 김 씨는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이 보유한 금고 지분 30.01%(276만 주) 전량을 110억 원에 매입하기로 하고 골드 측과 경영권 이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김 씨는 인수 대금 납부 최종 기한인 그해 3월 31일까지 매매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4월 2일부로 골드금고의 주식 매매 및 경영권 이전 계약은 무효가 됐다.
이 같은 ‘해프닝’이 수사기관에 의해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은 4년여가 흐른 지난해 4월. 대검의 한 수사관(현 지방 시장으로 재직)이 골드금고 인수 당시부터 김 씨가 정부기관 간부에게 인수 협조 로비용으로 2억 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를 진행해온 사실이 알려진 것.
때를 맞춰 당시 현직 검사장이 이 수사관의 내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2003년 2월 미국으로 도피했고 검찰은 2004년 1월 김 씨에 대해 여덟 가지 혐의를 적용하고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당시 법무부가 해당 검사장을 문책성 인사 조치시키고 정부 측에서도 김 씨가 정부기관 간부에게 로비 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파문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귀국한 김 씨가 지난해 12월 구속된 이후 재개된 검찰 수사를 통해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이 김 씨로부터 골드금고 인수를 도와주는 대가로 2억여 원을 받은 혐의가 밝혀지면서 파문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인수 과정에 금감원 인사들이 적극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골드금고의 구체적인 매각 과정과 경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 씨에게 김 부원장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이 인수 과정에서 과연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가 의혹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이 전 위원장 직권으로 골드금고의 부실 판단을 했는지 여부, 김 씨와 골드금고 측 간의 인수계약 체결 당시 출자자 조사와 검증 과정이 소홀하게 진행된 배경 등이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이 가운데 골드금고의 부실 여부 판단과 관련해선 검찰과 이 위원장의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금감원 자체적으로 신용금고의 부실 판단 기준이 있었으며 당시 골드금고는 그 기준에 해당하지 않았다는 시각인 반면 이 위원장은 이와 상반된 입장이다.
일단 취재 결과로는 골드금고가 지난 2000년 7월~12월 실적 결산 결과 44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우풍금고 인수 당시 받은 공적자금 때문에 전체 금고 법인으로는 유일하게 3억 3000만 원가량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수뢰 고위 공직자 더 있나
김 씨와 가깝게 지냈던 고위공직자들의 추가 금품 수수 여부도 관심거리다. 실제 검찰은 김 씨로부터 ‘금감원 간부 2~3명도 로비 대상에 포함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주변에서는 지난해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된 ‘금품수수 의혹 첩보’ 문건의 내용을 상당히 주목하는 분위기. 골드금고 내사 건을 담당했던 검찰 수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에는 ‘김씨가 13억 원을 마련해 10억 원은 인수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3억 원 가운데 2억 원을 (한 간부에게) 건넸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억 원 중 김 부원장에게 간 2억3000만 원을 제외한 7000만 원의 행방에 대해 조심스러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지난 11일 검찰에 출두하는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골드금고 인수 로비 및 대출 청탁 의혹에서 출발, 곁가지로 파생된 김 씨 관련 의혹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김 씨가 지난 2001~2002년 한 지방 신용금고에서 무담보 30억 원을 포함해 총 200억 원을 대출 받기 위해 감사원 간부 등에 청탁한 의혹, 그리고 지난 2002년 당시 국무총리실 심의관이 김 씨의 부탁을 받고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비위 사실을 은폐한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김 씨가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사무실 마련 비용을 대납해준 대가로 인사 청탁을 한 의혹과 변호사로 근무하던 H 부장 검사의 검사 재임용을 청탁한 건도 집중 수사 대상이다.
이처럼 김 씨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그의 폭넓은 인맥 실체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씨가 20여 년 전부터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이라는 친목 단체를 통해 정·관계 및 법조계, 연예계 인사들과 막강한 인맥을 구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모임은 핵심 인물만 45명에 이르며 그중에서도 8명의 회원들이 김 씨의 행보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5인회’로 불리는 이 모임에는 야당의 K, M 의원과 여당의 K 의원을 비롯, DJ 측근 인사들과 전직 야당 의원까지 참여하고 있고 금감원과 감사원, 국세청 전·현직 관계자도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력 대권 주자의 친형 A 씨도 거론되고 있는데 실제 그는 김 씨와 함께 컴퓨터 관련 개발업체인 ‘스페이스테크놀로지’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김 씨 사건에 대한 내사 중단 압력을 넣은 K 검사장을 포함, 전·현 검찰 간부 5~6명이 김 씨의 ‘모임’ 인맥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전직 검찰 수뇌부급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유명 방송인 K 씨와 S 씨 등 연예인 5~6명도 45인회에서 김 씨와 친분을 맺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검찰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과 김 씨 주변의 몇몇 인사들 사이에서는 “실제 45인회와 언론 보도 내용은 일부 다르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김 씨의 한 주변 인사는 “사람 수가 45명은 안 된다. 김 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멤버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주로 용인 김 씨 집에서 자주 모였다”고 전했다.
특히 이 인사는 45인회에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이 포함된 것은 아니며, DJ 측근 인사 P 씨가 45인회 멤버로 거론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측근 인사가 아닌 그의 조카가 실제 45인회 명단에 포함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검찰 및 수사기관 등에서는 김 씨가 ROTC 10기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ROTC 출신들 사이에서는 D 대 출신인 김 씨가 10여 년 전부터 ROTC 모임을 통해 ROTC 10기 동기인 전직 대통령의 아들 등과 급격하게 가까워지면서 다각도로 인맥을 넓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후문이다.
'수상한' 백화점 매각
현재까지 불거진 김 씨 관련 의혹 수사와는 별도로 검찰은 김 씨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정황도 일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검찰은 98년도에 서울 신촌 지역에 위치한 그레이스 백화점이 H 백화점에 매각될 당시 당초 매각 가격보다 400억 원 정도 할인된 가격에 매각된 점을 비자금 조성 가능성 쪽으로 확대시켜 보고 있다”고 전했다.
H 백화점은 지난 98년 10월 그레이스 백화점의 부채 2294억 원과 실제 영업 양수 금액 514억 원 등 총 2808억 원을 지불하고 백화점을 인수했다. 검찰의 의혹대로라면 김 씨가 매각 차익 외에 또 다른 이득을 챙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는 셈이다. 또한 백화점 매각에도 또 다른 제3의 인물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이 실제 지난 98년 그레이스 백화점 매각 과정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에는 특별한 혐의를 찾지 못했으나 최근 김 씨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백화점 매각과 관련, 일부 수상한 혐의점이 드러났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히 검찰은 만약 수사 결과 김 씨가 당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중 일부가 당시 정권 인사에게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다중매매 사기행각
김 씨가 본인 및 측근 소유 용인시 땅 3만여 평을 이중, 삼중으로 매매한 사실도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김 씨가 지난 2002년 8월, 10월, 그리고 2003년 4월에 무려 4개 법인과 같은 땅을 놓고 매매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난 것. 이 때문에 소유권 행방을 놓고 해당 업체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동부경찰서와 서울동부지검이 이 같은 첩보를 입수, 수사를 진행하다가 최근 김 씨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서부지검으로 사건이 이송돼 본격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6월 김 씨로부터 땅을 매입했다고 주장하는 Y 사가 김 씨와 김 씨 땅을 매입,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친 S 사를 상대로 부동산 소유권 말소등기 소송을 제기한 상태.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놀랍게도 Y 사와 김 씨가 중간에서 짜고 소송 사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Y 사 측 변호인 B 변호사는 김 씨의 45인회에 참여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Y 사 측에서 제출한 거래 내역과 영수증 등도 검찰 수사 결과 가짜인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검찰은 Y 사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 씨에 대해서도 혐의를 추가하겠다는 방침.
S 사 측 변호인은 “일단 원고 측에서 일부 검찰 수사 결과를 승복하고 소장 내용을 변경해 제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해당 법원 판사는 기자와의 접촉을 거부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나머지 법인들도 소유권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김 씨 관련 의혹은 또 다른 방향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