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석궁으로 쏜 전 성균관대 교수 김명호 씨가 지난 17일 구속 수감됐다. 김 씨는 95년 대학 시험문제의 오류를 제기한 것 때문에 승진에서 탈락하고 재임용도 거부됐다며 소송을 제기해 왔다. 연합뉴스 | ||
서울대 출신으로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밟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쳐 학자의 길을 걸어왔던 김 전 교수는 순식간에 살인미수혐의자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됐다.
김 전 교수의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여론의 대체적인 반응. 그러나 학교재단 측과 사법부 역시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면서 김 전 교수의 임용 거부 및 법원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과연 김 전 교수와 학교재단 사이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으며 법원은 두 번에 걸친 소송에서 양측의 엇갈린 주장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린 것일까. 김 전 교수와 학교재단 측인 성균관대와의 교수 지위 확인 소송 1심과 2심 판결문을 통해 전말을 들여다봤다.
김 전 교수와 학교재단 측이 대립한 것은 지난 95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학과 조교수로 성균관대 본고사 수학 과목 채점 위원으로 나선 김 전 교수가 채점 도중 수학Ⅱ 7번 문항의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문제 삼은 것이 발단이었다.
김 전 교수는 수험생 전체에게 15점 만점 혹은 0점 처리를 해야 한다고 했고 반면 문항을 출제한 교수와 학교 측은 모범답안을 일부 수정해 부분 점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양측 사이에서 벌어진 문항 오류 인정 논쟁은 명쾌하게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파문이 커진 것은 95년도 부교수 승진대상자였던 김 전 교수가 문항 논쟁이 있은 후 승진 임용 심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서다. 1심 판결문에서는 “원고(김명호 전 교수)가 재임용 기간 중인 95년 4월과 10월 부교수 승진 임용을 신청했으나 피고(성균관대) 산하 연구실적 심사위원회는 원고의 연구 실적이 승진 평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하고, 이에 원고를 승진 임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승진 임용 대상에서 제외된 김 전 교수는 그해 10월 18일 법원에 부교수 지위 확인 소송 및 임금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다.
검찰 출신으로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초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창국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이석태 변호사 등이 김 전 교수의 변호를 맡았다.
하지만 이듬해 7월 5일 법원은 성대 측의 손을 들어줬고, 뒤이은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심 청구 모두 기각 당했다. 게다가 1심 소송이 진행 중이던 96년 3월 1일에는 성대 측으로부터 조교수 재임용 거부 결정까지 내려졌다.
이에 김 전 교수는 96년 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는 지난 2005년 3월 10여 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당시 김 전 교수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공무원법’에 따르면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법원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는 아예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자력으로 ‘재임용 거부 행위를 취소하고 성균관대 교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약 6개월간 재판이 진행됐다.
이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소송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23부는 사건을 ▲본안 전 항변 ▲재임용 거부 결정 취소 청구 ▲교수 지위 확인 청구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양측 주장의 사실 관계를 심리하고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 성대 측이 본안 심리전에 “민사 소송을 통해 지위 확인을 구하는 원고의 소송은 부적합하다”고 항변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립학교 교원 임용 계약의 법적 성질은 사법상의 고용 계약이므로 학교 법인을 상대로 재임용 거부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민사소송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것. 일단 김 전 교수의 소송 제기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재판부가 확인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임용 거부 결정 취소 청구 및 교수 지위 확인 청구 등 본안에 대해서는 김 전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 절반의 양을 할애해 김 전 교수가 성균관대 교원 지위를 유지하는지와 별론으로 취급한 재임용 거부 결정 무효 여부에 대한 양측 주장의 사실 관계 판단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재판부는 교원 지위 유지 여부에 대해 “재임용을 새로운 고용 계약 체결의 관점에서 볼 때 기간을 정하여 임용된 사립대학 교원이 재임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을 들어 (학교 측이) 내린 재임용 거부 결정을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이 점을 근거로 임용 기간이 만료된 당해 김 전 교수가 여전히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지위를 유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임용 거부 결정 무효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김 전 교수의 주장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위법 여부를 따졌다.
김 전 교수는 소장을 통해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가 “사립학교 교원 기간 임용제를 규정한 구 사립학교법 규정에는 임용 기간이 만료된 교원을 재임용하는지 여부 및 임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기준이나 요건, 사유의 통지 절차 등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헌법불합치 결정’(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내린 사례를 첫 번째 근거로 들었다.
김 전 교수는 이 같은 관계 법령 결정 취지에 따라 이후 지난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됐음에도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임용 심사 절차를 학교 측이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개정 법률이 소급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전 교수의 주장에 재판부는 학교 재단 측이 재임용 거부 결정을 하면서 원고에게 사전 통지 절차 및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개정 사립학교법 부칙에는 개정 전 기간제로 임용돼 재직 중인 교원에 대해서만 개정 법률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교수는 “재임용 거부 결정 과정에서 학교 교원 인사 규정대로 연구 실적 심사위원을 선정하지도 않았고 또한 제출 논문에 대한 구체적 심사 결과 및 대학원장, 대학장의 의견서가 작성, 제출된 바도 없다”는 점도 또 하나의 근거로 내세웠다. 김 전 교수는 이 점을 언급하면서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 결정이 본고사 입시 문제 오류를 지적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확장했다.
김 전 교수는 특히 재임용 심사를 위해 제출한 논문 3편이 부적격 판정을 받은 부분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김 전 교수는 “논문 모두 과학기술논문색인(SCI)에 가입된 미국 ‘수리물리’지와 ‘현대물리학’지에 실린 우수한 논문임에도 재임용 심사 과정에서 본인의 연구실적을 0%로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교수로서의 자질, 강의 및 학생 지도 능력과 실적 등 16개 부문이 최하점인 D와 E로 평가된 부분에 대해서도 “95년 12월12일 정직 3월 처분(96년 3월 견책 처분으로 완화 변경)을 내린 학교 교원징계위원회의 회의 자료가 평정의 근거가 됐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제출한 논문 3편에 대해 학교 측이 단순 부적격 판정을 내려 연구 실적이 0%로 반영됐고, 연구 실적 심사위원회의 구체적인 심사 결과와 대학원장, 대학장의 의견서가 작성·제출된 바도 없다는 김 전 교수의 주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논문 심사 결과와 대학장 등의 의견서가 작성돼 제출된 바 없고 제출 논문이 실제 학교가 정한 재임용 요건 연구실적을 200% 충족함에도 논문을 모두 부적격 평가한 것은 인사 관리 규정에 위배된다”고 실제 판결문에 적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규정 자체는 재임용 여부를 심사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한 것에 불과하므로 재임용 거부 결정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학칙에 정해진 성적 평가 방식과는 다르게 성적을 부과하고, 이로 인해 김 전 교수 강의에 대한 수강 기피 현상 등이 일어난 점,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김 전 교수에 대한 징계심의위원회가 열렸다는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점을 들면서 “본고사 입시 문제를 지적한 데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 거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지난 93년 2학기 위상수학Ⅱ 과목을 맡으면서 “수강 신청만 해 놓으면 B학점은 보장할 테니 많이 수강 신청하라”고 학생들에 말한 뒤 수강생 3명에게 A+학점 및 나머지 모든 수강생에게 B+학점을 부과하고 ▲95년에 수차례에 걸쳐 성적기록표의 성적을 정정하면서 수강 과반수 이상인 29명에게 낙제 점수인 F를 주는 등 일부 과목에서 자의적인 성적 평가를 내렸던 사례도 판결문에 적시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05년 9월 21일 “대학 교원으로서 학문 연구의 실적 못지않게 중요하게 평가되는 학생 교육, 학생 지도 면에서 학교의 학칙을 위반, 원고로부터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원고의 인격과 자질을 의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김 전 교수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김 전 교수는 그해 10월 18일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재임용 거부 결정을 주도적으로 이끈 증인 및 학생들의 진술이 피고 측에 유리하게 인정된 것으로 판결문에 적고 있다.
특히 김 전 교수의 ‘자의적인 성적 판단’ 부분과 관련,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93년 2학기 수학Ⅱ 과목 성적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출석부에 기재한 성적과 학교 당국에 제출한 성적을 다르게 매긴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 증거 자료를 판결문 첨부 자료에 덧붙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지난 1월 12일 판결문을 통해 “원고는 ‘학생의 강의, 연구 및 생활 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유 관계 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 유지’라는 기준에는 현저하게 미달, 재임용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원고에 대한 재임용 거부 결정을 피고가 내린 것이다. 재임용 거부 결정이 유효한 이상 원고가 학교 교수 지위에 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며 김 전 교수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사 습격 사건으로 구속된 김 전 교수는 결국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옥중에서나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