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변호사 맞습니까? 도대체 이 정도밖에 써 올 수 없는 겁니까?”
앞에 서 있던 두 변호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정에서 판사는 왕이었다. 옳건 그르건 그에게 도전하는 듯한 말은 용납되지 않았다. 법대 아래의 두 명의 변호사를 담당 재판장은 무참할 정도로 사람들 앞에서 능멸했었다.
그 얼마 후 그가 개업을 했다. 형사법정의 변호사석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재판장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재판장님의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 피고인 신문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2분도 걸리지 않고 변호인석에서 내려와 법정 밖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가 왜 사건을 맡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재판장을 할 때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법원장이라도 세월이 가면 모두 변호사를 한다. 왕이 왕 노릇을 하는 걸 보면 물러날 때가 됐다는 느낌을 가지곤 한다. 옆에서 장영두의 형 장영목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쨌든 재판장이 공개적으로 탐탁지 않다고 했으니 담당 변호사로서 이 사건에서 손을 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장영목에게 물었다.
“오늘 본 변호사의 모습은 어떤 거였습니까?”
장영목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재판장에게 미운털이 가득 박히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서로 원한이라도 있었습니까? 군대 있을 때 이웃 부대에서 근무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자랑하시더니 그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그 사람을 괴롭히신 일이 있을 거예요.”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난 그에게 어떤 감정이나 불편을 줄 위치도 아니었다.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가질 만한 일은 없어요. 제 생각은 재판장은 저를 살인범 장영두로 보고 그런 것 같아요.”
내가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나도 그런 편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파렴치범을 돈 몇 푼 받았다고 이리저리 비호하고 거짓말을 해 주는 변호사를 보면 증오가 끓을 때가 있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를 당한 것 같았다. 장영목이 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말했다.
“일심에서도 역시 그랬습니다. 변호사가 제 동생에 대해 동정적인 신문을 하려고 하니까 재판장이 화를 벌컥 내면서 못하게 했어요. 변호사가 쩔쩔매면서 제대로 묻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 재판받는 제 동생이나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면 형량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줄 알았죠. 그래서 하지도 않은 걸 했다고 자백하고 엎드려뻗쳤죠. 그런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웬걸요? 징역 15년입니다. 꼭 판사한테 사기당한 기분이에요.”
그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본론을 얘기했다.
“변호사를 바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왜요?”
장영목의 표정에서 저항의 눈빛이 느껴졌다.
“저는 속칭 이미 맛이 간 변호사죠. 도움을 얻으려고 변호사인 저를 돈 주고 선임했는데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계속 변호를 하면 안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 변호사를 바꾸라는 겁니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럼 누구를 변호사로 해야 합니까?”
“적어도 재판장이 공개적으로 저한테처럼 하지 않는 변호사가 필요하겠죠. 고교동창이나 아주 단짝인 친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나는 받은 돈을 돌려줄 마음을 먹고 있었다. 현실을 정직하게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장영목이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판사한테 무릎 꿇고 빌어도 뭉개질 거면 차라리 당당하게 맞설 겁니다.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요.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지 모르는 동생의 마지막 말조차 막는 저런 판사들에게 왜 비굴하겠어요? 당당하게 맞서 주십시오. 절대 변호사 안 바꿀 겁니다.”
양 같던 그의 눈에서 퍼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추정하는 게 법의 원칙이었다. 판결문에서 인정하는 범죄 사실은 판사들이 심리 결과 내린 신중한 결론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20여 년간 법조인으로 생활해 오면서 검사의 공소사실을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판결문에서 그대로 베껴오는 걸 봐왔다. 법원의 오랜 관행이었다. 재판을 받아본 리영희 교수가 검사의 생각과 판사의 생각이 그렇게 똑같으냐고 글에서 쓴 걸 읽었었다. 재판 자체도 수사기록을 잘 읽으면 최선을 다한 편에 들었다. 그래서 요즈음 공판중심주의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 원칙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면이 많았다. 공판중심주의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는 제각기 맡은 배역이 있다. 검사와 변호사가 변증법적으로 자기 역할을 다 해야 판사도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 교도소로 장영두를 만나러 갔다. 누런 홑겹 재소자복을 입고 손에 노트를 든 장영두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어제 재판 때 받았던 소감을 말 해봐요.”
“첫 심리라 재판장이 기록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변호사님이 너무 앞서 나가니까 당황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일단 변호사를 기를 죽이고 보자고 그러는 것 같던데요.”
“재판장한테 내가 묵사발이 되는 거 봤죠?”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봤죠. 재판장이 변호사님보고 탐탁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진짜 그가 청부살인을 하고 자금이 있다면 이 시점에 변호사인 나를 갈아치워야 했다.
“제가 살인범이면 변호사도 같이 십자가를 지고 욕을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순간 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반성이 들었다. 그가 계속했다.
“참 랭가의 국선변호인도 불쌍한 것 같아요. 중요한 게 많은데도 한두 가지 묻다가 재판장이 입을 막아버렸잖아요? 랭가도 자기 나름대로 할 말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법정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13년이란 세월을 썩어야 할 거 아닙니까? 화가 나서 그런지 랭가는 교도소에서도 같은 방에 있던 몽골인과 싸워서 지금 징벌방에 가 있어요. 여기 있는 교도소 사람들이 랭가 성격을 다 알아요.”
장영두는 랭가의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영감이 죽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했다. 그 성격을 짧고 제한된 법정에서 선입견을 가진 재판장에게 알리고 증명하는 건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랭가는 왜 아들이 시켜서 청부살인을 한 거라고 그렇게 우기죠? 자기한테도 아주 불리한 진술인데 말이야.”
내가 물었다.
“저도 그걸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니까요.”
그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계속했다.
“랭가가 검사에게 했다는 진술을, 저도 이제야 감옥 안에서 변호사님이 보내주신 그 조서를 읽었거든요. 할아버지나 그 아들에 대한 얘기를 랭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는지 신기해요. 저도 할아버지의 큰아들이 30억 빚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랭가가 어떻게 그걸 알고 진술했을까요? 나는 말이죠, 그 영감 큰아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은행 지점장이라고 해서 잘사는 걸로 알았거든요. 나도 모르는 걸 랭가가 다 아는 것처럼 진술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검사가 혹시 그런 걸 알려주면서 유도한 건 아닐까요? 할아버지 땅의 가격이 56억 원이 된다는 것도 나나 랭가가 어떻게 정확히 알겠어요? 검사를 통해 알게 된 거죠. 랭가는 내가 자기를 체포하게 했다고 해서 앙심을 먹고 있고 그런 상태에서 청부살인이라는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감방 안에서 옆에 같이 징역 사는 사람들한테 얘기했더니 혹시 랭가가 아들한테서 직접 살인청부를 받은 게 아니냐고 하기도 하구요.”
이 사건은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많았다. 살인자들의 내면을 알아야 정확한 동기가 밝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에서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수사기록을 읽고 거기서 얻은 심증대로 선고해 버리면 된다는 결론인 것 같았다.
다음날 <조선일보> 1면에 특이한 기사가 났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편법증여 의혹사건인 ‘에버랜드 재판장 또 교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대법원이 담당 재판장을 전격 교체했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담당 재판장이 삼성 측에 유리한 입장을 보여 왔다고 했다. <한겨레>에서도 같은 기사를 내놓고 있었다. <한겨레>는 담당 재판장이 “일심 판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적고 있었다. 그 재판장은 바로 살인범으로 기소된 장영두의 운명을 결정하는 판사이기도 했다. 판사가 바뀌어 모든 걸 새로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영두의 재판장이었던 사람은 자기 소신이 뚜렷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의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을 순시하는 자리에서 “변호사는 돈을 받고 거짓말을 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에 호응하듯 장영두의 재판장은 법원 내부의 인터넷에 글을 올렸었다. 같이 사법연수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변호사가 판사와 법조 삼륜을 이루는 동지일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후배판사들에게 변호사는 범죄인의 대리인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법원 내부의 인터넷에 올린 글이 또 신문에 보도됐다. 나는 비로소 그의 정신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엄하고 공정한 판사였다. 그에게 나는 살인범 장영두의 대리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관념 속에 있는 돈 받고 거짓말을 해 주는 악덕 변호사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정의와 진실 추구는 특정 직업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나는 장영두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를 살피고 있었다. 발로 현장을 두루 뛰어 다녔다. 욕도 먹고 천대도 받으면서 진실을 알려고 다녔다. 정의를 독점한다는 우월의식은 오히려 사회적 흉기가 될 수도 있었다. 바뀐 재판장과도 다시 일전을 불사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