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래도 국가 기관이다 보니 공기업들에 대한 경영 정보의 접근은 용이치가 않다. 공기업들이 언론 보도 자료용으로 공개하는 자료로는 인력 및 예산 운영에서 수익 및 이익금 투자, 부채 관리, 목표 달성 과정을 세밀하게 파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기획예산처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에서 제공하는 공공기관 이사회 의사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기업들의 감추고픈 ‘비밀’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이사회 의사록을 통해 드러난 각 공기업들의 경영상 문제점과 도덕적 해이 현상을 들춰봤다.
은행권 대출이 막힌 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자가 높은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공무원들은 은행권 대출이 거절되더라도 퇴직금을 담보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은행 금리와 은행권 기존 대출 금리의 평균 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2006년 12월 이사회에서는 아예 개인채무로 파산 단계에 이른 공무원의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출 원금과 이자에 대한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는 개정안까지 가결됐다.
11월 이사회에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무이자로 부담하는 대여장학금 대부금 138억 원을 추가하는 안을 논의하고 가결시켰다. 당초 반영한 대부금은 5486억 원. 그러나 시중금리 상승, 대부 건수 증가 등을 이유로 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12월 이사회 의사록에서는 과거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직원들이 기밀비라는 항목으로도 돈을 지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2000년 전까지 증빙 서류 없이 돈을 지출한 경우에도 기밀비란 항목으로 접대비손금한도의 10%를 비용으로 인정한 것. 더구나 기밀비를 내부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6년이 지난 후인 12월 이사회에서야 기밀비지급 규정 폐지안이 가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 1년에 3 명씩 해외 연수를 보내는데 1인당 교육비와 생활비로 무려 1억 원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월 20일 정기이사회에서는 지원 액수가 크다는 전제하에 연수생들의 연수 대학 수준, 선발 요건 등에 관한 이사들의 집중 추궁이 이어졌다.
11월 임시이사회에서는 ‘자녀를 입양하면 7일, 성희롱을 당하면 5일 휴가를 준다’는 안을 포함한 공단 인사 규정안에 대해 큰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김 아무개 이사는 “목적 휴가 문제를 (그냥) 통과하면 퇴장하겠다. 이는 민간 기업에서는 기자회견감”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휴가 문제는 다음 임시 이사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12월 이사회에서는 홍보실 예산이 이례적으로 82억 원에서 118억 원으로 42%나 증가한 부분에 대해 일부 이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소 등에 대한 출입자 통제에 안정을 기해야 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지난해 9월 27일 이사회 회의에서 일부 이사들이 한국수력원자력이 2005년 출입자 검색 기록을 누락해 적발된 사실을 지적했다.
한국마사회는 정년 퇴임 연령이 60세라는 내부 규정이 있음에도 마사회 직원이 환갑에 이르면 경조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이 시행돼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1월 이사회에서 나아무개 이사가 이 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의사록에 나타난다.
또한 98년 YTN에 166억 원에 달하는 주식을 투자했음에도 그 이후 YTN이 적자라는 이유로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사실을 회사 관계자가 공개하기도 했다.
여권을 제작하는 한국조폐공사 이사회에서는 지난해 비난 여론이 높았던 ‘여권 대란’은 실제 작업 능력이 50%도 안 되는 외교통상부 기계 때문이라는 관계자의 실토가 있었다.
조폐공사 사업처장은 이사회에 참석, ‘여권 대란’의 이유를 묻는 이사들의 질문에 “외교통상부에서 발급하는 장비는 도판사 기계인데 원래 1대의 시간당 발급능력이 40권이지만 실제 작업능력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시간당 20권밖에 발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7월28일 이사회 의사록에서는 당시 생산 중(7월 7일부터 100만 장이 생산됐다고 의사록에 기재)인 1만 원 신권의 불량률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대화가 이사들과 회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고 간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철도공사는 본인 및 배우자의 조부모가 사망하면 기본급의 100%를 지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의 기본급이 평균 200만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 지난해 4월 노·사 합의 전까지는 외조부모가 사망할 때도 돈을 지급했다. 결국 2개월 뒤인 6월 이사회에서 이사들이 “조부모 사망까지 위로금을 주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해 9월 6일 있은 이사회에서는 구 철도청 직원이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서류를 위조, 수원-천안 간 복복선 전철 사업 공사비 중 일부인 29억 원을 횡령했음에도 버젓이 건교부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집중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최 아무개 이사는 “철도청 시절에는 용역비 내역이 감시의 대상은 아니었다”고 설명.
또한 순직자 가족의 특채 입사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회사 관계자의 답변을 통해 철도공사 뿐만 아니라 다른 공기업들도 순직자 가족을 일부 특별 채용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에서 한 이사가 “충분한 위로금이나 보조금으로 끝내야지 이런 식은 적절치가 않다”고 하자 인사관리팀장은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한전 등 다수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이사록을 통해 확인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