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택 전 중정국장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배후는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고 밝혔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진실화해위의 부각에 진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사’ 논란에서 ‘가해자’ 편에 서게 된 지난 정권 인사들이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의 중앙정보부(중정) 수사 사건들이 논란의 중심에 등장하면서 당시 중정에 몸담았던 인사들 중 일부는 ‘좌불안석’, 일부는 ‘분기탱천’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일요신문>은 최근 그리고 향후 논란을 불러일으킬 주요 과거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주요 인물인 이용택 전 중정 6국장(77)을 지난 1일 서울 노고산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전 국장은 “지금은 모두가 한쪽 말만 듣고 다른 한쪽 말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다가 어렵사리 기자 앞에 나섰다. 그는 진실화해위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시종일관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 전 국장은 갑종 7기로 장교로 임관했고, 군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5·16쿠데타 이후 중정 창설 멤버로 들어갔다. 그는 1976년 중정 6국장을 끝으로 권부에서 물러나기까지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문세광 저격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겪거나 가까이서 지켜봤다. 5공 때에는 고향인 경북 달성에서 무소속으로 11·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97년에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특보를 맡기도 했다.
―얼마 전에 인혁당 사건이 법원에 의해 무죄로 선고됐고 검찰의 항고 포기로 최종 확정됐는데 인혁당 사건 수사 책임자로서 소회가 있다면.
▲어쨌든 희생된 여덟 분에 대해서는 마음 아프고 그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맞춰서 당시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모두 반민주 인사로 매도당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공산체제하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절대 과제였고,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무리도 뒤따랐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것인데 ‘과’가 전체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인혁당 재심 결과에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서 8명에 대해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마자 이례적으로 18시간도 안 돼 관례를 벗어나 무리하게 사형을 집행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엉터리고 조작이고 날조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인혁당 사건(1차 인혁당 사건)은 원래 64년에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에는 검찰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아닌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해서 주요 혐의자가 대부분 징역 2~3년 정도 살고 풀려났다. 그런데 10년 후인 74년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연루된 주요 인사들이 바로 도예종 여정남 등 1차 인혁당 사건의 주요 멤버들이었다. 이게 바로 2차 인혁당 사건인데 수사 과정에서 많은 증거 자료들이 확보됐다. 그래서 당연히 국가보안법에 의해 간첩으로 구속된 것인데 지금에 와서 마치 중정에 의해 완전 날조된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진실화해위에 직접 이 같은 내용을 진술한 적이 있나.
▲작년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국정원 진실위 관계자들에게 네 시간에 걸쳐서 다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 말은 아예 귀담아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사형 선고는 너무 무리한 판결 아닌가.
▲ 김대중 전 대통령. | ||
―당시 진술이 엄청난 고문 때문이라는 비난이 많다.
▲내가 아는 한 중정에서는 고문이 없었다. 74년 당시에도 하도 고문당했다고 해서 법원에 내가 증인으로 나간 적도 있다. 법적으로 정보기관 소속 요원은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해명하겠다고 자진해서 나갔다.
―하지만 희생자는 물론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의 증언을 통해 고문이 인정되고 있는데.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인혁당 사건 당시에는 중정부장이 검찰 출신의 신직수 씨여서 간부들에게 매일같이 ‘따귀 한 대라도 때렸다는 말 들리면 국장부터 당장 모가지’라고 주지시키곤 했다. 당연히 나도 매일 조사실을 순찰하고 했는데….
―김대중 납치 사건은 이 전 국장이 당시 직접 조사한 것으로 아는데.
▲당시 박 대통령의 은밀한 지시를 받고 이후락 중정부장도 모르게 내가 조사를 한 것은 맞다. 직접 납치를 담당한 자들을 모두 조사했다.
―국민의 관심은 그 납치극의 명령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아닌가.
▲그분은 아니다. 사건 직후 박 대통령이 나만 은밀하게 불러 ‘누가 했는지, 왜 했는지를 조사해보라’고 직접 지시했다. 그분이 설사 개인적으로 날 신임했다 하더라도 내 위에 부장 말고도 차장, 차장보 등이 줄줄이 있는데 날 비밀리에 직접 불러서 은밀히 조사 지시를 했던 걸 보면 어떤 예감이 좀 있었나 보다. 군 보안사 등을 통해 귀띔을 받았던지.
그래서 내가 조사한 이후 박 대통령을 독대해 ‘김대중이 외국에서 반국가행위를 하니까 부득이하게 납치해서 잡아왔다’고 보고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그걸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어떡하나. ‘아무개’가 아주 나를 죽이려고 망가뜨리려고 작심을 했구만’ 하고 화를 내시더라.
―그 아무개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웃음) 기자도 다 알고 있지 않나. 안 그래도 그래서 얼마 안 있다가 그분이 중정부장을 그만두셨으니까 대충 그렇게 짐작하면 되지 않겠나. 조사 과정에서 ‘아무개’에게 내 집, 내 전화, 자동차 전화까지 모두 도청당하고 나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직접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후락 전 중정부장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형욱 실종 사건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는데.
▲김 부장은 어쨌든 중정부장이라는 요직을 6년이나 지낸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다. 나도 그 점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중정에서 옷을 벗게 되면 많은 혜택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니까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부장이면 오죽하겠는가. 그건 공직자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데 김 부장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김 부장이 물러난 후 개인 호신용으로 조그마한 권총 한 자루를 갖고 나갔는데 중정에서 이를 반납하라고 한 것이다. 김 부장이 ‘내가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잡아 넣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니 호신용으로 꼭 필요하다’며 갖고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이후에 재차 내놓으라고 다그치니 그만 제 성질에 못 이겨 권총을 땅바닥에 집어던져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이 박 대통령의 지시라고 생각한 거다. 그래서 이후 박 대통령 욕을 밖에서 많이 하고 다녔다. 그뿐 아니라 돈을 몰래 갖고 나갔다가 들켜서 망신도 당하고 카지노에 빠져서… 아무튼 상당히 곤란한 행동을 많이 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의 노여움을 사서 살해된 것 아닌가. 김대중 납치 사건도 그렇고 김형욱 실종 사건도 그렇고, 대통령 지시나 허락 없이 중정부장이 처리했다고 믿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은데.
▲당연한 의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을 오래 모셨지만 그분은 절대 직접적으로 ‘납치해와’ ‘암살해’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다. 물론 화가 극에 달하면 ‘김대중이 그놈이’라거나 ‘김형욱 이놈’ 하고 욕을 하기는 한다. 그리고 당시는 중정부장의 권한이 엄청났다. 국무총리 정도는 우습게 알았다. 권력이 컸던 만큼 과잉 충성을 많이 했다. 김형욱, 이후락은 물론이고 김재규는 더더군다나 그렇고. 당시 중정부장의 힘은 대통령 다음이다. 본인이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