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주먹들이나 현재 조폭에 몸담고 있는 ‘선배’들도 신세대 조폭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른다. “요즘 애들은 통제 불능이다”, “선배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던 시대는 갔다”, “이 세계에도 세대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라는 말들이 쏟아진다. 의리가 아닌 돈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세대 조폭에 대해 알아봤다.
‘신세대 조폭’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대개 연령으로는 1980년대생으로 20대 초반이 중심이고, 10대 후반과 20대 중후반까지를 아우른다. 두목-부두목-행동대장-행동대원으로 이뤄지는 전통적 조직 체계 속에서 이들은 행동대원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더 이상 조직의 말단 조직원으로서 그저 ‘형님’들의 지시만 받고 움직이는 ‘막내’가 아니다.
80년대는 이른바 ‘조폭의 르네상스기’로 불리는 시기. 이 무렵에 출생한 젊은이들이 지금 신세대 조폭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조폭 수사 베테랑인 송파경찰서의 안흥진 경위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암흑가를 주름잡던 유명 조폭 이름이 아직도 건재한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유명 조폭이) ‘전설’로 다가온다”며 “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영화 방송 등 각종 매스컴에서 조폭을 미화한 소위 ‘조폭 신드롬’이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들이 성인으로 성장해서 신세대 조폭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세대 조폭의 특징은 지역마다 다소 차이를 나타낸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조폭수사 담당자는 “조폭도 이제 의리가 아닌 돈으로 움직인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주 약다. 돈이 있으면 ‘형님’이고,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과거 유명 조폭이라고 해서 무조건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자기들의 개성이 강해 집단생활이나 행동강령 등의 예속적 규범을 아주 싫어한다”고 밝혔다.
반면 부산지방경찰청 강력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벌어진 ‘83연합파’ 폭력 사태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여전히 전통적인 유명 조폭 세력에 대한 추종 심리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한 마디 명령에 일거에 현장에 달려나와 행동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83연합파란 부산 최대의 폭력조직인 칠성파의 추종 세력으로 조직원 대부분이 83년생으로 이뤄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7일 새벽 부산 부전동에서 ‘이십세기파’의 조직원을 집단 린치했다. 이십세기파는 ‘유태파’ ‘영도파’ 등과 함께 ‘반칠성파’ 세력을 형성, 지난해 1월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칠성파에게 집단 폭행을 가한 바 있다. 부산경찰청은 이번 83연합파의 폭력 사태를 영락공원 폭행에 대한 칠성파 추종세력의 보복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15일 아침 발생한 수원의 ‘남문파’와 ‘역전파’ 조직원 간의 집단 충돌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남문파의 조직원 신 아무개 씨(23) 등 10여 명이 역전파 조직원 박 아무개 씨(22)의 숙소를 급습, 박 씨가 숨지고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수원 남부경찰서 강력팀 관계자는 “수원에는 전통의 최대 폭력조직인 남문파에 최근 역전파가 강하게 도전하는 양상을 나타내면서 양 계파 조직원 간의 다툼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양 조직 간의 정면충돌이라기보다는 서로 친분이 있는 20대 초반 또래의 신세대 조폭끼리 말다툼 과정에서 벌인 우발적 충돌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이와 같이 신세대 조폭의 돌발적 행동은 얼마 전 춘천과 서귀포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프닝에서도 잘 드러난다.
13일 춘천경찰서는 춘천 지역 조폭 ‘생활파’의 조직원인 장 아무개 씨(24)와 심 아무개 씨(22)를 폭력 혐의로 검거했다. 춘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장 씨 등은 평소 자신들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모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김 아무개 씨(24)를 흉기 등을 사용, 집단 폭행해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혔다”면서 “이들은 단지 조직의 재건을 알려 겁을 주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일반 주점을 범행 장소로 선택하는 등 최근 물불 안 가리는 20대 신흥 조폭들의 전형적 행태를 보여준다”라고 전했다.
서귀포에서는 지난 13일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 중인 오 아무개 씨(21)가 자신의 부대장에 대한 불만으로 그의 차량을 파손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서귀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오 씨는 서귀포 최대 폭력조직인 ‘땅벌파’의 조직원으로 밝혀졌는데 중대장의 지시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신세대 조폭의 ‘돌출 문화’가 군에까지 침투한 셈이다. 오 씨는 곧바로 군 헌병대에 이첩됐다.
얼마 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에서 발표한 ‘조직폭력배의 소득원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현재 수감 중인 29명의 조폭 조직원들에 대한 심층적인 면접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신세대 조폭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영남지역 한 조직의 부두목인 30대의 A 씨는 최근 신세대 조폭들의 세태에 대해 “어린 동생들은 사상과 생각이 다르다. 돈에 눈을 떠서 돈을 빨리 벌려고 한다. 조직에서도 세대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선배가 시키면 무조건 해야 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은 의리나 정보다는 돈에 몰린다. 내 위에 선배가 있더라도 돈이 있는 선배에게 가게 되며, 무슨 일을 시켜도 수고했다고 돈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지금은 과거의 주먹구구식 관리가 통하지 않으며 체계적으로 변화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폭력조직이 인간관계보다는 돈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식으로 변화된 형태가 신세대 조폭을 양산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지역 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원인 30대 B 씨는 “조직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조직 내에서도) 서로 잘 모른다”고 밝혔다.
형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29명의 면접 대상자 가운데 20대는 모두 13명이며 이들은 최근 2003년 이후 수감된 이른바 신세대 조폭들이었다. 옥중에서지만 그들이 생생히 전하는 목소리는 신세대 조폭들의 변화된 세태를 잘 보여준다.
영남에서 활동 중인 모 조직의 일원으로 있다가 폭력행위로 수감 중인 C 씨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20대 후반 정도가 되면 남 밑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정도 되면 각자 개인 사업이 있다. 20대 초반에는 술집 상무나 나이트 지배인으로 취직을 하여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20대 후반이 넘어가면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조직의 경우, 과거처럼 엄격한 상명하복식의 위계질서는 상당부분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20대의 신세대조폭들은 이런 문화에 대한 단호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영남 지역 모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폭력행위등처벌법으로 검거된 D 씨는 “동생들이 무엇 하나 잘못했다고 (선배라고 해서) 함부로 때리지 못한다. 때릴 경우 검찰에 나가 불어버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형들의 말이 잘 안 먹히고 용돈 주고 시키면 따라오기는 하지만 돈이 없으면 형님 대우를 못 받는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신세대 조폭의 등장으로 조폭의 운용 형태도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C 씨는 “예전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합숙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보통 2~3명씩 자기와 잘 맞는 사람들끼리 산다”고 밝혔고, E 씨는 “내가 17~18세 때만 해도 형님들 빨래나 설거지 등을 도맡았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없다”고 말했다.
조폭들의 행태도 많이 변했다. 서울 지역 모 조폭의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E 씨는 “조직 간 전쟁이 벌어지면 모두 장기간 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조직 간 싸움은 피하려 한다. 오히려 조직 간 연합을 하려 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조직 간 충돌의 대부분은 조직원들 사이의 감정적 충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