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재성 교수 | ||
이런 가운데 원주 한라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남재성 교수(31)가 최근 발표한 동국대 대학원 경찰행정학과 박사학위 논문 ‘강간범죄의 피해자화 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성폭행 범죄의 요인과 경향, 특이점 등을 분석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논문은 국내 6개 교도소에 성폭행 범죄로 수감되어 있는 272명의 재소자(모두 남성)를 상대로 실시한 심층 면접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다.
남 교수의 이번 논문은 ‘성폭행 범죄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상대로 행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행은 계획적인 경우보다 우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행 범죄자(가해자)의 53.5%는 일시적 감정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대답했으며 35%는 술과 약물 등에 의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하지만 남 교수는 “가해자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사항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무계획적인 성폭행일지라도 가해자가 범행 전에 몇몇 ‘여건’들을 감안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 성폭행 피해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성폭행 가해자는 표적을 선택할 때 범죄와의 근접성, 범죄에의 노출, 표적의 매력성, 보호능력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가해자가 성폭행 대상을 선택할 때 ‘범행을 하기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얼마나 범행을 쉽게 저지를 수 있는가‘ ‘범행 후 피해자가 신고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등을 먼저 염두에 뒀다는 것. “성폭행 범죄자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아무 장소에서 아무 때나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설명이다.
남 교수의 연구는 성폭행에 대한 기존의 몇몇 통념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일부는 전혀 의외의 결과를 나보여주기도 했다. 성폭행은 범죄가 다발하는 유흥가나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주로 발생할 거라는 통념과는 달리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폭행이 주거밀집지역에서 발생했으며 상당수가 피해자의 집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가 1년 이상 알고 지낸 경우도 매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남 교수는 이에 대해 성폭행 가해자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가해자 자체의 특수한 상황보다는 피해자와의 안면 등으로 인해 신고 가능성이 낮거나 발각될 가능성이 적을 경우에 범행을 시도하기 때문일 거라고 분석했다. 이 부분은 실제로 범행시각이 대부분 자정부터 새벽 4시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의 가해자가 범행 당시 CCTV가 설치된 장소와 경찰의 단속이 빈번한 곳을 피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남 교수의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성폭행과 피해자의 외적인 매력성(외모 몸매 옷차림 등을 포함)에 관한 ‘함수관계’다. 일반적으로 성폭행 범죄자는 성적인 매력을 분출하는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사결과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별로 예쁘지 않았다’ ‘매우 마음에 들지 않은 외모였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즉 피해자의 외적 매력에 이끌려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야한 옷차림과 진한 화장 등으로 남성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여성이 주로 성폭행 범죄의 타깃이 된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결과 성폭행 가해자들은 범행 현장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와 상대 여성이 호신장비를 갖추고 있는지를 감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가해자들 가운데 ‘현장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고 답한 경우가 73% 이상이었고 ‘피해자가 호신장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답한 경우도 82%에 달했다. 또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의 71.3%가 혼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남 교수는 “가해자 집단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성폭행은 가해자에게 빈번하게 노출되고, 범행으로 가해자에게 많은 이익이 제공되며, 범죄에 대한 방어가 부족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신고 가능성은 낮은 것 등 ‘표적으로서의 매력성’이 충족될 때 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의 여성이 가해자와 지인관계일 때, 자정부터 새벽 4시 사이에 가해자와 접촉했을 때, CCTV가 없는 장소나 가해자·피해자의 집에 단둘이 있을 때, 호신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을 때, 가해자와의 사적인 관계나 수치심 때문에 신고의사가 희박해 보일 때’ 성폭행 피해를 당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범죄에 노출되는 기회나 요인을 제거하고 스스로 보호능력을 갖추는 것이 성폭행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성폭행 가해자들 중에는 법적인 배우자를 갖고 있지 않은 31~40세의 이혼자로 월 200만 원 미만의 저소득 자영업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나 그들이 보편적 수준의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또 성범죄 전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성범죄의 재범률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남 교수는 “가해자의 대부분은 10대에 첫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조기에 불건전한 성경험을 하거나 잘못된 성적 속설에 빠지는 것을 차단시키는 사회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에 정립된 잘못된 성 개념이 남성들을 ‘여성은 강간당하고 싶은 환상을 갖고 있으며, 고상한 여성은 강간을 당하지 않는다’는 식의 위험한 논리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