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9단(왼쪽)과 이세돌 9단의 10번기 대국.
#1. 이세돌 9단이 8월 31일 해발 3650m의 티베트고원이 있는 중국 시짱(西藏)자치구의 수도 라싸(拉성)에서 열린 ‘이세돌-구리 10번기’의 제7국에서 흑을 들고 237수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이제 5승2패, 앞으로 1승이면 상금 8억 4000만 원을 차지한다. 나머지 세 판을 모두 지면 상금을 반분한다.
제7국은 단 한 수로 순식간에 승부가 뒤집어진 바둑이었다. 이 9단에게는 회심의 역전승, 구리 9단에게는 통한의 역전패. 구리 9단은 포석에서부터 앞서나갔고 종반 입구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집으로 여유가 있는 데다가 두터웠다. 그러나 구리 9단이 승리의 깃발을 꽂으려는 바로 그 순간 이 9단의 노림수 ‘한 방’이 작렬했다. 구리 9단의 대마가 졸지에 떨어졌다. 망연자실한 구리 9단. 이후 100수 가까이 지옥의 행군으로 버티고 버텼으나 반면 20집 차이 앞에서 돌을 거두었다.
<1도>가 드라마의 서곡이었다. 백1로 붙여 대마의 삶을 돌본다. 대마가 살면 백이 이기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어 보이는 국면이다. 이 9단은 백1을 외면하고 흑2, 우하에서 중앙으로 날아올랐다. 흑▲들을 살리려는 수 같았다. 구리 9단은 잠깐 하변을 쳐다보더니 우상귀 쪽으로 달려가 백3으로 젖힌다. 흑▲가 살아가든 말든 백3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흑4가 폭발한 것. 흑4의 ‘한 방’으로 백은 지리멸렬, 급전직하로 일패도지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백3은 의욕과잉이었고, 경솔이었다. 백A로든 어떤 식으로든 중앙을 보강해야 했고, 그랬으면 ‘아마도’ 백이 지는 일은 없었다는 것.
<2도>가 실전진행. 백은 1로 끊어 3-5로 잡았고, 흑은 2로 끊고 4-6으로 돌파했다. 백은 중앙에서 양분되었다. 백9까지 왼쪽 대마는 하변과 연결하고 오른쪽 대마는 자체로 살 수 있는 모습 같으니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양쪽 백 대마는 각각 치명적 약점이 숨겨져 있었다.
<3도> 흑1-3으로 뚫어 나가고 흑5로 급소 일침. 백6에는 흑7로 쌍립. 이 순간 백은 양곤마가 되면서 둘 중 하나는 무사할 수 없게 되었던 것.
<4도> 백1로 이어 일단 왼쪽 대마를 살리면? 중앙 백 대마에는 흑2로 키워 버리는 기막힌 수가 있었던 것. 백3이면? 흑4-6으로 돌려친다. 백7로 흑▲에 이을 때 흑8로 들이대면 백 대마가 살 길이 없단다.
“구리 9단은 그 출중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종종 큰 승부에서, 중요한 순간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 때문에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라는 묘한 소리도 듣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1도> 흑2 때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조금만 더 주의해 들여다보아야 했다…아니다…구리 9단을 탓하는 것보다는 흑2에서 4를 결행한 것, 흑4를 보면서 흑2로 은인자중한 이세돌 9단의 맹수 본능, 그 승부 감각을 칭찬할 수밖에 없다.” 검토실의 말이었다.
#2. 국내에서는 8월 27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제10기 물가정보배 8강전이 있었다. 안성준 5단 대 나현 4단.
<5도>는 안 5단과 나 4단의 바둑. 나 4단이 흑이다. 중반에 나 4단이 넉넉하게 우세해졌으나 이후 나 4단이 안전운행에 신경 쓰는 사이에 안 5단이 맹추격했다. 이제 둘 곳이 몇 군데 안 남았는데, 백1로 틀어막은 장면에서는 백이 오히려 1집반 정도, 최소 반집은 남을 듯하다는 것이 해설장의 진단이었다.
백1은 흑A로 먹여치는 수로부터 흑B로 젖히는 수, 또 흑C쪽을 젖히는 수 등이 조금 꺼림칙해 그를 방비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 4단의 아깝게 역전패하는구나 하는 순간이었고, 나 4단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지만.
나 4단은 <6도> 흑1-3으로 시간을 벌고는 흑5로 묘한 곳을 끊는다. 그랬다. 무심한 듯 ‘툭!’ 끊은 무심의 이 ‘한 방’이 넘어갈 뻔했던 바둑을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바로잡은 묘수였던 것. 백도 6으로 시간을 벌고 좌우간 8의 곳을 틀어막는다.
<7도> 흑1-3으로 먹여치고 모는 것은 흑의 권리. 백은 4로 몰든지, A에 잇든지 해야 한다. A에 이을 경우 나중에 공배가 채워지면 다시 B에 가일수해야 한다.
계속해서 흑5로 ▲에 따내고 백6으로 △ 자리에 되따낸다. 그러자 흑7-9, 4집을 만들었다. 이러고 종국하니 더도 덜도 아니고, 흑의 반집승이었다.
<6도> 흑5로 끊는 수순 없이 그냥 <7도> 흑1-3이면 백은 C에 붙여갈 것이다. 흑이 7-9를 먼저 차지하면 백은 흑1 자리에 이을 것이다. 이 차이가 두 집, 최소 한 집의 차이를 만들었던 것. <6도> 백8로 <8도> 백1로 이으면? 흑2로 이쪽에서 젖힌다. 백3으로 끊으면 흑4에서 6으로 여기를 넘어간다.
<6도> 흑5를 보고 해설장에서는 “나 4단은 끝내기가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기도 하지만, 과연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의 한 수를 찾아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