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했다. 검찰은 죽은 영감의 두 아들 중 한 사람을 살인교사자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증인으로 나온 둘째아들 하교식을 열심히 추궁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검사도 협조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공판검사는 하교식에게 “변호사가 살인교사범 취급을 하는데 아닌 게 확실하죠?”라고 했다. 노골적인 이간공작이었다. 그리고 둘째아들 하교식에게 확실하고 공개적인 면죄부를 쥐어 주었다. 그렇다면 검찰은 첫째아들을 범인으로 화석같이 믿고 있는 것일까.
“저, 변호사님!”
옆에 오던 장영목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방청석에 있으면서 봤습니다. 변호사님이 둘째아들을 신문하는 걸 그 가족이 들으면서 자기들끼리 변호사님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가는 걸 봤어요. 몸조심하셔야겠어요.”
그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운명이었다. 영화같이 관객의 입장에서 사람들은 보지 않았다. 자기 입장에서 상대편은 항상 원수 같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한번쯤 생각한 사람은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장영목이 덧붙였다.
“며칠 전 은행에서 연락이 왔는데 수사기관에서 제 계좌를 전부 열어봤답니다.”
그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렇겠죠. 지금 검찰은 형이 살인청부를 한 아들과 뒤에서 대신 거래를 한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계좌를 조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이미 검찰은 첫째아들을 심중에 찍어놓고 증거만 확보할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장영목이 계속했다.
“한 달 전에 아파트 경비원으로 나가는 아버지한테 휴대폰 하나를 바꾸어 드렸어요. 며칠 후 아버지가 있는 경비실로 형사가 와서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래요. 그리고는 아버지가 전화를 한 내역을 다 뽑아서 하나하나 확인해 가더라는 거예요. 이래도 됩니까?”
장영두의 가족이 언젠가는 돈을 받기 위해 뒤에 숨은 살인교사자인 아들과 접선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살인청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경솔한 단정은 오류를 가져오곤 했다. 나는 장영두의 법정 태도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말이죠, 동생 장영두는 법정에서 왜 펄쩍뛰거나 항의하지도 않고 눈만 질끈 감은 채 가만히 있죠? 그런 미지근한 태도를 보면 저도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같이 변호를 하는 국선변호사도 저보고 귓속말로 장영두의 저런 태도를 보면 청부살인 같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태도를 할까요?”
“저도 그래서 답답합니다. 면회를 가 봐도 미적지근해요. 앞으로 평생 감옥에서 썩을지도 모르는데 엉뚱한 소리만 하는 거예요. 그게 영두 성격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족만이 이해하는 장영두의 성격을 객관화시키기는 정말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말하려 해도 아예 나의 입조차 막아버린 게 전의 재판장이었다. 조서를 보면 죽은 영감의 큰아들은 아버지의 성격이 죽음을 자초했는지도 모른다고 전하고 있었다. 장영두는 방글라데시인 랭가의 과격한 성격이 우발적으로 영감을 살해했다고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원색적이고 특이한 성격들이 잠재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살해된 영감의 큰아들과 사적으로 따로 만나 자연스런 얘기를 듣고 싶었다. 법정에서의 연출된 진술은 믿을 수 없었다. 법정을 최종적으로 진실이 가려지는 장으로 사람들은 착각했다. 그러나 거짓진술이란 재료에 논리의 유희를 가미하면 판사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엉뚱한 판결이 나올 수가 있었다. 장영목에게 죽은 영감의 큰아들 집에 가보라고 했다. 장영목은 덜컥 겁을 먹고 안색마저 파리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의심 속에서 감시를 받는 중이었다. 그는 증거인멸의 혐의로 구속될 뻔했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나는 그에게 정면 돌파를 권하고 싶었다. 그에게 말했다.
“억울한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진실을 알아내는 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검사가 보내는 의혹의 눈길에 얼어붙어서 꼼짝달싹 못해야 맞습니까?”
내가 목사인 장영목에게 물었다. 어려서부터 성직자가 되려고 했다는 그였다. 성직자는 벽에 십자가를 걸고 우러러 보는 게 아니라 고통의 십자가를 스스로 등에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자기희생 없이 죽음의 계곡에 떨어진 동생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변호사 역시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일을 한다는 건 껍데기만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행동이었다.
이틀 후 밤 열시쯤이었다. 갑자기 장영목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간 흥분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변호사님! 주위에 물어물어 용인에 사는 죽은 영감님의 큰아들이 산다는 빌라에 왔습니다. 여기 사는 아주머니 말이 그 사람은 전 주인인데 어디로 이사 갔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직도 전 주인인 그 영감님 큰아들한테 우편물이 계속 오는데 찾아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 큰아들을 꼭 법정에 증인으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법원에서 하는 일은 너무 미미했다. 그 주소로 소환장 하나 보내고 그게 반송되면 더 이상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아예 소재지를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안 했다. 인근 파출소의 경찰관들도 그랬다. 제도만 있고 실질이 없는 법 시스템은 그냥 장식인 경우도 많았다.
“큰아들 하봉식의 집으로 제가 직접 전화를 해서 법원으로 나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는 절대로 법원에 나가 증언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던데요.”
의외였다. 그 역시 살인청부의 혐의를 받고 있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완전범죄를 노린다면 법정에 나와 완벽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솔직담백한 반응이 나왔다.
“왜 못 나온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기분이 나빠서 도저히 못 나오겠대요. 마음대로 하래요. 그러면서 전화를 탁 끊어버려요.”
재판을 할 수 있는 법정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항소심은 4개월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기간상 법원에 구인영장을 신청해서 그를 잡아오기는 불가능했다. 재판부에서 그런 조치를 취해 줄지도 의문이었다.
“큰아들을 강제로라도 불러서 꼭 물어봐야 하는데요. 왜 그런지 법원 사무관께서는 옆에서 지켜보셔서 알잖아요?”
내가 절실하게 부탁했다. 청부살인이 아니라면 죽은 영감의 아들도 좋고 장영두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나의 느낌은 청부살인이 아니라는 쪽이었다.
“이번에 바뀌신 재판장님도 진실을 강조하는 분이라 증언을 꼭 듣고 싶어 하세요. 지난번 재판장님은 절차를 중요시하는 분이었어요. 서기로 일해 보면 판사마다 성향이 달라요. 지난번 재판장은 제가 공판조서를 가지고 들어가면 어떤 때는 심하게 혼을 내기도 했어요.”
포장만 그럴듯한 재판은 허구였다. 그건 대법원을 향한 해바라기 같은 요식절차일지도 몰랐다. 판사 개인적으로 윗분들에게 흠을 잡히지 않고 싶은 재판이라고나 할까. 나는 갑자기 큰아들도 살인청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수사기록을 뒤적였다. 검찰이나 경찰에서 죽은 하 영감의 아들에 대한 살인청부의 조사가 전혀 없었다. 정말 청부살인을 의심했다면 그들을 불러 수없는 질문을 하고 그들이 빠져나가는 답변을 한 흔적이 있어야 했다. 얼마 전 검사실에 갔다 와서 말한 장영두의 얘기가 떠올랐다. 검사도 청부살인이 아닌 걸 이젠 확실히 알고 당황하는 표정이더라는 내용이었다.
짙게 물든 낙엽이 떨어지던 금요일 오후 나는 교도소로 장영두를 찾아갔다. 접견실에서 장영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내가 이렇게 물었다.
“이 사건에서 내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죠?”
“이해하시지 못하는 게 딱 하나 있죠.”
장영두가 능글능글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의 표정과 어법을 쓰고 있었다. 마치 나하고 수수께끼 놀이라도 하는 범인의 태도와 비슷했다.
“그게 뭔데요?”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제 성격을 전혀 모르신다는 거예요. 제 생각으로는 아주 단순한 건데 도대체 왜 이렇게 꼬인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는 마치 답을 아는 선생님이 안달하는 학생을 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불운의 사신이 바로 자기 앞에 와 있는데도.
“단순하다뇨? 무슨 의미죠?”
내가 다시 물었다.
“랭가가 영감님을 쳤을 때 난 눈앞이 정말 깜깜해졌어요. 그 영감님 성질을 워낙 잘 아니까요. 우선 그 자리에서 랭가와 내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치죠. 교활한 성격의 그 영감님은 겉으로는 용서하는 척했을 겁니다. 힘에 밀려서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고소를 해서 저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무지무지하게 괴롭혔을 겁니다. 내가 지금 살인범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그 영감님이 살았더라면 받았을 고통이 훨씬 더 컸을 게 틀림없어요.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어요. 그게 바로 영감님을 죽인 이유죠.”
나는 속으로 장영두가 진짜 그래서 범행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살인은 특이한 돌출된 행동이었다. 판사라는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어떤 살인사건도 일어날 수 없었다. 문제는 랭가의 일관된 살인청부의 진술이었다.
“그러면 랭가는 살인청부를 받았다고 왜 끝까지 주장하죠?”
내가 다시 물었다.
“저는 이제 그 이유를 압니다.”
장영두가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게 뭔데요?”
내가 물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