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긴장해서 장영두에게 다그쳤다. 그 어디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흘러나오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자기가 스스로 할아버지를 때려죽였다고 하면 사형당할 줄 알고 있어요. 주체적으로 죽인 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내가 시켜서 단순히 중간에서 심부름으로 죽였다고 하면 형이 가벼울 걸로 아는 거죠. 그런 인식 아닐까요? 어쨌든 내가 ‘돈 받고 사람을 죽여줄 수도 있느냐’는 농담을 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랭가의 말은 뼈대는 맞고 살이 많이 붙었죠. 랭가에게 할아버지를 죽여주면 2억 원을 준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 또 사전정찰이나 여러 가지 치밀한 범행계획을 의논한 적도 없고요. 조사과정에서 형사나 검사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자세히 말하면서 그렇지 않느냐고 자꾸만 추궁하니까 외국인인 랭가가 오히려 거기에 세뇌돼서 그런가 보다 한 것 같아요. 랭가는 형사의 입에서 2억쯤 받았느냐 하는 소리가 나오니까 오히려 수사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줄 알고 그때부터 그렇게 확신했겠죠. 랭가나 형사, 검사 모두 서로서로 상대방의 말에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나 역시 그렇더라니까요.”
장영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치 비밀의 열쇠라도 찾아낸 것같이 말했다.
“에이, 그건 말이 안 된다. 살인의 공동정범하고 과실치사하고는 형이 하늘하고 땅 차인데 대학을 다녔다는 랭가가 그걸 모를까봐?”
내가 고개를 흔들면서 반박했다. 나는 지금 살인범 장영두와 시간제한 없이 자유토론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만이 가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판사도 이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법정은 사람의 마음을 열기보다는 북풍같이 오히려 꽁꽁 닫아걸게 만들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만 봐도 누구나 그랬다. 장영두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반발했다.
“검사님도 변호사님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던데 말이죠. 검사님같이 많이 배운 사람들 상식하고 저같이 못 배운 놈들 상식하고 같은가요? 뭐.”
그가 정색을 하면서 우겼다. 순간 그의 말 속에서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나 같은 법조인들은 살인죄와 과실치사죄를 구별하고 있다. 그 세세한 형량까지도 암기하고 있었다. 판사는 범행을 할 때나 재판받을 때 범인들이 죄명과 형량까지 알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판단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범죄란 극히 비논리적인 감정이 많았다. 무게를 재는 데 저울을 쓰지 않고 자를 가져다 댄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들과 정신적인 코드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나는 알 것 같았다. 장영두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감옥 안에 있으면 별 요령을 다 들어요. 재소자 중에 법에 해박한 사람이 랭가의 행동을 분석해 주는데 랭가는 어떤 형이 나와도 상관없대요. 그는 사실 다른 사람의 여권에 사진만 바꾸어 붙이고 입국했기 때문에 자기가 재판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유령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기서 몇 년만 징역살면 외국인이라 자기나라로 갈 수 있고 일단 한국에서 나가기만 하면 풀려날 수 있다는 거예요. 랭가는 자기가 죽였다고 하는 것보다는 내가 시켜서 할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하는 편이 나중에라도 동정을 얻기 쉽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태까지 저는 랭가를 순진하게 봤었는데 그 말을 듣고 지금 보니까 상당히 고수예요.”
검사나 판사도 짐작조차 못하는 부분들을 범죄자들은 분석해 내고 있었다. 범죄를 해봐야만 그들의 내부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들만의 주파수가 확실히 따로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면 간단한 것인데도 보통사람들이나 법관들은 도무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좀 더 물어야 할 것 같았다.
“자수를 하고 바로 형사들을 데리고 가서 랭가를 체포했죠? 왜 그랬어요?”
내가 물었다. 청부살인이라면 다른 이유를 대고 랭가를 도피시켜야 했다. 말을 맞추어 수사를 조작하기 위해서라면 함께 자수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장영두는 오히려 위장 자수로 오해받아 랭가보다 형을 더 무겁게 받았다. 장영두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업자득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영감님을 죽인 후에 랭가한테 어떤 경우에도 너에 관해서는 불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나 혼자 자수를 했죠. 그런데 자수를 하고 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든 걸 사실대로 다 형사한테 말해버리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야 마음이 후련해질 것 같았어요. 왜 일부 거짓말을 남겨두고 말하면 앞뒤 맞추기도 힘들고 마음도 무겁잖아요? 그래서 형사들을 데리고 랭가가 사는 집으로 간 거죠. 랭가는 나한테 감정을 가지는 게 당연하죠. 믿고 있었는데 얼마나 화가 나고 내가 밉겠어요?”
“그렇다고 랭가가 장영두를 죽이기 위해 지능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물었다. 내가 만났던 랭가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형사들이 이럴 수도 있지 않느냐 저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말에 랭가가 넘어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래요. 형사들이 나보고 ‘갑자기 임대료를 올려서 5년간이나 짓던 농사를 끊어버린 영감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느냐’고 물었어요. 사실 제 마음이 그러고 싶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형사한테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았죠’라고 솔직히 말했어요. 그리고 나서 다음에 조서를 꾸밀 때 사실 할아버지를 죽일 고의가 없었다고 하면 형사나 검사가 ‘에이, 그러지 마. 지난번에 죽일 마음이 있었다고 자백했잖아?’라고 나를 달래요. 난 그게 아니라 사람 마음이 때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걸 얘기했는데 어느새 내가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되어 버리더라고요.”
형사의 조서보다 변호사한테 말하는 장영두의 말이 더 진실인 것 같았다. 판사는 이런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게 재판의 불행이고 모순이기도 했다. 법정에서 이런 말을 전달할 기회도 사실상 없다. 절차상 차단당하기 때문이었다.
“강도를 할 마음도 있었다고 한 자백이 조서에 보이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죠?”
“형사나 검사한테 하도 같은 말을 여러 번 듣고 대답하다보니까 나중에는 내가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형사나 검사가 나보고 도대체 할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는데 죽인 걸 보면 가족들도 자주 오지 않는 걸 알고 땅문서를 조작해서 팔아먹으려고 그랬던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으니까 머리가 이상해져요.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형사나 검사가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죠’라고 했어요. 그리고 나서 보니까 공소장에는 내가 강도로 되어 있어요. 가능성만 가지고 강도가 되나요?”
교활한 형사나 검사가 우매한 사람 하나를 범인으로 만드는 일은 간단할 것 같았다. 깊이 박혀 있던 사건의 본질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영두 형제를 결백하다고만 봐주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건 장영두가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형 장영목과 사이에 있었던 수상한 대화내용이었다. 검사는 유치장 담당 경찰관이 장영목과 장영두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면회일지를 증거로 법정에 제출했다. 면회 온 사람끼리의 대화나 감옥 안에서 재소자끼리 범죄내용을 얘기한 게 종종 결정적인 증거로 법원에 제출되고 있었다. 악필로 난삽하게 쓴 그 내용들을 대충 요약하면 이랬다.
3월 19일 오전에 처음으로 장영목이 유치장으로 동생을 면회 갔다. 장영목이 동생에게 이렇게 물으면서 얘기가 시작됐다.
‘어떻게 그렇게 됐어?’
‘어, 그렇게 됐어.’
장영두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옆에 외국인도 있었다면서?’
뉴스를 통해 장영목은 이미 기본 내용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장영두가 다시 짧게 대답했다. 그게 다였다. 설명이 없다.
‘너는 그렇게 살인한 게 아니고, 현장에 있기만 했지?’
‘아니야, 거의 내가 주도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내가 자수해서 있는 사실 그대로 다 말했고….’
‘거짓말 마! 너 카드빚이 많아서 일부러 그렇게 말하고 거기 들어가 있는 거지?’
장영목은 동생의 범행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형 내가 바보야? 다 내가 주도해서 한 게 사실이야.’
‘그러면 랭가라는 그 방글라데시인이 죽인 게 아니야?’
‘내가 거기 그 장소에 있었고 외국인 랭가가 다른 말을 하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내가 있던 대로만 말하면 돼.’
‘그런데 그 방글라데시인이 거기 왜 갔어?’
‘내가 예배 끝나고 전지를 하려고 데리고 갔는데 노인네가 욕을 해서 일이 벌어졌어.’
‘말리지 않았어?’
‘말릴 수가 없었어. 내가 말리게 되면 그 노인이 나를 고소하고 난리가 났을 거야. 내가 그 애를 데리고 간 게 잘못이지. 내가 같이 있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잘못이고 내가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도 그러니까.’
‘알았어.’
장영목이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엄마 같이 안 왔어?’
장영두가 형한테 물었다.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했어.’
장영목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다시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한테는 어떻게 해?’
‘말해야겠지. 방송에도 나갔으니까 아시게 될 거야. 그리고 사실 나는 가서 옆에만 서 있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만 말해줘. 엄마한테 미안하지, 살인범 아들을 두었다고 마을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해. 엄마가 그런 걸 제일 싫어하잖아? 그게 정말 미안해. 그 마을에서 어머니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형 마음이 너무 무겁다.’
장영목의 말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차는 어떻게 할까?’
‘명의이전해서 형이 사용하든가 아니면 팔아. 그리고 박 사장한테 농기계들 4000만 원에 팔 수 있으면 팔아. 다 정리해.’
그의 형 장영목이 앞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장영두의 마지막 말이 나오고 있었다.
‘울지 마, 형. 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미안해. 감옥에 있지만 마음 다져먹고 열심히 살께. 쇠창살 안에 있으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
3월 21일 아침 9시 13분 경찰서 유치장에서 형제의 대화 중 이상한 말이 오가는 게 수사기관을 긴장하게 했다. 형제가 주고받은 대화 중 몇 개가 체크되었다.
‘너한테 불리해. 네가 죽이면 얼마를 준다고 돼 있어.’
장영목의 말이었다.
‘덮어.’
장영두의 대답이었다. 살인청부 얘기를 꺼내지 말라는 뜻으로 보였다. 장영두가 다시 말했다.
‘그건 그대로 덮어놔.’
‘필요 이상으로 만용을 부리지 마. 네가 살인을 계획했다는 것하고 우발적인 것하고는 천지차이야.’
장영목이 동생을 다그치는 말이었다.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한 적이 있는지 아닌지 그게 문제야. 언제 검사한테 갈는지 모르겠어.’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