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구치소 | ||
글로벌 경영을 외치며 세계를 제집처럼 누비고 다니는 재벌 총수들의 경우 한 평 남짓한 좁디 좁은 감옥에 갇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그간 분식회계 등 갖가지 문제로 구치소 신세를 져야 했던 재벌 총수들의 독방생활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 또한 다른 수감자와 마찬가지로 독방 안에서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식사와 취침, 그리고 독서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구치소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다. 과연 그럴까. 다른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출소한 A 씨는 고위인사들의 수감 생활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사동 ‘소사’ 일을 담당했다고 한다. 소사란 구치소나 교도소 내에 수감된 고위인사나 특별 관리 대상의 ‘당번’ 역할을 하는 재소자를 말한다. 그는 실제 유명 기업인으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던 김 아무개 씨와 고위 공직자 변 아무개 씨, DJ 정권의 실세 박 아무개 씨 등의 소사 일을 담당했다고 한다.
A 씨는 “독방은 보통 한 평 남짓한 크기인데 여기에는 고위인사나 조폭과 같은 강력범들이 수감된다”며 “하지만 여러 명의 재소자가 동시에 한 방을 쓰도록 만든 세 평 남짓한 큰 방을 혼자 쓰는 특혜를 누리는 고위인사도 있었다. 박 씨가 그런 경우”라고 소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96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됐을 때도 이처럼 큰 방을 혼자 썼다고 한다.
또 다른 재소자 출신인 B 씨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 독방은 16개 동에 250여 개가 있는데 그 안에는 변기와 책상 TV 선풍기 등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독방 내의 시설물은 고위인사나 일반 재소자나 다름없이 모두 똑같다고 한다. 대신 고위인사의 경우 대개 전담으로 소사가 한 명씩 붙는다는 것. 그들은 식사 당번도 하고 청소도 해준다고 한다. B 씨는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소개되는 ‘재벌 회장이 직접 밥을 타서 먹고 설거지도 한다’는 내용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독방 안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B 씨는 “면회 등이 없으면 대개 안에서 책을 보거나 TV, 신문을 본다. TV는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신문은 본인이 희망하면 영치금으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방을 나와서 복도나 사무실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다니는 것도 허용이 된다”고 덧붙였다.
▲ 김우중 전 회장 | ||
전직 조폭 출신으로 최근 교도소 내의 모습을 그린 실화소설 <인간학교>를 펴낸 강병한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형을 확정받고 일반 교도소에 수감되는 고위인사들의 경우, 비교적 우리 같은 주먹 세력과 잘 지내는 편이다. 그 안에서는 주먹의 권한을 무시 못 하는 데다 또 주먹들도 고위인사들과 친하기 위해 최대한 편의를 봐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이미 지난 90년대 재벌 총수로서는 첫 사례로 한 차례 서울구치소 독방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당시 갓 불혹을 넘긴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김 회장은 비교적 구치소 생활에 빨리 적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 나름대로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기 위해 애썼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 법정 신문에서 ‘구치소 내의 생활’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성경과 일본 소설 <불씨>를 관심 깊게 읽었다. 특히 <불씨>를 읽은 뒤 기업경영에 있어 닥치게 될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통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김 회장은 당시 검찰 수사와 법정 신문에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예, 그렇습니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법정 공판에 처음 섰을 당시에는 재판장의 인정신문 때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B 씨는 “담장 안의 생활은 한 번 경험이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에 따라 당사자에겐 천양지차로 느껴진다”라고 밝혔다.
재벌 총수의 구속 수감은 이후 95년부터 2000년까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등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 정몽구 회장 | ||
2005년 6월 외화 불법 반출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 오랜 해외 도피 생활로 심신이 지쳤음인지 수감 생활 초기에는 오히려 숙면을 취하고 식사도 비교적 거르지 않는 등 안정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안에서 읽을 책을 많이 부탁했다고 하는데 특히 역사책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회장들이 대부분 망했거나 망해가는 기업의 총수로서 비교적 한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면 현직 재벌 총수로서 졸지에 수의를 입은 총수들은 그야말로 접견실로 ‘출퇴근’을 하며 ‘옥중 경영’을 활발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배임 등의 혐의로 7개월간 서울구치소 신세를 졌던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부인 노소영 씨(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를 비롯, 그룹 경영을 일부 책임지고 있는 동생들과 사촌형제들이 거의 매일같이 면회를 다녀가며 회사 업무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가는 아니지만 최 회장과 함께 SK를 이끌었던 손길승 회장은 2004년 1월 구속 수감됐으나 당시 SK의 직원들이 서울구치소 인근에 사무실을 임대해 상주하면서 손 회장을 ‘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4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수감된 바 있다. 정 회장의 수감생활을 주변에서 지켜봤다는 A 씨는 “정 회장은 가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몸이 좀 불편한 듯 보였으나 옥중의 생활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마도 거의 외부에서 생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정 회장 역시 두 달 정도의 짧은 수감 생활 동안 면회와 검찰 조사 등으로 자주 독방을 나섰으며, 주말과 휴일 등 독방 내에 머물렀을 때에도 TV 시청이나 신문을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전언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