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십여 년을 거의 편집실에서 밤을 새웠다. 조작버튼을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은 지문이 거의 닳아 없어졌고 왼쪽 손가락은 담뱃진에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부장 승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인은 철저히 그를 내조해 왔다. 방송출연 경험이 있던 나는 그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가 다른 때와는 달리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으면서 호소했다.
“아는 여자의 남편한테서 소송을 당했어요. 자기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으니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거예요. 재산이라고는 아파트 한 채뿐인데.”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절망적인 어조로 내뱉었다.
“그보다 더한 건 이게 회사나 집사람에게 알려지면 난 파멸인데요.”
그는 잠을 자지 못했는지 얼굴이 종잇장같이 핼쑥했다. 법원에서 날아오는 소장은 생활 위에 떨어지는 핵폭탄이었다.
“부장 진급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간통죄로 고소당해서 감옥에 갈지도 몰라요. 정말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가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같이 섹스를 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좋아해요.”
그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그 눈물에서 난 그의 진한 진짜 사랑을 느꼈다. 그가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민희라는 여기자와 몇 번 인터뷰를 했어요. 제가 만드는 프로들을 홍보하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되죠. 그런데 김민희 기자의 가정에 문제가 있더라고요. 김민희가 한번 회사 근처에 찾아와서 남편한테 맞고 산다며 호소한 적이 있어요. 제가 주제넘게 그걸 상담한 거죠. 와인을 같이 마셨는데 블라우스에 토할 정도로 흐트러졌어요. 제가 밤 12시 무렵 겨우 차에 태워 보냈었죠.”
그가 목이 마른지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보내고 나서 보니까 너무 내 자신이 얼음같이 차고 계산적이었던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김민희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조금 내용을 진하게 썼죠. 그게 결정적인 증거가 돼서 돌아온 겁니다. 전 완전히 코가 꿰였어요. 부인할 수가 없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의 이메일은 그가 스스로 불륜을 폭로한 증거같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지금 김민희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 중이라고 했다. 눈이 뒤집힌 남편은 그를 죽이고 싶을 것이었다. 오민수로부터 그날 들은 대략의 상황은 이랬다.
2005년 12월 24일경이었다. 반포대교 난간 앞에서 번들거리는 검은 한강 물을 내려다보는 김민희의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어 있었다. 강물 속은 영원한 망각의 세계일 것 같았다. 남편은 병적이었다. 매일 밤 집요하게 “그놈하고 잤지?”라고 새벽까지 반복했다. 남편은 종이와 볼펜을 가지고 와서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강변의 아파트에서 흘러나온 푸른 불빛이 강물 위에서 춤을 추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귀신에게 홀린 듯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두 시간 전, 김민희가 근무하는 잡지사 동료기자인 박미자는 김민희의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저 민희 언니인데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민희가 짐과 휴대폰을 맡기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나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미자 기자는 자살로 확신했다. 그의 옆 김민희의 자리는 어제부터 텅 비어 있었다. 데스크가 그녀를 찾아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김민희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항상 조용히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기자생활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남편은 반대였다. 사내에서 저녁 회식만 있어도 수시로 김민희의 휴대폰이 민망할 정도로 자주 울렸다. 한번은 김민희의 남편이 회식 후 간 노래방까지 찾아와서 김민희를 끌고 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김민희의 남편은 막상 아내가 자살을 한다고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인간이었다. 같은 여자들만의 직감이었다. 그녀는 얼핏 오민수 피디를 떠올렸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누구라도 의지가 되는 든든하고 자상한 남자였다. 김민희의 일을 그에게만은 부탁하고 싶었다.
오민수 피디는 그 시각 방송사 간부회의에서 열심히 그가 기획하는 새 프로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의 프로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것이다. 내용면이나 시청률에서 다른 텔레비전 방송의 프로그램을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회의에서 잘 설명해야 제작비를 딸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때 휴대폰의 벨이 부르르 울렸다.
“김민희가 자살하러 간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박미자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순간 그는 흔들렸다. 김민희의 문제로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알았어요. 찾아봅시다. 갈게요.”
그의 꺼림칙한 마음과는 달리 입이 먼저 대답을 해 버렸다. 그가 급히 회의장을 나서면서 간부들에게 소리쳤다.
“너무 급한 일이 있어 나중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가 다시 박미자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저 김민희가 나갈 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죠?”
“파란 윗도리에 청바지를 입고 갔대요.”
“마지막으로 전화가 온 적은 없어요?”
“오후 7시쯤 동생한테 마지막 인사를 했대요.”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으면 공중전화에서 한 게 틀림없었다. 그는 한국통신과 경찰청 상황실에 연락했다.
“여자가 투신할지도 모르니까 비상 좀 걸어주시죠.”
경찰청 담당자가 물었다. 그는 순간 멈칫했다. 도대체 나와 김민희와의 관계가 뭘까?
“저 그게….”
그가 주저하면서 말을 끝내지 못했다.
“저희는 신분과 관계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협조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담당경찰관이 사무적으로 응답했다.
“아닙니다. 전 방송국 피디 오민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투신하러 간 김민희라는 여자와 잘 아는 사이입니다.”
오민수는 회사와 전화번호를 밝혔다.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경찰청 상황실에서 바로 한강의 수상경찰에 무전을 보냈다. 김민희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던 공중전화부스의 위치도 추적이 됐다. 공중전화의 위치는 큰 기독교잡지사 빌딩 근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포대교가 틀림없었다. 오 피디는 김민희의 동료 박미자 기자와 함께 반포대교로 차를 급히 몰았다. 두 사람은 반포대교와 그 아래 잠수교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김민희를 찾아 헤맸다. 지나가는 차들의 타이어가 아스팔트에서 내는 마찰음이 신경을 쥐어뜯었다. 오민수는 온몸에 진땀이 흐르고 차들이 날리는 먼지로 목이 막혔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수상경찰입니다. 여자 분이 강물에 투신을 했는데 저희가 구조했습니다. 바로 강변파출소로 오시죠.”
오민수는 박미자 기자와 함께 강변파출소로 달려갔다. 문 입구 소파 위에 김민희가 기진한 채 누워 있었다. 오민수는 앰뷸런스를 불러 김민희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모든 오해와 고난을 두 팔 벌리고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김민희의 남편은 그때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그 시각 김민희의 남편 조대기는 아내 김민희의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해킹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자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도무지 증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때려도 내쫓아도 자백을 하지 않았다. 물적 증거를 입수해야 했다. 휴대폰을 뒤지고 이메일을 살펴왔다. 우연히 한 메일이 눈에 띄었다. 오민수란 이름이었다. 클릭해서 메일을 열었다.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이제야 그놈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그는 그동안 오민수에게서 온 메일을 모두 체크했다. 몇 개가 있었다. 잠시 후 오민수가 보낸 모든 이메일이 프린트되어 나오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고민을 하던 오민수는 급히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다. 아내에게 사전에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내 박선미는 때마침 집에 있었다. 아이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잠깐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해.”
박선미는 남편 표정을 보자 단번에 심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걸 직감했다.
“무슨 일이야?”
집 앞 어린이 놀이터에서 처가 물었다.
“아는 여자가 한강다리에서 떨어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어. 조금 전에 데려다 놨는데….”
남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은 정이 깊은 성격이었다. 아프리카 난민을 취재하러 갔을 때도 비참한 광경을 보고 먼저 눈물부터 흘렸다. 다른 사람의 고민에 같이 휘말려드는 약점이 있었다.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알았어. 내가 병원으로 가 볼게.”
박선미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남편과 함께 택시를 탔다. 자신이 개입해서 문제를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까지 시도한 김민희에게 남편이 깊이 몰입될 것 같았다. 그녀가 입원실에 들어갔을 때 김민희는 하얀 시트 위에서 안정을 하고 있었다. 링거액이 한 방울씩 규칙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박선미는 힘없이 늘어진 김민희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위로했다.
“빨리 회복하셔야죠. 어떻게 이렇게까지….”
남편에게는 병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자꾸 김민희와 만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입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김민희의 남편 조대기였다. 눈빛에 붉은 기가 도는 탁한 느낌의 남자였다. 그가 박선미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약간 갈라진 쉰 목소리였다.
“저 오민수 피디의 처 되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죄인처럼 기어드는 듯한 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그녀 자신이 가해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오민수, 제가 작살을 내려고 하는 인간인데 그 처가 제 발로 오셨군.”
“왜 제 남편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시죠?”
박선미는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내 집사람하고 댁의 남편하고 불륜관계라는 걸 모르슈?”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건달같이 내뱉었다.
“전 남편을 믿습니다. 그럴 사람 아닙니다.”
박선미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래도 아니라고?”
조대기가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보였다.
“보지 않겠습니다.”
박선미가 고개를 돌리면서 거부했다.
“그래? 결국 남편과 간통의 공범이군.”
조대기가 빈정거렸다. 조대기는 얼마 후 오민수와 그의 처 그리고 동료기자 박미자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