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김성호 법무장관. 최근 청와대와 마찰을 빚어와 경질설이 돌고 있다. | ||
경질설의 불씨가 커지면서 최근 청와대와 김 장관 스스로 “그런 일 없다”며 진화에 나선 상황. 하지만 정치권 등에서는 청와대와의 ‘코드 불일치’에 따른 김 장관의 경질 가능성을 여전히 점치고 있어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와 김 장관의 갈등 및 경질설이 불거지게 된 배경과 이번 파문 직후 청와대와 김 장관을 둘러싸고 흐르는 기류를 살펴봤다.
최근의 경질설 파문을 전후해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 장관 경질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단 김 장관이 일련의 발언으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식의 차이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드러낸 여파가 이러한 기류의 촉매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정서’의 차이로 인한 갈등의 씨앗을 안고 현 정권과 ‘어색한 동거’를 해왔던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실제 김 장관은 지난해 8월 보수 언론과의 인터뷰 건을 비롯해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의 ‘친기업적’인 발언 등을 통해 청와대 측과 껄그러운 입장에 놓인 바 있다.
특히 당시 대한상의 강연 자리에서 김 장관이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부는 버티지 못한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이 “국민 지지율이 낮은 현 정부를 의식한 게 아니냐”며 강한 반감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 장관이 고려대 68학번 동기로 평소 자주 만나는 야권 성향의 대기업 고위 인사들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 수사 당시 김 장관이 “(김 회장의 행위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바탕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평소 ‘김폴레옹’이라 불릴 만큼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는 김 장관이지만 김 회장 사건 관련 발언만큼은 와전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김 장관은 지난 5월 공교롭게도 김 회장 폭행 사건의 장소인 청계산에서 있은 고려대 68학번 동기회 모임에 참석,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폭탄주를 만들어 동기들에게 건네며 ‘김 회장 관련 발언이 언론을 통해 와전돼 답답하다’는 심정을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여전히 김 장관 경질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인사들은 지난 6월 11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 장관이 “선거법 9조(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가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부분이 청와대 내에서 쌍곡선을 그렸던 ‘반 김성호’ 기류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이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심혈을 기울여 선거법 9조에 대해 위헌 논리를 펴고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고 있던 마당에 외곽에서 힘을 보태야 할 김 장관이 반대로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하자 청와대 측 일부 핵심인사들의 화가 폭발 직전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대선도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청와대 한쪽에서는 법무장관에 대한 갑작스러운 경질 논의는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이명박 전 서울시장 처남 김재정 씨 수사와 관련, 김 장관이 다소 수사에 소극적인 듯한 입장을 나타내면서 청와대 내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가운데 김 장관이 한나라당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괴소문이 확산돼 김 장관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불어 김 장관이 지난 7월 26일 법무부를 항의 방문한 한나라당 정치공작저지특위 소속 의원들에게 ‘최태민 관련 보고서 형태를 보면 어느 국가기관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일각의 분위기는 ‘김 장관이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쪽으로 굳어졌다는 전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분위기상 김 장관의 경질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지만 후임 대안이 없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초 청와대가 김 장관 경질설에 대해 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정상명 검찰총장이 자연스럽게 법무장관으로 이동하는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의 역할을 끝까지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청와대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이 경질될 경우 8월에 임기가 끝나는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이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권 말기 법무부 장관직이 ‘득’보다는 ‘짐’이 많은 자리라는 점이 김 장관 경질 여부 및 후임 거론자의 판단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청와대로서는 김 장관이 만에 하나 ‘자진 사퇴’라는 방법을 선택할 경우 ‘제2의 허준영’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참여정부에서 경찰 총수까지 지낸 허 전 경찰청장이 시위농민 사망 사건 여파로 자진 사퇴한 후 한나라당에 총선 출마 공천 신청을 낸 전례는 어쨌든 김 장관 처리 문제를 놓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 장관은 자신을 둘러싼 경질설 보도와 청와대 일각의 기류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이다. 김 장관은 지난 7월26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자진사퇴가 의사가 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서슴없이 “그런 거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7월 24일 고려대 입학 동기 모임에서도 “궂은 날에도 소신을 가지고 정체성을 유지할 생각”이라며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와 검찰 관계자들 역시 김 장관이 결코 자리에 연연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자진사퇴라는 방법은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장관이 “장관이 안 됐을 때는 무척 하고 싶었는데 일단 장관 자리에 있다 보니 별 거 없더라”며 자진 사퇴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바 있지만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 법조 인사들 사이에서는 김 장관이 스스로 조직을 버릴 가능성은 적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
지우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