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정부의 탈레반 총공격이 시작된 가운데 지난 7월 31일 탈레반 병사들이 아프간 접경지역 라카라이의 사원을 장악했다. 탈레반들은 외국인들을 납치해 주로 몸값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AP/연합뉴스 | ||
2001년 아프간 전쟁 이후 탈레반 세력은 외국인 납치극을 벌일 때마다 제일성으로 ‘인질 국가의 아프간 파병 철수’를 요구했다. 그 다음으로는 ‘탈레반 죄수 석방 맞교환’을 요구했다. 이것은 최근의 납치 사례에서 거의 정석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번 한국인 봉사단원 납치 사건 직후에도 이 같은 ‘정석 플레이’는 똑같이 반복됐다.
하지만 실제 역대 인질들의 협상 사례를 살펴보면 석방의 대가는 대개가 ‘몸값’ 지불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탈레반 죄수 석방’ 요구의 관철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관련 국의 파병 철수는 없었다. 그저 몸값과 동료 석방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명분상의 구호 성격이 짙었던 것. 이밖에도 탈레반의 인질 석방과 살해 그 양극단의 행동 사이에는 몇 가지 뚜렷한 ‘공식’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비록 잔혹한 테러 세력이라고는 해도 명분을 중시하는 만큼 대놓고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탈레반의 최고사령관으로 알려진 사비르라는 인물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자꾸 몸값을 요구하는 것처럼 아프간 정부가 모함하고 있다”고 극도의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인 인질 석방을 위한 중재를 하고 있는 아프간의 한 의원 역시 “그들은 한국군의 파병 철수는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외용으로는 동료 석방이고 대내용으로는 몸값인 셈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 두 가지 카드를 놓고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인질 억류가 점차 장기화되면서 몸값 지불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듯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탈레반 죄수 석방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몸값 협상을 벌이는, 즉 겉으로는 그들의 명분을 살려주고 속으로는 실리를 챙겨주는 양면 협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되고 있다.
지난 7월 말 8명의 인질 조기 석방이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2명의 우리 국민이 희생된 것 또한 “죄수 석방보다는 너무 몸값 지불만 부각시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역대 사례에서 드러난 탈레반의 협상 및 인질 처리 행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유난히 자국민들이 아프간에서 납치를 많이 당했다. 탈레반이 특히 이탈리아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탈리아가 2000여 명의 전투 병력을 아프간에 파병한 데다가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압둘 라만이 이탈리아로 전격 망명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라만은 아프간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 실제 탈레반은 이탈리아인을 납치할 때마다 이탈리아군 파병 철수와 압둘 라만의 송환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10월 납치됐던 이탈리아의 사진기자 가브리엘레 토르셀로의 경우에도 상황은 흡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의 요구 조건에 난색을 표하면서 거액의 몸값으로 협상장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200만 달러(한화 약 18억 4000만 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인질을 구출해 냈다. 납치된 지 20여 일 만이었다.
몸값 지불은 주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모두 떳떳하지 않은 입장이어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대개 언론의 추적에 의해서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올해 4월 납치된 프랑스인 구호단체 요원 남녀 2명의 석방 역시 그런 사례. 특히 이 납치 사건의 경우 인질 숫자의 차이만 빼고는 그 진행 과정이 지금 우리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탈레반은 당초 이들 두 사람과 아프간인 가이드 3명 등 5명을 인질로 억류하면서 아프간 주둔 프랑스군의 철수와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요구했다. 이들은 인질 5명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는 방법으로 프랑스를 압박했다.
프랑스의 대응 역시 지금 우리의 자세와 흡사했다. 프랑스의 두스트 블라지 외교장관은 프랑스군이 곧 철군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은밀한 접촉을 통해서 몸값 협상을 벌여나갔다. 정부 고위 인사도 급히 현지에 파견됐다. 외교차관이 카불을 방문,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탈레반 측은 납치한 지 26일 만에 두 명의 프랑스 인질 가운데 여성을 먼저 석방했다. “프랑스 측의 성의 있는 자세를 두고 보겠다”며 남은 4명은 계속 억류했다.
▲ 심성민 씨 피살 후 지난달 31일 피랍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공동취재단 | ||
탈레반의 경우는 아니지만 많은 해외 국가들이 이슬람 무장 세력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자국민 인질을 구출한 예는 훨씬 더 많다.
지난해 1월 이라크 이슬람 무장 세력에게 납치됐던 독일인 기술자 2명은 3개월 만에 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무장 세력은 10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2005년 11월 납치된 독일 여성 고고학자는 300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언론이 추후 보도했다.
2005년 1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에 납치된 프랑스 여기자는 5개월 이상 감금된 이후 가까스로 풀려났는데 당시 프랑스 정부는 10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돈은 가장 비싼 몸값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죄수 석방 맞교환의 사례도 몇 차례 있었다. 이탈리아 기자 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가 올해 3월 탈레반에 납치된 사건 역시 지금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이전에 이미 한 차례 이탈리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몸값을 받고 인질을 풀어준 바 있던 탈레반은 또 다시 압둘 라만의 송환과 이탈리아군 파병 철수를 대외적으로 요구하면서 이탈리아 정부를 압박한 뒤 곧이어 탈레반 수감자 5명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만이 자국의 인질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아프간 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은 이탈리아인 기자와 함께 납치된 아프간인 운전기사를 먼저 살해하는 방법으로 이탈리아 측을 한층 더 강하게 압박했다. 다급해진 이탈리아는 아프간 정부에게 “파병 중인 이탈리아 군대를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압박했고 결국 카르자이 대통령으로부터 5명의 인질 석방을 이끌어냈다. 당시 카르자이 대통령은 “인질 맞교환은 이번 한 번에 한해서만 허용한다”라는 말로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했다.
2004년 10월 아일랜드 여성과 필리핀 남성, 그리고 세르비아 출신 여성 등 유엔 직원 3명이 카불에서 탈레반의 한 분파 세력에 의해 납치당한 사건도 이와 유사했다. 무장 세력은 “인질들이 속한 국가들은 하루 속히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인질 국가 중 필리핀과 세르비아는 파병을 하지 않았기에 이들의 주장은 명분뿐이라는 모순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후 이들은 다시 “구금 중인 탈레반 전사 26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모두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인질 3명은 납치된 지 26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는데 아프간 정부는 “군사 작전을 감행해 인질을 구해냈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탈레반 측은 인질 석방 후 “아프간 정부로부터 탈레반 죄수 24명을 넘겨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를 아프간 정부는 공식 부인했지만 해외 언론은 오히려 탈레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이라크 이슬람 무장 세력에 납치된 미국의 여기자 역시 82일 만에 석방된 배경을 놓고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여러 추측이 나온 가운데 ‘죄수 석방’이라는 무장 세력의 요구 조건을 미국이 들어줬을 것이라는 추정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당시 이라크 무장 세력은 동료 5명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고 미군 측은 여기자가 납치된 지 20일 만에 테러 등의 혐의로 억류했던 이라크인 400여 명을 석방하면서 여기에 무장 세력이 요구한 5명을 포함시켰다는 것.
▲ 탈레반에 납치된 지 5주 만에 풀려난 프랑스 구호요원 에릭 댐프레빌(가운데)이 지난 5월 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를 포함한 5명의 인질을 구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200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 ||
2005년 11월 아프간에서 납치된 인도인 기술자 쿠티는 사흘 만에 살해됐다. 당시 탈레반은 “48시간 이내에 모든 인도의 근로자는 본국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인도에서 공식적인 대응이 없자 48시간 후 바로 처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 납치된 인도인 기술자 수랴나라얀 역시 처형을 면치 못했다. 그는 납치된 뒤 협상 시한인 24시간도 채 못 채우고 곧바로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탈레반 측은 “인질이 도망치려 해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는 당시 아프간 재건 사업 및 원조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탈레반은 인도인을 납치할 때마다 “아프간 재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2000여 명의 인도인은 즉각 철수하라”는 요구를 했다. 인도 정부는 “우리는 탈레반의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3월에도 제3세계 국가의 인질은 여지없이 살해됐다. 미군기지 하수정화회사의 직원인 알바니아인 4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고 탈레반은 납치 직후 전격적으로 4명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잔혹성을 선보였다. 지난해 2월 영국 안보업체에 근무하던 네팔인 2명도 납치당한 후 한 명은 풀려났지만 한 명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같은 이슬람 국가이긴 하지만 아프간에 파병을 하고 있는 터키 역시 잦은 납치 대상이었다. 터키 도로 기술자 에유프 오렐은 2004년 12월 납치된 지 불과 하루 만에 살해됐다. 당시 무장 세력은 터키 정부에 파병 철수와 같은 어떤 요구조건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같은 해 3월 터키인 기술자 살리 아크소이를 납치했을 당시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납치 직후 탈레반은 당초 공사인력 철수와 사업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내 몸값 요구로 속내를 드러냈다. 터키 정부는 “테러 세력과 어떤 협상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아크소이는 납치 113일이라는 최장기간 억류 기록을 세우고 풀려났다. 어떤 형태로든 몸값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대두됐다.
강대국의 인질이라도 예외적으로 살해된 경우는 있다. 영국이나 독일 등 테러 세력과의 협상 절대 불가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2005년 8월 아프간 서부에서 피랍된 영국인 엔지니어 데이비드 앤디슨은 3일 만에 전격 처형됐다. 탈레반이 영국의 파병 철수를 요구했으나 영국 정부는 “테러 세력과 그 어떤 협상도 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자 탈레반은 애디슨이 영국군 부사관으로 복무했던 전력을 문제 삼아 “침략 군인은 죽인다”는 명분을 내세운 채 처형을 단행했다.
한국보다 하루 앞선 7월 18일 납치된 독일인 기술자 2명 가운데 한 명은 피랍된 지 사흘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총상에 의해 숨진 것으로 부검 결과 확인됐다. 나머지 한 명의 인질은 여전히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이슬람 무장 세력은 여성들은 해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성을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 2004년 이라크 무장 세력은 영국인 남성과 여성을 납치했고 영국군의 이라크 파병 철수를 요구하며 남성을 먼저 살해했다. 영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성의 울부짖는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해 보내기도 했으나 역시 반응이 없자 그해 11월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