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경선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남았다. 계속되는 한나라당의 ‘정치 수사’ 공세에 대해 검찰 내부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사진은 정상명 검찰총장. | ||
13일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 대한 수사 중간발표가 나온 이후 검찰은 술렁이고 있다. 내분으로 술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 흔들기에 단호히 맞서자며 목소리를 모으고 있는 것. 당내 경선이 끝났지만 한나라당의 검찰에 대한 공세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검찰의 위상을 정치권에 바로 심어주자”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초동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청사 주변은 지난 2003년 국민들의 절대적 성원을 등에 업고 ‘검’을 거침없이 휘둘렀던 ‘대선자금 수사의 추억’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올해 2월 단행된 검찰 정기 인사는 대선 정국을 맞는 정상명 검찰총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평가돼 관심을 끌었다. 서울중앙지검장에 당초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박영수 당시 대검중수부장 대신 ‘공안통’인 안영욱 부산지검장이 전격 임명된 것은 상징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박 중수부장이 특수통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훨씬 옅으면서도 무난한 평을 듣고 있는 안 지검장 쪽을 선택한 것.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 정치권의 검찰 휘두르기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정 총장의 의지의 표현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대선정국을 전면에서 관리하게 되는 ‘빅3’ 보직인 대검 중수부장과 공안부장에 각각 이귀남 이준보 검사장을 임명했다. 이들 역시 검찰 내에서는 자기 처신이 깔끔하고 정치색이 없는 검사들로 꼽히고 있다.
대검 차장으로 정동기 법무차관이 발탁된 점을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는 대표적인 관료형 스타일의 검사로 평가된다. 정 총장의 임기가 11월로 끝남에 따라 신임 차장은 대선이 치러지는 12월에 총장직무대행을 맡으며 사실상 검찰 총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 총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재경 당시 중수1과장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발탁된 것을 두고 야당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특수부를 정 총장 친위대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가”라는 의혹의 눈길도 있었다. 하지만 최 부장검사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특수부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돼 오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검찰 내의 중론이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부를 관장하게 되는 김홍일 3차장 역시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론을 강조하는 강골 검사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에서 옷을 벗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 총장 자신이 총장으로 임명될 당시 ‘8인회’(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17회 동기 모임) 멤버 출신이라는 정치적 색채 때문에 상당히 구설수에 시달린 것을 의식한 탓인지는 몰라도 총장 취임 이후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털어버리려는 부담감에 늘 사로잡힌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정국을 관장하게 될 지난 2월의 인사 성격도 그렇고 또 ‘퇴임 이후 학계에 몸담고 싶다’는 뜻을 미리 천명하는 것 또한 그런 의지의 표현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 지난 14일 이명박 캠프 소속 의원들이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 대검찰청에 항의 방문했다. 오른쪽은 지난 15일 이번 수사를 지휘한 김홍일 3차장이 ‘정치수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 ||
그래서일까. 이번 이명박 후보 관련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 이후 불거진 정치권과 검찰의 갈등은 오히려 검찰 조직을 더 결집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나오자 이 후보에 대해 본격적인 의혹을 제기한 측은 박근혜 후보 쪽이었다. 이 후보로서는 박 후보의 공세에 대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검찰 쪽에 칼을 겨누고 나서면서 사태를 의도적으로 더 키우려 하는 듯하다. 청와대와 여당, 국정원에 이어 검찰까지 총동원돼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론으로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려 한다”고 불쾌해 했다.
부산지검의 한 간부급 검사 역시 “(이번 중간수사 발표가) 검찰의 입장에서는 최선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고 원칙적이면서도 중립성을 잃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의 표현이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너무 검찰을 흔든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과민 대응이 검찰 내부 단결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당초 수사 발표 때는 주변에서 ‘수사 결과가 부실하다’거나 ‘애매한 표현이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일부 비판 의견도 있었으나 한나라당의 무리한 정치 공세로 그 같은 분위기는 확 사라지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강경 대응 분위기만 더 키워놓았다”고 전했다.
이번 수사를 공안부가 아닌 특수부에 배당한 것을 두고서도 한나라당이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짧은 기간 내에 가장 확실한 수사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사안이었다. 당연히 특수부가 나서는 것이 맞다. 계좌추적도 해야 하고 각종 부동산과 기업 관련 자료들도 모두 확인해야 하는데 공안부 인력만으로는 어렵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이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는 또 다른 대목은 검찰의 내분을 조장하는 듯한 정치권 일각의 발언 때문. 실제로 정가 주변에선 당초 이번 수사 결과를 놓고 검찰 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느니, 일부 검사들이 무리한 특수부의 수사에 대해 반발했다느니 하는 얘기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친이(親李)’ 성향으로 알려진 일부 검찰 인사들이 수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검의 한 관계자는 “대검의 한 부장(검사장)이 대표적인 ‘친이’ 검찰 인맥의 좌장 격이라는 소문이 나돌더라. 그 소문을 전한 정치권 인사에게 그 근거를 물었더니 ‘그 간부가 고대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니, 대한민국 검사 가운데 고대 출신이 몇 명인 줄 아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전부 ‘친이’ 검사들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중간수사 발표로 촉발된 한나라당과 검찰의 갈등 양상은 대선을 앞두고 올 하반기 정국 내내 이어질 것이란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특검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어차피 검찰이 대선정국에 관여하지 않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정치인은 당연히 검찰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솔직히 검찰은 정치성이 강한 집단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고 언론의 주목을 더 받는 쪽에 검사들이 몰리게 돼 있다.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가 그 단적인 예다. 검찰로서는 이런 대단한 이슈를 외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위로부터의 정치적인 입김만 없다면 대선정국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대부분의 검사들은 믿고 있다. 그들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올해 대선이 그런 검찰의 힘을 정치권에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