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숨고르기’를 끝내고 곧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후보가 이날 오찬에서 특히 검증위원들을 언급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검증에 대한 부담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 직전인 13일 검증 관련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검찰은 현재로선 일단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호흡 고르기’ 차원이 아니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향후 다시 이 후보에 대한 검증 공방과 함께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 그 핵심 사안으로 기존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과 함께 김유찬 전 비서관의 위증교사 의혹, 그리고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 꼽히고 있다. 각각의 사건의 핵심 키워드를 쥐고 있는 이영배 전 홍은프레닝 이사, 이광철 전 비서관, 김경준 전 BBK 대표의 행보가 향후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에 이영배 씨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3일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도곡동 땅의 이상은 씨(이 후보의 큰형)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 ‘제3자’의 재산관리인으로 바로 이 씨가 지목된 것. 이 씨는 태영개발, 홍은프레닝 등 김재정 씨 관련 회사의 등기부등본에서 임원으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이지만 그 전력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씨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자 8월 1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홍윤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상은 회장의 부탁으로 돈 심부름을 했을 뿐 이 회장이나 김재정 회장의 재산 관리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이 씨는 1983년 김재정 씨가 경영하던 세진개발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20년간 함께 일했다고 밝혔다(박스기사 참조). 이상은 씨 역시 자신이 모시던 김 씨와 동업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친분으로 그는 2002년 7월부터 이상은 씨의 도곡동 땅 매각 대금을 삼성증권에 예탁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이상은 씨에게 전달하는 돈 심부름을 자신이 몇 차례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씨의 해명에 대해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평가 절하하고 있다. 이미 한 달 전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그가 다 진술했던 내용이라는 것. 검찰 관계자는 “정작 보다 더 자세한 의혹 사항을 물어보기 위한 소환조사에는 (이 씨가) 응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이 씨의 일차 해명과 이후 소환조사 불응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그를 차명 소유자의 재산관리인으로 지목할 정도로 나름대로 근거자료와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 이 씨에 대한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이 씨의 부동산 관련 의혹도 거론되고 있다. 이 씨가 83년경 경기도 용인과 화성에 수천 평의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점과 2000년 이 씨 소유의 서울 풍납동 아파트를 담보로 김재정 씨가 대출을 받은 점도 여전히 의혹 거리로 남아 있다. 아무리 측근이라지만 회사 직원의 아파트를 담보로 사장이 대출을 받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더군다나 당시는 김 씨에게 이미 도곡동 땅 매각대금으로 예치해 둔 100억 원 상당의 보험예금이 있었다는 점에서 굳이 직원의 아파트를 담보로까지 해서 이런 대출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씨 측은 “83년의 부동산은 선친 유산으로 마련한 것이고 이미 검찰에서 매도인과 주변사람에 대한 조사까지 다 한 것으로 안다. 아파트 대출은 당시 회사가 어려워 직원으로서 회사의 어려움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김유찬 위증교사 의혹
지난 8월 24일 검찰은 전격적으로 주종탁 씨와 권영옥 씨를 불러들여 대질신문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5일 주 씨가 전격적으로 공개한 녹취록에 대해 수사하기 위해서였다. 주 씨는 지난 96년 총선 때 이명박 후보가 위원장으로 있던 서울 종로지구당의 조직부장이었고, 권 씨는 사무국장이었다. 이 녹취록에는 “사실은 위증교사 내가 가서 했잖아”라는 권 씨의 발언이 담겨 있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당초 검찰은 “수사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며 크게 주목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24일 검찰의 대질신문은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김유찬 전 비서관까지 불러내서 약 6시간 동안 강도 높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찰은 미국에 있는 이광철 전 비서관과도 통화를 시도했으나 이 전 비서관이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유찬 씨 위증교사 의혹’이란 이 후보의 비서관이었던 김 씨가 지난 96년 총선 직후 종로에서 당선된 이 후보의 선거법위반 사례를 폭로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김 씨는 막상 법정에서 폭로 내용을 모두 부인으로 일관,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을 당혹케 했다. 이후 김 씨는 지난 2월 “당시 법정 진술은 이 후보 측의 위증교사로 인한 허위 증언이었으며 당시 이 후보 측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았다”고 다시 폭로했다. 현재 그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수감된 상태다. 김 씨 구속 당시 검찰은 “여러 정황으로 봐서 김 씨가 당시 법정에서 위증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위증교사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번에 재조사에 나선 것은 일단 녹취록의 공개로 위증교사 의혹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김 씨에 대한 구속만기일이 8월 30일까지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96년 선거법위반 수사를 담당했던 당시 서울지검장과 주임검사였던 최환 변호사와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김 씨의 위증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은 더욱 확산됐다. 검찰로서도 더 이상 침묵만 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
▲ 이명박 후보 의혹의 핵심열쇠를 쥐고 있는 이영배 이광철 김경준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 ||
주 씨는 또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이(광철) 전 비서관이 왜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96년 선거 당시 돈 관리는 이 비서관이 담당했다. 내가 김 씨에게 전달한 5000만 원 역시 이 비서관을 통해서였다. 그는 이 돈 5000만 원을 비롯, 대부분의 돈을 태영개발의 김재정 사장으로부터 받았다. 당시 선거 사무실에 사용된 모든 경비는 김 사장이 다 처리했고, 심지어 지구당 사무실의 파티션 설치 등 기기 하나하나까지 모두 김 사장이 다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역시 이 사안과 관련한 핵심 인물로 이 전 비서관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검찰은 그동안 이 전 비서관을 조사하기 위해 꾸준히 접촉했으나 이 전 비서관은 최근에는 전화도 받지 않은 채 가족을 통해 조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BBK 주가조작 의혹
향후 이명박 검증 공방의 핵심으로 떠오를 사안은 BBK 주가조작 의혹일 것이란 전망이 정치권 주변에서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도곡동 땅 등 차명 재산 소유설과 김 전 비서관 위증교사 의혹은 그동안 수차례 거론돼 왔고 검찰 수사도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 하지만 BBK 건은 핵심 당사자인 김경준 씨의 한국 송환만 기다리며 모든 수사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이 후보 측 역시 지난 20일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 씨 인터뷰 기사를 실은 <한겨레>에 대해 5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이라는 강경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이 사안의 중대성을 반영해주는 결과로 볼 수 있는 것.
김 씨는 지난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회장이 설립한 LK이뱅크가 BBK의 지주회사이며 LK이뱅크가 BBK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었다. 예전엔 BBK를 자기가 창업했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해놓고 요새는 딴소리를 한다”고 이 후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미국에서 진행 중인 소송이 마무리되고 있어 9월이면 한국에 갈 수 있고 한국 검찰에 모든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했던 소송은 공교롭게도 이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던 지난 20일 재판 결과가 나왔다. 미 LA 법원은 다스가 ‘BBK 투자금 190억 원 중 돌려받지 못한 140억 원을 반환하라’며 김 씨를 상대로 낸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김 씨가 다스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기각 사유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미 법원이 이번에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은 다스가 제출한 증거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김 씨에게 무죄라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이번 소송 건이 결과적으로 김 씨의 승소로 판결나면서 그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씨 측은 “늦어도 9월 말이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국내 BBK 투자자들로부터 주가 조작과 공금 횡령 혐의로 고소당해 한국 검찰이 수배 중인 상태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당초 그는 한국으로의 송환을 결정한 미국 법원의 판결에 항소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탓인지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조만간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한국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에 대한 시비도 비교적 분명하다. 김 씨는 “BBK는 사실상 이 후보의 회사”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 후보 측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회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 하지만 자칫 실체는 밝히지 못한 채 의혹만 난무하는 또 다른 네거티브 전쟁으로 일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과거 사업에서 김 씨가 보여준 부도덕한 사례들을 들며 김 씨의 주장이 과연 신빙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자신의 사기 행각을 감추기 위해 한국의 대선 정국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그것.
어쨌거나 검찰로서는 김 씨가 한국으로 송환될 경우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대선에 임박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BBK 의혹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